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전 1호기의 설비개선사업 입찰을 본격 추진한다. 지난 1996년 가동을 시작한 체르나보다 1호기는 국내 월성원전과 같은 중수로형이다. 한수원은 월성원전의 설비개선 경험이 있고 루마니아에 핵계측 기자재, 무정전 전원계통 전압 안정기 등을 공급한 바 있어 유리한 상황이다.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전./한수원 제공

19일 에너지 업계와 정부 등에 따르면, 한수원은 지난 7일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1호기 설비 개선 사업 계약 태스크포스(TF)' 조직을 신설했다. 체르나보다 1호기는 2026년 발전 가동이 중단될 예정이다. 이후 3~4년간의 설비 개선을 마친 뒤 2030년부터 재가동된다.

루마니아 원전은 캐나다 원전인 캔듀(CANDU)형 원자로를 선택했다. 월성원전과 똑같이 캐나다원자력공사(AECL)가 건설을 담당했다. 이에 한국이 월성원전을 운영하면서 쌓은 설비개선 등 다양한 경험을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1호기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월성원전 1호기 모습 /조선DB

이번 사업을 수주하면 체르나보다 원전 삼중수소제거설비 건설과 신규 원전 등 이른바 '루마니아 프로젝트'에도 청신호가 켜질 전망이다. 루마니아 정부는 총 11조원 규모의 원전 신규건설 및 현대화를 추진 중이다. 이중 9조원을 신규 원전 2기 건설, 약 2조원을 체르나보다 1~2호기 현대화(설비개선) 사업에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삼중수소제거설비는 원전의 감속재와 냉각재로 사용되는 중수에서 삼중수소를 분리해 전용 설비에 안전한 형태로 저장하는 장치다. 삼중수소제거설비를 통해 방사성 폐기물의 양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지난 5월 한덕수(왼쪽) 국무총리가 루마니아 총리실에서 니콜라에 이오넬 치우커 루마니아 총리와 회담을 마치고 언론 발표를 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제공

전 세계적으로 삼중수소제거설비를 상용화해 운영하는 나라는 한국과 캐나다뿐이다. 삼중수소는 방사선의 일종인 베타(β)선을 방출해 방사선 피폭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지만, 시계나 비상구 표시 등에 쓰이는 형광 물질 제조 등 산업 목적으로도 쓰인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루마니아 정부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설비 개선을 할지 입찰 리스트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사업을 수주한다면 규모는 수천억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번 계약을 따낸다면 한국이 신규 원전 건설뿐만 아니라 원전 운영의 경험과 기술까지 수출하는 원전 국가가 된다"라고 말했다.

루마니아 정부는 체르나보다 지역에 신규 원전 2기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당초 루마니아 원자력공사(SNN)는 중국 원자력공사(CGN)와 합작으로 원전 3, 4호기 건설을 추진했으나, 2020년에 미국과의 전략적 관계를 고려해 철회했다.

루마니아는 미국과 소형모듈형원자로(SMR) 건설 협력 관련 양해각서도 체결했다. 작년 5월에는 미국 SMR 기업인 뉴스케일파워와 MOU를 체결했고, 첫 번째 SMR 건설 부지로 기존 화력발전소 부지인 도이세슈티 지역을 선정했다.

오세철(왼쪽 세번째) 삼성물산 사장이 '루마니아 소형모듈원자로(462㎿) 건설 사업 공동 추진 업무협약(MOU)'에 참석해 Cosmin Ghita 루마니아 원자력공사 사장, Robert Temple 뉴스케일파워 고문 등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삼성물산 제공

현재 뉴스케일파워와 두산에너빌리티(034020), 삼성물산(028260), GS에너지 등이 전략적 협력관계인 만큼 루마니아 SMR 사업에 공동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 13일(현지 시각) 루마니아 원자력공사와 462㎿급 SMR 건설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협약(MOU)를 체결했다.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목표로 한 윤석열 정부도 루마니아 원전 수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유럽 4개국 순방 중이던 지난달 10일 루마니아에서 니콜라에 이오넬 치우커 루마니아 총리와 회담한 뒤 "루마니아 원전 설비 개선과 신규 원전 건설 사업에 한국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해 12월 마리안 스퍼타루 경제부 장관, 비르질 다니엘 포페스쿠 에너지부 장관 등 대표단이 방한했을 때도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만나 "한국은 가격·품질·납기 등 삼박자의 경쟁력을 갖춘 최적의 원전 협력 파트너"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