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철(Nippon Steel)은 전기차 구동모터용 ‘무방향성(Non-Oriented) 전기강판’ 생산능력을 키우기 위해 900억엔(약 8800억원)을 추가 투자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일본제철은 2019년부터 이번 투자까지 총 2130억엔(약 2조원)을 전기강판 사업에 투입한다. 2027년에 투자가 모두 마무리되면 일본제철의 무방향성 전기강판 생산능력은 현재 약 20만톤(t)보다 5배가량 커질 전망이다.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국내외 주요 철강기업들이 앞다퉈 전기강판 생산 능력을 키우고 있다. 기술력이 필요한 제품인 만큼 빠듯한 수급 상황이 이어질 전망이어서, 고부가가치 먹거리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모빌리티솔루션이 포스코의 무방향성 전기강판을 사용해 제작한 구동모터용 철심. /포스코 제공

12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전기강판 가격은 2020년 t당 126만원 수준에서 지난해 t당 210만원으로 66.7% 올랐다. 같은 기간 냉연강판 가격 상승률 51.9%(43만원)를 웃돌았다.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이 지난해 800만대를 넘어서면서 전기강판 수요가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전기강판은 전자기적 특성이 우수한 기능성 제품이다. 크게 무방향성 전기강판과 방향성 전기강판으로 나뉘는데, 전기차 엔진 역할을 하는 구동모터의 철심(Core)에 무방향성 전기강판이 쓰인다. 구동모터 내부에는 고정된 S극과 N극 자석이 있는데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코일에 전기를 흘리면 자기장이 생기고, 다시 운동에너지로 바뀌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손실을 철손(Core loss)이라고 하는데 무방향성 전기강판은 철손량이 일반 철강재보다 50% 이상 적다. 그만큼 에너지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에너지 손실이 적으면 배터리 1회 충전당 주행거리가 늘어난다.

전기강판에 규소(Si)를 1~5%가량 넣는 이유도 전기저항을 올려 철손을 줄이기 위해서다. 또 두께가 얇을수록 철손이 감소해 0.3㎜ 이하의 고효율 무방향성 전기강판이 전기차 구동모터에 적용되고 있다. 기술력이 필요한 만큼 전 세계에서 10여개 철강사만 고효율 무방향성 전기강판을 생산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2035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 대수를 약 8000만대로 예측했다. 지난해 판매량의 10배 수준으로, 그만큼 전기강판 수요도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조강(쇳물) 생산량 기준 세계 1위·2위 철강기업 바오우강철(宝武钢铁)과 아르셀로미탈(ArcelorMittal)이 고효율 무방향성 전기강판 설비에 조(兆) 단위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포스코도 1조원을 투자해 연간 30만t의 고효율 무방향성 전기강판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전남 광양시에 짓고 있다. 오는 2025년 완공이 목표로, 포스코의 고효율 무방향성 전기강판 생산능력은 총 40만t으로 늘어나게 된다. 중형 전기차에 고효율 무방향성 전기강판이 평균 80㎏가량 들어가는 점을 고려하면, 500만대분에 해당한다. 특히 포스코의 고효율 무방향성 전기강판 ‘Hyper NO’는 기존 전기강판보다 에너지 손실이 30% 이상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제철(004020) 역시 전기강판 시장이 커질 것으로 보고, 선행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주요 철강사들이 무방향성 전기강판 증산을 추진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려워 2025년 이후에 부족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며 “수익성이 좋은 알짜 제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