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창업가로서 후배를 돕겠다는 마음에 액셀러레이터(AC·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투자자) 일을 시작했는데, 몇 년 만에 누적 투자금의 두 배가 넘는 이익을 가져다주는 걸 보고 사업화를 결심했다. 올해 들어 5월까지 총 30개 스타트업에 투자했고 연말까지 100개를 채우는 것이 목표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운용사와의 공동펀드도 곧 조성할 예정이다."

전화성 씨엔티테크 대표는 "AC는 내가 가진 경험치를 자양분 삼아 이제 막 시작하는 약자를 도와 상생하는, 매력적인 금융업이다. 다음달 열리는 C포럼에서 그간의 경험과 통찰을 나누고 싶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씨엔티테크는 2003년 국내 최초로 식품 주문 중개 서비스를 내놓았다. 배달의 민족, 요기요가 등장하기 전에 배달 주문을 매장 포스기와 연계하고 전화 통합주문, 홈페이지 주문, 브랜드별 애플리케이션(앱) 주문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국내 시장에서 세 가지 배달주문 채널을 전부 확보한 씨엔티테크는 2015년 거래액 1조원을 달성했다.

그러다 코로나19 사태로 수출길이 막히자, 전 대표는 2012년부터 사회환원의 일환으로 진행해 왔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을 사업화했다. 지금은 80명의 액셀러레이터가 씨엔티테크 AC본부에 소속돼 모든 산업 분야의 초기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다.

씨엔티테크는 지난해까지 4000여개 스타트업을 육성했고, 310개 스타트업에 총 410억원을 투자했다. 2020~2022년 3년 연속 국내 AC업계 투자 건수 1위를 달성했다. 다음달 7일엔 조선비즈와 함께 씨엔티테크의 지식과 노하우를 전하는 'C포럼'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연다. 전 대표를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제2핀테크랩에서 만났다.

전화성 씨엔티테크 대표는 2003년 푸드테크 기업 씨엔티테크를 창업해 연 매출 1조원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박상훈 기자

-씨엔티테크는 푸드테크의 시초로 불린다고 들었다.

"개인 시간의 90%는 액셀러레이팅에 쓰고 있지만 씨엔티테크는 푸드테크 기업으로 시작했다. 2003년 배달 주문 플랫폼 기업으로 씨엔티테크를 창업했다. 국내 최초의 배달 통합주문 서비스였다. 당시는 전단을 보고 가게에 전화해 주문할 때였는데, 1588로 시작하는 전화주문을 통합해 관리하는 설루션을 내놨다. 배달 상권을 전자화하고, 배달 주문을 포스기까지 전송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제공했다.

이를 기반으로 2008년에는 브랜드별 배달 주문 모바일 앱을 처음으로 내놨다. 당시 국내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자체 주문 앱이 있었는데 그 앱의 90% 이상을 우리가 제공했다. 배달의 민족이 나오기 전 대표번호 주문, 홈페이지 주문, 앱 주문 등 세 개 채널을 씨엔티테크가 다 보유하고 있었다."

-세 가지를 합치면 배달의 민족이 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굳이 하지 않았다. 씨엔티테크는 2012년부터 스타트업 지원을 병행했는데, 창업가들이 새로운 사업 모델을 발굴하는 일을 돕다 보니 그들만의 영역을 존중하고 싶었다. 대신에 해외 진출을 택했다. 아시아 7개국에 진출해 모바일 주문, 키오스크 주문 관련 서비스형 소프트웨터(SaaS)을 팔았다. 지금도 홍콩, 대만이나 필리핀, 베트남, 심지어 몽골에 가서 KFC 주문을 하면 우리가 만든 주문 플랫폼이 쓰인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해외 SaaS 매출로만 월 30억원씩 벌 수 있었다."

-액셀러레이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AC로서의 역할이 부각되기 시작한 건 2019년이다. 그전까지는 스타트업에 투자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먼저 성공한 벤처사업가로서 후배들을 돕겠다는 마음이었다. 사업부도 없이 봉사 팀처럼 운영했다. 투자 계약을 맺을 땐 우선주가 아닌 보통주를 받았고 계약서도 딱 1장이었다. 그러다 2018년에 푸드테크 스타트업 '쿠캣'을 포함해 3개 기업의 투자금을 회수하게 됐는데, 40개 기업 누적 투자금의 2.5배를 회수했다. 그 순간 '액셀러레이팅을 사회환원이 아닌 금융으로 접근했어야 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2019년에 코로나19가 닥치면서 해외 사업을 못 하게 됐다. 해외 사업을 담당하던 직원들이 일거리를 잃게 됐는데, 이 인력을 재교육해 AC본부를 꾸렸다. 코로나19 사태로 크게 낙담했지만, AC라는 새로운 동력을 찾아 이날까지 사업을 이어올 수 있었다."

-주문 관리 일을 하다가 하루아침에 AC업무를 하긴 어려울 것 같은데.

"물론 교육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온라인 교육을 만들어 AC본부로 온 직원들이 이 과정을 수료하고 시험을 볼 수 있게 했다. 우리가 자체 개발한 인증 시험은 업계에서도 꽤 입소문이 났다. 올해로 7회째를 맞았다. AC본부 직원 교육용으로 만들었지만 외부에서도 시험을 볼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가 있어 4회차부터는 외부 응시생도 받는다. 작년에는 70명가량이 외부에서 시험을 봤다."

전화성 씨엔티테크 대표는 올해 "100개 스타트업에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투자 철학이 궁금하다.

"모두에게 문을 열어두자는 것이 철학이다. 네트워크 기반으로 투자 팀을 찾지는 않는다. 우리의 투자가 필요한 팀이라면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고 최선을 다해 지원하려 한다. 투자 결정은 창업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고 하는데 나름의 평가 방식이 있다. 창업팀을 만나기 전에 발표 가이드를 먼저 준다. 문제 정의→설루션→필요한 기술→경쟁자→사업모델→팀 소개 순서로 발표하라고 하는데, 각각을 통해 창업자의 경험치, 통찰력, 기술 전문성, 분석 능력, 겸손함을 본다."

-해외와 투자 협력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운영사 '사나빌 인베스트먼트'와 공동 펀드를 조성하려고 논의 중이다. 올해 안에 만들려고 하고, 구체적인 규모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국내 금융기관이 사우디 국부펀드를 펀딩에 참여시키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다. 홍콩, 대만,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투자기관과의 협업 경험이 도움이 된 것 같다. 해외 투자기관이 우리 투자사의 서비스를 이용한다거나 현지 진출을 돕는다거나, 또는 직접 투자에 참여하는 식으로 오랫동안 협력해 왔다. 사나빌과 이번에 조성하려는 펀드는 중동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에 투자하려는 목적이다."

-최근 스타트업 생태계와 관련해 창업자들에게 조언한다면.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투자 혹한기가 왔는데, 금리가 다시 이전처럼 내려오려면 몇 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때문에 너무 모험적인 것보다는 약간은 보수적인 창업을 권하고 싶다.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보다는 시장의 문제 정의와 타깃이 정확한 B2B(기업 간 거래)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B2C 창업을 꿈꾼다면 당근마켓처럼 좁은 지역을 대상으로 한 하이퍼로컬(Hyper local·동네 생활권) 창업을 권하고 싶다. 처음부터 전국, 전 세계 소비자를 사로잡겠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본인과 가까운 곳부터 차근차근, 특히 광고비를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범위에서부터 시작해 점차 단계적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 좋다."

-AC업계에도 위기론이 불고 있다.

"업계 선두기업으로써 씁쓸한 현실이다. 지금 400개가 넘는 AC가 국내에 등록돼 있는데, 이 중에 전문적으로 출자하고 중소벤처기업부 팁스(TIPS)를 운영하는 AC는 10%도 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연간 50억원 이상을 투자하는 AC는 10여개에 그친다. 물론 AC는 한 번에 1억원 안팎의 소액만 투자하기 때문에, 특정 지역에서 특정 분야에만 투자하는 소형 전문 AC를 우리와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

소형 AC도 정확한 분야를 정해 배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소액이라도 투자를 병행한다면 각자의 영역에서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AC는 반드시 투자해야 한다. 규모가 작더라도 신념을 가지고 투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