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반도체 신화를 이을 산업으로 2차전지가 꼽히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중국 제외)에서 국내 2차전지 빅3 업체의 점유율은 53%로 절반을 넘었다. K배터리의 위상은 배터리셀을 넘어 소재와 장비 등 2차전지 생태계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다. 2030년 전기차 생산이 5400만대로 폭증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2차전지를 놓고 ‘배터리 패권경쟁’을 펼치는 대한민국 배터리 산업의 현황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전기차 배터리 핵심 원자재로 꼽히는 리튬만큼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확보에 나서는 광물은 니켈(Ni)이다. 배터리 4대 핵심소재(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 중 하나인 양극재는 구성하는 원료의 종류와 비율에 따라 성능, 전압 등 특성이 달라진다. 통상 니켈, 코발트(Co), 망간(Mn), 알루미늄(Al)을 조합해 만든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각 원료 구성을 달리해서 에너지 밀도, 비용, 수명, 안정성이 모두 균형을 이루는 최적의 배터리를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니켈은 전기차 주행거리에 영향을 미치는 용량과 에너지 밀도를 좌우하기 때문에 그 비중을 늘려가는 추세다. 니켈 비중이 증가하면 상대적으로 값비싼 원료 함량이 줄어 비용 측면에서도 경제적이다.

인도네시아의 한 니켈 광산. /로이터 연합뉴스

◇ 印尼 중심 글로벌 니켈 확보전 본격화

10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홀딩스(POSCO홀딩스(005490))는 최근 인도네시아에 4억4100만달러(한화 약 5900억원)를 투자해 니켈 제련 공장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니켈 제련 공장에선 니켈을 함유한 광석을 녹여 배터리 소재로 사용하는 니켈 중간재를 생산한다. 니켈 함유량 기준 연간 5만2000톤(t) 수준의 니켈 중간재를 생산할 예정으로, 이는 전기차 100만대를 만들 수 있는 규모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1위 니켈 보유 국가다. 리튬이나 다른 광물에 비해서는 여러 나라에 고르게 분포돼 있지만, 개발 사업은 인도네시아와 중국 위주로 추진되고 있다. 전 세계 니켈 매장량은 2020년 기준 9400만t으로 인도네시아, 호주, 브라질, 러시아 순으로 높다. 연간 생산량은 인도네시아가 76만t(30.7%)으로 가장 높고, 필리핀(32만t, 12.9%), 러시아(28만t, 11.3%)가 뒤를 잇는다.

그래픽=정서희

포스코홀딩스는 인도네시아 외 지역에서도 니켈 공급망을 확보해왔다. 지난 2021년 호주 니켈 광업-제련 회사 레이븐소프 지분 30%를 2억4000만달러(약 2700억원)에 인수해 내년부터 연간 3만2000t의 니켈 가공품을 공급받게 된다. 이는 전기차 18만대에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뉴칼레도니아원료법인 NMC로부터는 니켈 광석을 공급받아 국내에 전기차 5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연산 2만t 규모 니켈 공장을 설립한다는 방침이다.

글로벌 전기차 및 배터리 제조업체가 인도네시아에 진출하는 것도 니켈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현대차(005380)는 현지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고, SK온은 소재업체 에코프로(086520) 및 중국 전구체 생산기업 거린메이(GEM)와 니켈 중간재 공장을 짓기로 했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올해 초 인도네시아에 연간 10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대형 전기차 공장(기가팩토리)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중국, 호주에서도 니켈 공급망 확보 계약을 맺어왔다. 중국 그레이트파워로부터 올해부터 6년간 니켈 2만t, 호주 QPM과 오스트레일리안마인즈에서는 각각 2024년부터 6년간 니켈 7만t, 10년간 니켈 7만1000t을 공급받기로 했다. 캐나다 리사이클과는 2023년부터 7년간 재활용 니켈 2만t을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SDI(006400)는 2020년 11월 호주 QPM과 향후 3~5년간 매년 니켈 6000t을 공급받기로 했다.

고려아연(010130)은 올해 하반기에 국내에 니켈 제련소를 착공할 계획이다. 규모 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중장기적으로 전기차 배터리용 수요가 니켈 수요 증가를 주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니켈 수요는 2021년 약 270만t에서 2030년에는 400만t으로 연평균 4% 수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2040년이 되면 560만t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니켈 가격은 향후 수급 상황에 따라 반등할 가능성이 높은데, 2020년대 말까지 추가 공급이 이뤄지지 않으면 구조적인 공급 부족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국수출입은행 제공

◇ 코발트, 콩고서 80% 생산… 中 협력으로 수급 안정

코발트의 경우 리튬, 니켈보다는 시장 규모가 작지만 수요는 점차 늘어날 전망이다. 전기차 산업의 핵심인 리튬이온배터리를 만드는 데 쓰이는 핵심 소재이고, 양극재 부식과 폭발을 제어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구리, 니켈 광산의 부산물로 얻어지는 만큼 희소성이 높고, 가격이 니켈보다 비싸다는 특징이 있다.

전 세계 코발트의 약 70~80%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나온다. 콩고는 글로벌 코발트 수출량의 95%를 차지하며 대부분을 중국에 공급하고 있다. 중국은 콩고 코발트 광산 약 70%를 보유한 최대 수입국이다. 편재된 자원으로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가격이 배터리 제조 원가의 2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싸고, 채굴과 생산 과정, 환경오염으로 쟁점이 되는 상황이다.

코발트 수요도 니켈과 마찬가지로 배터리 수요 증가에 힘입어 2021년 약 16만t에서 2030년에는 26만t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그동안 코발트는 주로 니켈 합금, 공구 재료, 자석 등에 사용돼 왔다. 향후 2~3년간은 코발트 시장이 공급 과잉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채굴이나 재활용 프로젝트 등 신규 투자가 없다면 2020년대 후반부터 공급 부족에 이르고, 가격이 다시 뛸 수 있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LG화학(051910)포스코퓨처엠(003670)은 중국 코발트 업체와 손을 잡은 상태다. 포스코퓨처엠은 지난 4일 세계 최대 코발트 생산기업 중국 화유코발트와 1조7000억원 규모 신규 투자 협약을 맺었다. 이중 1조2000억원을 배터리용 양극재 중간 소재인 전구체, 고순도 니켈 원료 생산라인을 짓는데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LG화학은 지난달 19일 중국 화유코발트와 1조2000억원 규모의 투자 협약을 맺었다.

LG에너지솔루션 제공

◇ 망간·알루미늄 수요 증가 지속

망가니즈(망간)는 배터리에서 안정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망간은 모든 생명체에 필수적인 원소이기도 한데, 사람의 경우 망간이 혈액을 응고시키는 인자를 생성하고, 대사 작용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망간을 첨가하면 철이 단단해진다는 사실이 처음 발견된 1800년대 초반 이후 줄곧 중요한 금속 합금 재료로 사용됐고, 여전히 자동차 부품 제조 등에 활용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양극재 형태가 망간이 포함된 NCM(니켈·코발트·망간)이다. 처음에 NCM은 니켈, 코발트, 망간 비중이 1:1:1이었지만, 최근 니켈 비중을 높이고 알루미늄을 추가해 안정성을 강화한 NCMA(니켈·코발트·망가니즈·알루미늄) 개발이 늘고 있다.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니켈 함량을 극대화하고, 값비싼 코발트는 줄이기 위해서다.

배터리 주요 소재로 주목받고 있는 알루미늄은 금속 원소 중 가장 흔한 원소다. 필요한 형태로 쉽게 변형되는 특성 덕분에 일상에서도 철사, 주방 용기, 음료 캔, 항공기, 선박 등으로 접할 수 있다. 알루미늄은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NCMA 양극재 소재로 사용되며 배터리 출력 개선에 관여한다. 배터리 제조를 위한 전극 공정에서 전기 화학 반응이 일어날 수 있도록 전자를 전달하는 집전체로 쓰이기도 한다.

배터리 시장 내 알루미늄 수요가 높아지면서, 기존에 알루미늄 관련 사업을 하던 회사들은 하나둘 배터리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배터리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알루미늄 양극박 수요는 2021년 13만5000t에서 올해 21만5000t으로 증가하고, 2025년이 되면 47만5000t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5년간 연평균 성장률로 보면 38.9%다.

배터리 3사의 러브콜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곳은 삼아알미늄(006110)이다. 삼아알미늄은 1998년 국내 최초로 배터리용 알루미늄박 개발에 성공했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006400)에 모두 납품을 하고 있는데 SK온의 경우 알루미늄박의 90%를 삼아알미늄으로부터 공급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업체 외에도 독일 폭스바겐, 스웨덴 배터리 업체 노스볼트 등으로 공급처를 다변화하고 있다.

☞[2차전지 대해부] 관련 기사

https://biz.chosun.com/tag/secondary-c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