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양극박 생산 업체들이 양극박 제조에 사용되는 압연기를 잇달아 도입하면서 생산 규모를 늘리고 있다. 양극박은 2차전지 소재로 알루미늄을 20㎛(미크론·1㎜의 1000분의 1) 이하로 매우 얇게 가공해 만든다. 압연기는 회전하는 두 롤(roll) 사이에 알루미늄 원재료를 넣고 압축 가공해 원하는 형상으로 만드는 기계다.

양극박은 2차전지 소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2%에 불과하지만, 향후 나트륨배터리, 전고체 배터리 등에도 적용될 수 있어 성장성과 수익성이 높은 분야로 꼽힌다.

동일알루미늄 천안 공장 압연기. /DI동일 제공

◇ 양극박 시장 年 38.9%씩 성장… 미래 배터리에도 쓰여

2일 업계에 따르면 DI동일(001530)이 지분 90.39%를 보유한 동일알루미늄은 최근 양극박 제조에 사용되는 압연기 3대를 추가 도입한다고 밝혔다. 동일알루미늄은 지난 2011년부터 2차전지용 양극박을 납품했고 LG에너지솔루션(373220), 삼성SDI(006400), SK온 등 배터리 3사를 모두 고객사로 두고 있다.

동일알루미늄은 지난해 연말 기준 4대의 압연기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올해 4월 1개 라인을 추가하며 생산량을 연 3만5000톤까지 늘렸다. 최근에는 청주 하이테크밸리 산업단지에 2200억원 규모의 공장 신설과 설비 투자도 확정했다. 새로 도입될 압연기 3대가 이곳에 설치되고, 2026년 상반기부터 상업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아알미늄(006110)도 지난해부터 800억원을 투자해 경기 평택시 포승 공장에 배터리용 양극박 생산 라인을 증설하고 있다. 올해 10월에 증설이 마무리되면 삼아알미늄의 생산 라인은 4개에서 6개로 늘어나고, 생산 능력도 연 2만7000톤에서 4만톤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동원시스템즈(014820) 역시 충남 아산 공장에 351억원을 투자해 2차전지 양극박 생산 전용 압연기를 추가로 도입할 예정이다. 현재 동원시스템즈는 5개의 생산 라인에서 식품 포장용 알루미늄박과 배터리용 양극박을 혼용 생산하고 있는데, 기존 라인들도 양극박 전용 생산 라인으로 전환하고 있다.

롯데알미늄은 롯데케미칼(011170)과 함께 미국 켄터키주에 3300억원을 투자해 연산3만6000톤 규모의 양극박 생산 공장을 건설 중이다. 미국 공장이 준공되면 롯데알미늄은 안산공장(1만2000톤), 헝가리 1·2공장(3만6000톤)을 포함해 연산 8만4000톤의 생산량을 갖추게 된다.

2차전지용 양극박(알루미늄박). /조일알미늄 제공

양극박 생산 업체들이 앞다퉈 생산량을 늘리는 이유는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IR협의회 기업리서치센터에 따르면 국내 알루미늄박 수요는 2012년 이후 2019년까지 연간 9만톤대 수준에서 장기간 정체됐지만, 작년에 11만7000톤으로 늘었다.

2차전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양극박 수요는 2021년 13만5000톤에서 올해 21만5000톤으로 증가하고, 2025년이 되면 47만5000톤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5년간 연평균 성장률로 보면 38.9%에 달한다.

향후 나트륨이온 배터리의 성능이 개선돼 상용화 단계에 이르면 알루미늄박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음극에는 동박(구리박)이 사용되지만, 나트륨이온 배터리는 음극에도 알루미늄박이 쓰인다.

현재 나트륨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40% 수준에 그치지만, 리튬 원가 부담이 커지면서 중국을 중심으로 나트륨이온 배터리에 대한 연구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나트륨 배터리 가격이 리튬이온 배터리의 60~70% 수준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롯데알미늄 양극박 및 양극박 생산 기계./롯데알미늄 홈페이지 캡처

◇ 압연기 받으려면 2~3년… 확보 경쟁 치열

알루미늄 양극박은 알루미늄을 얇게 가공하면서 두께를 균일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양극박이 얇을수록 양극 활물질을 더 많이 넣을 수 있어 배터리 성능이 좋아진다.

현재 글로벌 압연기 시장은 해당 분야에서 오랜 노하우를 가진 독일의 아헨바흐(Achenbach) 사가 독점하고 있다. 대당 가격은 350억~400억원으로 추된다. 최근에는 여러 양극박 생산 기업들로부터 주문이 몰려 납기일이 점차 길어지는 추세다.

동일알루미늄은 지난 2021년 5월에 아헨바흐와 압연기 1대 구매 계약을 체결했는데, 올해 4월에야 상업 생산에 돌입할 수 있었다. 올해 3월 구매 계약을 체결한 압연기 3대는 빨라야 2026년 상반기부터 상업 생산에 투입될 예정이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001200) 연구원은 “배터리 소재들은 기술 변화에 따라 부침이 있지만, 알루미늄박은 배터리 기술 타입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배터리에 적용된다”며 “차세대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나트륨 배터리에도 알루미늄박 사용량은 줄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