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반도체 신화를 이을 산업으로 2차전지가 꼽히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중국 제외)에서 국내 2차전지 빅3 업체의 점유율은 53%로 절반을 넘었다. K배터리의 위상은 배터리셀을 넘어 소재와 장비 등 2차전지 생태계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다. 2030년 전기차 생산이 5400만대로 폭증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2차전지를 놓고 ‘배터리 패권경쟁’을 펼치는 대한민국 배터리 산업의 현황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LG에너지솔루션(373220), 삼성SDI(006400), SK온 등 배터리 빅3를 비롯해, SK·포스코그룹, 에코프로(086520) 등 배터리 소재 기업들이 조(兆) 단위 투자를 쏟아내면서 배터리 생태계 조성에 나서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 규모는 2035년 812조원으로 올해보다 5배 이상 성장이 예상되면서 반도체를 이을 국내 대표산업으로 꼽힌다. 정부와 배터리 업계는 선제적인 투자와 초격차 연구개발(R&D)을 통해, 2030년까지 전세계 시장 점유율을 4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20일 배터리 업계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업계가 국내외에서 집행한 설비 투자 사업 규모는 약 80조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기업별로는 ▲LG에너지솔루션이 31조3000억원(10건) ▲SK온 17조1500억원(11건) ▲삼성SDI 8조2500억원(6건)을 투자해 동시다발로 공장을 짓고 있다. 국가별로는 북미 지역이 12건으로 가장 많고, 유럽 6건, 중국 등 아시아 9건 등이다. 최근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배터리 공급망이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이다.

전기차 배터리 3사 해외 생산공장 현황. /그래픽=정서희

배터리 셀 업체들에 발맞춰, 에코프로, 포스코그룹, 롯데케미칼(011170), SKC(011790)(SK넥실리스) 등 소재 기업도 적게는 1100억원, 많게는 7조2000억원까지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 세계 1위 노리는 LG에너지솔루션... 북미에 집중

가장 빨리 배터리 시장에 진출한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시장 선점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은 7조2000억원을 투입해 애리조나주에 단독 공장을 건설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북미 지역 최대 규모인 이 공장의 생산 능력은 43기가와트시(GWh)로 원통형 배터리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등을 만든다. 원통형 배터리는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에 공급될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업계의 투자 속도는 전기차 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여겨지고 있다. 2020년 222만대이던 전기차 판매대수는 지난해 802만대로 3.6배 급증했다. 같은 기간 연간 완성차 판매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2.9%에서 9.9%로 커졌다. 이런 수요을 뒷받침하기 위해 배터리 업계도 여러 개의 공장 건설과 증설을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완성차 기업과의 협력도 빠르게 구축해나가고 있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은 제너럴모터스(GM)와 함께 미국 오하이오, 테네시, 미시간 등 총 3곳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GM의 배터리 합작 법인 얼티엄셀즈의 미국 오하이오주 공장. /LG에너지솔루션 제공

오하이오(1공장)에는 2조7000억원을 투입했고 작년 하반기에 양산을 시작했다. 2조7000억원을 투입한 테네시 공장은 연간 50GWh급으로 배터리가 생산되며 올해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2700억원의 추가 투자를 결정했다.

GM과의 세 번째 합작공장은 미시간에 있으며, 2025년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이들 공장에서는 GM 산하 브랜드인 쉐보레, 캐딜락, GMC 등 신형 전기차에 탑재될 배터리가 생산된다.

이 밖에 미국 완성차 기업 스텔란티스와 캐나다 온타리오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총 투자금은 4조8000억원으로 2024년 상반기 양산을 시작한다. 신규 공장의 생산 능력은 45GWh다. 일본 혼다자동차와도 2조5000억원을 투입해 미국 인디애나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다.

◇ ‘배터리 공룡’ 꿈꾸는 SK, 2030년 생산규모 500GWh

SK온은 폭스바겐 등 유럽 시장을 주요 거점으로 두면서, 새로운 시장으로 북미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현재 SK온은 헝가리에 코마룸에 8400억원을 투자한 1공장과 9500억원을 투입한 2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추가로 헝가리 이반차에 2조7400억원을 투자해 3공장을 건설 중이다. 공장 세 곳이 정상 가동하면 연간 47.5GWh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가 생산되며, 포드와 폭스바겐 등 유럽형 전기차에 탑재될 예정이다.

SK온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업계의 후발주자였지만 위상이 점차 달라지는 추세다. 2019년 글로벌 배터리 시장 점유율 9위에 진입했는데, 지난해 4위까지 순위(중국 시장 제외)를 높였다.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12월 미국 켄터키주 글렌데일에서 열린 블루오벌SK 켄터키 공장 기공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SK온 제공

SK온이 가장 공들이고 있는 투자는 포드와 합작사를 설립해 총 10조2000억원을 투입하는 켄터키주 및 테네시주 공장 건설이다. 켄터키 공장과 테네시 공장은 연간 총 129GWh 규모의 배터리를 생산한다. 이는 대당 105㎾h 배터리가 들어가는 포드의 F-150 라이트닝(Lightning) 전기차 픽업트럭을 약 12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이 밖에 SK온은 중국 옌청, 후이저우, 창저우 등에서 배터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1조2000억원을 추가 투자해 2024년 완공을 목표로 중국 옌청 2공장을 건설 중이며, 공장이 정상 가동되면 중국의 배터리 생산 능력은 70GWh 규모로 확장된다.

SK온은 미국, 중국 등에 신규 공장을 건설하면서 2017년 1.7GWh였던 생산능력을 현재 77GWh로 늘렸고, 2025년에는 220GWh, 2030년까지 500GWh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 BMW로 유럽 시장 노리는 삼성SDI

경쟁사 대비 투자가 더디다는 평가를 받아온 삼성SDI도 최근 잇따른 투자 발표로 생산 규모를 늘려가고 있다. 삼성SDI의 경우, 미국 보다는 유럽을 비롯해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SDI의 헝가리 제2공장은 지난해 말 공사를 끝내고 양산을 시작했다. 현재 제품 수율(완성품 중 양품 비율)을 높이는 작업을 진행되고 있다. 이에 앞서 삼성SDI는 2019년에 BMW와 2021년부터 2031년까지 10년간 29억 유로(3조8800억원) 규모의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한 뒤 제2공장 건설을 시작했다. 삼성SDI가 헝가리 공장 건설을 위해 사용한 투자금은 약 4조원으로 알려졌다.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2월 인천 영종도 BMW 드라이빙 센터에서 올리버 집세(Oliver Zipse) BMW CEO와 대화하고 있다./삼성전자 제공

일각에서는 삼성SDI가 조만간 헝가리 제3공장 착공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BMW가 헝가리에 배터리 조립공장을 건설하고 있고, 최근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이 올리버 집세 BMW그룹 회장을 만나면서 두 회사의 협력 강화에 무게가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삼성SDI는 공장 증설을 위해 2025년까지 말레이시아에 1조7000억원, 중국 천진에 4000억원을 투입한다. 스텔란티스와도 미국 인디애나주에 배터리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 급성장하는 K배터리, 美 점유율 70%

배터리 셀 업체들의 공격적인 투자로 소재 업체들의 투자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동박을 비롯해 양극박(알미늄박), 분리막, 전해액 첨가제 등 배터리 소재 사업에 2030년까지 7조2000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양극재 1위 기업인 에코프로는 2조원 이상을 투자해 포항 블루밸리 국가산단에 양극재 생산공장을 추가로 짓기로 했다. 이를 통해 18만톤 수준의 양극재 생산능력을 2027년까지 71만 톤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096770)의 소재사업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361610)(SKIET)도 폴란드 실롱스크주에 2024년까지 총 3조원을 투자해 유럽에서 최대 규모인 15.4억㎡의 분리막 생산 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이로써 SKIET의 한국, 중국, 유럽을 포함한 글로벌 생산 규모는 총 27.3억㎡에 달할 전망이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 폴란드 공장 전경. /SKIET 제공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기차용 2차전지 수요는 올해 687기가와트시(GWh)에서 2035년 5.3테라와트시(TWh)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6160억 달러(약 815조원) 수준이다. 올해(1210억 달러)보다 5배 커진다는 얘기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IRA를 활용하면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해, SK온, 삼성SDI 등 배터리 3사가 2025년까지 19조원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들 회사가 미국에 건설하려는 공장의 총투자비가 약 40조~45조원으로 추정되는 만큼 그 절반 가량을 공제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탈중국 공급망 정책에 따라 미국 내 전기차 수요 증가분의 상당수는 K배터리 업체들이 수혜를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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