세계 로봇·자동화 업계 1위인 일본 화낙(FANUC CORPORATION)이 올해 연간 실적 전망을 대폭 하향 조정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고금리와 함께 중국 등 주요 시장의 로봇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화낙보다 규모가 작고 내수 시장에만 의존하는 한국 로봇 업계가 수요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화낙 아메리카에서 출고를 기다리고 있는 산업용 로봇들. / 로이터

4일 로봇 업계에 따르면, 화낙은 올해 4월부터 내년 3월 말까지의 연간 실적 전망치(가이던스)를 매출 7503억엔(6조8010억원), 영업이익 1183억엔(1조720억원)으로 제시했다. 지난 3월 말 전망치보다 매출은 8.4%, 영업이익은 24.3% 줄었다. 영업이익률도 19.1%에서 15.8%로 3.3%포인트(P) 낮췄다.

전년 실적과 비교하면 영업이익이 40% 가까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화낙은 2022년 4월부터 2023년 3월까지 연간 매출액은 8520억엔, 영업이익 1914억엔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22.5%였다. 올해 가이던스와 비교하면 매출은 11.9%, 영업이익은 38.2%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화낙의 4~6월 영업이익은 326억엔(한화 약 296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98억엔(4510억원)보다 34.5% 감소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116억엔에서 2018억엔으로 4.6% 감소했다. 영업이익률은 23.5%에서 16.2%로 하락했다.

이러한 실적 악화는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 등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의 중앙은행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 금리 인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6일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는 기준 금리를 0.25%P 인상했다. 이에 미국의 기준금리는 2001년 이후 2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 5.25~5.50%로 상향됐다. 이에 금융 비용이 늘어난 기업들이 로봇·공작기계 등의 설비 투자를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제활동 재개(리오프닝) 효과가 기대보다 크지 않은 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업계에서는 하반기 중국 경제회복에 따라 수출이 반등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예상보다 수요가 회복되지 못했다는 평가다.

실제 화낙의 매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로봇 사업은 매출은 직전 분기(1~3월) 대비 25.6% 감소했고, 공작기계 사업은 19.5% 감소했다. 이 같은 현상은 화낙의 매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역인 중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화낙의 매출 감소세가 당분간 계속할 것으로 봤다. 화낙의 6월 말 수주잔고는 1773억엔(1조6070억원)으로, 3월 말 2070억엔(1조8760억원)에서 14.4% 감소했다. 여기서 중국과 미주의 감소율은 각각 41.4%, 23.5%에 달했다.

일각에서는 산업용 로봇이 많이 필요한 완성차나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의 투자가 일단락되면서 로봇 업계가 본격적인 '다운(하락) 사이클'에 진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 SK(034730), 현대차(005380), LG(003550) 등 내수에 의존하는 한국 로봇·자동화 업계의 특성상 화낙보다 더 큰 침체기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로봇 분야 한국 1위 기업으로 평가받는 HD현대로보틱스의 2분기 산업용 로봇 부문 매출은 129억원으로 전년(286억원) 대비 54.9% 감소했다. 화낙과 비교해 매출 감소폭이 더욱 크다.

로봇 업계 관계자는 "화낙은 로봇 시장의 성장을 이끌어가는 선도 기업"이라며 "화낙의 실적이 부진하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 전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한국 로봇 업계가 수요 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