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진출을 노리는 스타트업은 현지 사정과 법률적 지식을 잘 아는 엑셀러레이터(AC·창업 초기 기업이 빨리 성장 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를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투자금 유치는 물론 액셀러레이터가 보유한 현지의 네트워크까지 활용할 수 있어 사업을 영위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차세대 리튬메탈배터리를 개발한 비이아이랩의 배창득 대표는 지난해 핀란드 기업과 합작 법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운영하는 코리아스타트업센터(KSC)가 연결해준 엑셀러레이터의 도움을 받아 시행착오를 많이 줄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배 대표는 "검증된 AC와 일할 수 있기만 해도 기업은 많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해외 진출을 노리는 스타트업이 늘면서 현지 사정을 잘 아는 AC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도 예산을 늘려가며 현지에서 활동 중인 AC와 스타트업을 연결해주고 있지만, 정책의 혜택이 모든 기업에게 돌아가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국내 AC의 해외진출을 지원해 스타트업의 해외 정착 기반을 마련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영(오른쪽)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달 사우디에서 열린 글로벌 스타트업 행사 'BIBAN 2023'에 참석해 설명을 듣고 있다./중기부 제공

◇ 현지 AC와 스타트업 연결 필요… "투자유치 가능성 증가"

27일 업계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진흥원은 2011년부터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현지 AC와 스타트업을 연결해주는 '글로벌 엑셀러레이팅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외 진출을 희망하는 업력 7년 이내 창업기업이 지원 대상이다.

중기부는 매년 예산을 확대 편성하면서 지원기업을 늘려왔다. 2012년 총 31억원 규모이던 예산은 2015년 53억원, 2018년 72억원, 2021년 75억원 등으로 증가했고, 지원 기업도 2012년 70개 팀에서 2021년 90개팀으로 증가했다.

지원 대상을 늘렸어도 현장의 수요를 충족하기엔 부족하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발표한 '2022년 스타트업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창업자 10명 중 8명은 해외 진출을 고려했거나, 진출해 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10만개가 넘는 법인이 신설되는 점을 감안하면 지원 규모가 작은 편이다.

특히 정부가 국내 기업의 진출을 독려하고 있는 아랍에미리트(UAE)·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지역은 사업대상에서 제외됐다. 사업공고문을 보면 올해 글로벌 엑셀러레이팅 사업에는 미국과 독일, 베트남, 싱가포르 지역의 AC 10곳만 참여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외진출을 희망하는 스타트업은 비즈니스 네트워크 확보 및 투자유치의 어려움을 가장 큰 걸림돌로 꼽는 경우가 많다"면서 "점진적으로 글로벌 엑셀러레이팅 관련 예산을 확충해 현지 AC와의 협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정서희

◇ "국내 AC 해외진출 지원해야 스타트업 육성에 도움"

일각에서는 국내 AC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각각 주요국에 무역관과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운영하며 현지 네트워크와 행정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만큼, 국내 AC와 공공의 지원을 연계하면 스타트업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일부 AC는 해외 진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엔피프틴파트너스'도 아부다비에 법인을 설립하며 현지 진출을 노리고 있다. 2015년 설립된 엔피프틴파트너스는 하드웨어(제조업 분야)와 소프트웨어(비제조업 분야) 스타트업을 두루 지원하는 AC로, 올해 1월 윤석열 대통령의 UAE 순방에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했다.

허제 엔피프틴파트너스 대표는 "AC들은 파트너 기업이 망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할 수밖에 없다"면서 "해외에서 AC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자연스럽게 민간의 장점인 속도감 있는 지원을 스타트업에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24일 중소기업인들을 만나 UAE 순방 성과를 공유했다./대통령실 제공

정부도 국내 AC의 해외 진출을 돕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원하는 'K-Global 엑셀러레이터 육성' 사업이 그 사례다. 이 사업은 국내 AC가 해외 파트너십을 맺고 스타트업을 육성하도록 해 AC의 역량을 제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지원 대상이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로 제한돼 많은 기업이 참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한 나라에 거점을 둔 AC들이 등장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 벤처캐피탈(VC) 겸 AC인 '500스타트업'은 실리콘밸리와 샌프란시스코, 방콕, 베이징 등 해외 주요 도시에 거점을 마련해 한국을 포함한 약 80개국에서 2700개 이상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글로벌 스타트업 AC인 '플러그앤플레이'도 미국과 일본, 중국 등에 거점을 두고 있으며, 2021년에만 2539개 기업이 창업 프로그램을 거쳤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관계자는 "주요국에 국내 AC가 활동하고 있으면 해외 진출을 노리는 스타트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현지의 사업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물론, 현지 벤처캐피탈을 소개받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