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지난해 국내 페인트 제조사와 업무협약을 맺고 자동차 보수용 도료(페인트)를 수성으로 전환하기로 했지만, 노루페인트(090350) 등 일부 업체가 유성 도료를 보수용 도료로 공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성을 쓰면 여름철에 온도가 높을 때 오존이 많이 발생되는 문제가 있다.
22일 환경부와 페인트 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노루페인트를 포함한 3개 업체가 유성 도료를 자동차 도장용 시장에 유통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루페인트는 현재 유통된 유성 도료를 회수하고 있으며, 내부 감사를 통해 유통 경로를 확인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부품용으로 허가받은 유성도료가 도장용 시장에 유통된 것으로 알고있다"면서 "일부 대리점에서 부품용 도료를 도장용으로 유통한 것인지, 본사 차원에서 판매한 것인지는 확인이 안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보수용 도료는 외부 충격 등으로 손상된 차량 부위에 판금 시공을 한 뒤 그 위에 도장하는 도료다. 국내에서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함량이 높아 도장 후 자동차를 쉽게 건조할 수 있는 유성도료를 주로 사용해왔다.
그러나 자외선 강도가 강한 여름철에는 유성 도료를 사용할 경우 대기오염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자동차를 도장하는 과정에서 도료에 포함된 VOCs가 대기 중으로 휘발되는데, 자외선과 만나 광화학 반응을 일으키면 오존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이에 환경부는 대기환경보전법을 개정해 2021년부터 차량 도장에 사용되는 '베이스코트 페인트'의 VOCs 함유 기준을 기존 리터당 420ppm(part per million·백만분의 1) 이하에서 200ppm 이하로 강화했다.
나아가 작년 8월에는 국내 페인트 제조사와 자율 협약(법적 구속력이 없는 협약)을 체결하고 자동차 보수용 도료를 수성제품으로만 사용하기로 했다. 당시 ▲KCC(002380) ▲노루페인트 ▲강남제비스코 ▲조광페인트(004910) ▲삼화페인트공업 ▲엑솔타코팅시스템즈 ▲유니온화학공업 ▲씨알엠 ▲PPG코리아 등이 참여했다.
협약의 특성상 위반 시 처벌조항이 포함되지는 않았다. 다만 유성용 도료 유통 사례가 발견될 경우 환경부가 현장 점검을 실시하고, 협약에 참여한 업체들은 협약 위반 사실을 보도자료를 통해 알릴 수 있도록 했다. 약속을 위반한 업체는 유통된 도료를 회수한다는 내용도 포함돼있었다.
협약 체결 후 1년도 안 된 상황에서 일부 업체가 유성도료를 유통한 사실이 알려지자 업계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협약에 참여했던 9개사 중 5개사는 유성 도료 유통을 항의하는 내용의 공동성명도 준비하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수성제품은 유성제품보다 가격이 비싸고 저장 방법도 까다롭다"면서 "환경보전 차원에서 페인트 업체가 손해를 보면서도 자율협약에 응한 것인데, 일부 업체가 이를 어겼다면 공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노루페인트 관계자는 "대리점 유통 과정에 유성도료가 보수용 도료 시장에 풀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도 "이번에 유통된 유성도료는 강화된 환경기준에 맞춰 VOCs 함량을 200ppm 이하로 낮춘 제품이다. 법적인 문제가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자율협약으로도 유성도료의 유통을 막지 못한 만큼 법개정을 통해 사각지대를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 법상으로는 유성도료를 사용하는 정비업체를 단속할 수 있는 권한이 없고 처벌조항도 없다"면서 "법을 개정해 정부의 점검 권한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