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혹한기에 접어들면서 자취를 감췄던 시리즈B 단계 이상의 대규모 투자가 최근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규제 완화 메시지를 던지고, 내년도 모태펀드 예산을 확대 편성하는 등 시장 친화적인 행보를 벌이면서 스타트업의 숨통을 막던 돈줄이 점점 풀릴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그간 불확실한 대외환경을 예의주시하던 투자자들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드라이 파우더(미소진 자금·확보했지만 쓰지 않은 자금)를 쓸 것이란 점도 기대감을 키우는 요인이다.

통상 스타트업은 성장 단계에 따라 투자금을 높여 받는다. 사업 초기인 시리즈A 단계에서는 20억~50억원, 사업성이 어느 정도 검증된 시리즈B 단계는 50억~500억원을 유치한다. 해외 진출이나 기업공개(IPO)를 노리는 시리즈C 단계는 더 큰 금액이 몰린다.

조선비즈와 씨엔티테크가 지난달 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한 'C포럼'에 스타트업, 투자자 등 600여명이 참석했다. 기사와는 관련이 없음./조선비즈

2일 스타트업 분석 플랫폼 ‘혁신의숲’에 따르면 올해 1월 1612억원 규모였던 시리즈B 단계 이상 투자액은 4월 817억원으로 줄어들었다가 5월 1742억원을 기록하며 증가세로 돌아섰다. 7월은 4811억원으로 올해 들어 가장 많은 투자금이 몰렸다.

투자 혹한기를 피해 시리즈A 단계로 관심을 돌렸던 액셀러레이터(AC)·벤처캐피털(VC)도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는 올해 2분기까지 시리즈B 단계 이상 투자를 단 한 차례 실시했지만, 3분기 들어서만 두 차례 추가로 진행했다.

KB인베스트먼트도 올해 3분기 시리즈B 단계 이상 투자를 총 3건 실시했다. 전체 투자 건수 7건의 절반 수준이다. 올해 2분기까지 투자한 20건 중 시리즈B 단계 이상이 총 3건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3분기 들어 대규모 투자 비중을 높인 것이다.

투자사들이 투자 규모를 늘리면서 1000억원 안팎의 투자금을 유치한 스타트업도 등장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비욘드뮤직(2000억원), 컬리(1200억원), 대영채비(1200억원), 뮤직카우(600억원) 등이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6월에도 디스커버리형 커머스(초저가 상품과 추천 알고리즘으로 구매 유도) 플랫폼 ‘올웨이즈’를 운영하는 레브잇이 투자금 600억원을 확보했다.

최근에는 금융당국이 금산분리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고 있어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현행 은행법에 따르면 은행은 비금융사의 지분을 15% 초과해 보유할 수 없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잇따라 규제 완화 목소리를 내면서 시중은행도 투자 부문을 확대하는 등 조직 개편에 나서고 있다.

정부가 모태펀드 규모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희소식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내년 모태펀드 출자 사업 규모를 5000억원 수준으로 편성했다. 올해 예산 2835억원 대비 76.4% 증가한 수준이다. 정부안이 반영되면 지난해 편성된 4600억원 이후로 2년 만에 가장 큰 규모가 된다.

최항집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올해 초에는 IPO 시장이 막히면서 시리즈B 단계 이상 투자를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최근에는 투자 시장이 살아나고 있다”면서 “다만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남아있어 이런 분위기가 지속될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펀드 미소진 자금을 써야 하는 투자자들이 산업 전망이 밝고 수익 모델이 검증된 일부 스타트업에 몰리는 분위기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