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업계가 식음료(F&B) 분야를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가운데, 식음료 분야의 협동로봇 사용도를 높일 그리퍼(Gripper) 또는 엔드이펙터(End-Effector)을 개발하는 시스템통합(SI) 사업자들의 몸값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퍼는 로봇에서 ‘물건을 잡는 부분’이라는 점을, 엔드이펙터는 로봇의 끝부분에서 실제 쓸모를 만들어 낸다는 점을 강조한 용어로 모두 ‘로봇 손’을 일컫는 표현이다.
지난 16~19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국제기계대전에서 가장 관심을 끈 부스는 김밥로봇이 있는 매점이었다. 김밥로봇은 약 1분 만에 김밥 한 줄을 말아서 먹기 좋게 잘라내는 제품이다. 매점에는 김밥 외에 커피, 아이스크림, 슬러시 등 다양한 메뉴가 있었으나 매점을 운영하는 로봇 회사 직원들은 큰 부담없이 관람객의 주문을 처리하고 있었다.
김밥로봇을 선보인 업체는 레인보우로보틱스(277810) 영남 총판이자 SI 파트너인 STS로보테크다. 이 회사는 공작기계와 협동로봇을 연동해 생산을 자동화하는 머신텐딩(Machine Tending·로봇을 이용해 부품을 공작기계 등에 올리고 내리는 공정) 솔루션을 자체 기술력으로 확보해 판매하고 있다.
김밥로봇은 김밥 마는 기계 위에 김과 김밥속을 차례로 올려놓으면, 김밥 마는 기계가 이를 말아 낸다. 이후 로봇 팔이 김밥 마는 기계에서 김밥을 들어 김밥 써는 기계 입구로 옮기고, 김밥 써는 기계가 썰어 낸 김밥을 다시 로봇 팔이 종이 접시 위에 올려 놓는다. 현재는 김밥 마는 기계와 써는 기계가 분리돼 있는데, STS로보테크는 이 둘을 하나로 합치고 가격을 확 낮춘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STS로보테크는 김밥로봇 외에 치킨(튀김), 맥주, 아이스크림, 슬러시, 드립커피, 에스프레소커피 등에 쓸 수 있는 협동로봇 솔루션도 선보였다. STS로보테크가 자체 연구 인력과 제품 제작 능력을 갖췄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STS로보테크는 반도체 공정 등에 쓰이는 피팅(관이음쇠) 가공 분야에 뿌리를 둔 회사인데, 작년에는 본업보다 공장 자동화 분야에서 더 많은 수익을 냈다.
레인보우로보틱스 관계자는 “STS로보테크는 단순한 판매 대리점이 아닌 핵심 파트너사”라고 설명했다. 어깨부터 손목에 해당하는 ‘로봇 팔’을 만드는 레인보우로보틱스 입장에서는 로봇의 쓸모를 만들어내는 ‘로봇 손’을 개발·제조하는 회사가 귀하기 때문이다. STS로보테크는 머신텐딩 솔루션을 바탕으로 지난해 190대가 넘는 레인보우로보틱스의 협동로봇을 판매했다. 매출 규모로는 지난해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약 3분의1에 해당하는 규모다.
두산로보틱스도 SI 업체 발굴에 심혈을 기울이는 중이다. 치킨로봇을 만든 로보아르떼, 맥주로봇을 개발한 동원테크, 아이스크림로봇을 개발한 라운지랩 등이 대표적이다. 로보아르떼는 두산로보틱스와 레인보우로보틱스 제품을 모두 취급하며 최근 열린 윤석열 대통령 행사에 두 차례나 초청받았다.
동원테크는 신뢰성이 높은 온로봇(ONROBOT)사의 그리퍼를 활용해 6주만에 맥주로봇 솔루션을 내놓았다. 두산이 직접 개발한 사례도 있다. 빕스(VIPS)에 들어간 국수로봇은 두산이 직접 그리퍼 및 제어 소프트웨어를 제작했다.
세계시장 점유율 1위 협동로봇 회사인 유니버설로봇은 ‘UR+(유니버설로봇플러스)’라는 이름으로 그리퍼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애플 앱스토어와 애플리케이션의 관계를 연상시키는 생태계로, 유니버설로봇의 인증을 받아 이 생태계에 속하게 된 서드파티 제품은 유니버설로봇의 손목 부분에 간단히 부착하는(플러그 앤 플레이) 방식으로 결합만 하면 협동로봇(로봇 팔)과 그리퍼를 한가지 소프트웨어로 통합 제어할 수 있다.
전자식 UR+ 제품 가격은 약 500만원으로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국내 SI 업체의 유사 제품군이 100만원 미만인 것과 대비된다. 온로봇(ONROBOT), 로보티큐(ROBOTIQ) 등의 브랜드가 대표적이며, 국내 업체 제품으로는 ‘유엔디’의 자석 기반 자동 툴체인저(Automatic Tool Changer·공작기계나 로봇을 활용한 자동가공 공정에서 공구보관 및 공구교환을 하는 장치) 제품인 ‘맥봇’이 있다.
다만 UR+ 제품군은 아직 용접, 도장, 머신텐딩 등 전통적인 제조업용 제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식음료 업계 맞춤형 제품은 부족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