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원전 점검 지연을 줄이고 이용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전국 25개 모든 원전에 ‘중장기 계획예방정비(GOH·Grand OverHaul)’ 체계를 도입한다. 그간 18개월마다 개별 건으로 원전을 멈추고 진행됐던 계획예방정비(OH)를 경정비(A급), 중정비(B급), 대정비(C급) 등으로 나눠 점검 지연에 따른 원전 가동 중단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한수원이 OH 체계를 개편한 것은 1978년 국내 첫 원전인 ‘원고리원전 1호기’의 상업 운행이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그동안 OH 기간에 부품 교체 필요성이 발견되면 부품 조달 등 수리가 완료될 때까지 원전 가동을 멈춰야 했다. 이 때문에 기본 공기는 40일이지만, 2~3개월 이상 가동이 멈추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에 추가 점검 요청이 들어오면 수년까지 원전 가동이 멈추는 사례도 있었다. 한수원은 GOH를 도입해 매년 1.04%포인트(p)씩 원전 이용률을 높이겠다는 목표다. 이를 LNG로 대체 비용으로 환산하면 연간 약 5400억원을 절약하는 것이다.

월성원전 4호기./월성원자력본부 제공

5일 한수원과 에너지 업계 등에 따르면, 한수원은 최근 ‘GOH 체계 도입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GOH는 매주기 혼재된 각종 검사 및 설비개선 작업 시기를 체계적으로 조합·분산해 이용률을 향상시킬 수 있는 중장기 점검 체계를 말한다.

보통 원전은 우라늄을 한 번 장전한 뒤 18개월간 연료를 모두 태운다. 이후 원료를 교체하기 위해 원전 가동을 멈추고 설비를 점검하는 OH 기간을 가진다. OH는 오버홀(OverHaul)의 약자로 기계류를 완전히 분해해 점검·수리하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OH 기간에 발견되는 문제가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막상 원전을 분해하면 부품 교체 등이 필요한 경우가 발생하는데, 원전의 특성상 부품 조달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이럴 경우 공사 기간이 연장되면서 원전이 멈춰있는 상태가 된다.

하지만 GOH체계가 도입되면 자동차처럼 1만㎞(엔진오일), 3만㎞(브레이크 패드), 4만㎞(엔진 부동액), 4만5000㎞(브레이크 오일), 5만㎞(미션오일), 6만㎞(배터리), 10만㎞(타이밍 벨트, 점화 플러그) 등 중장기적으로 교체 시기에 맞춰, 부품 수급, 인력 투입 등이 가능해 수리로 인해 멈춰있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원전은 특성상 부품을 발주해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증기 발생기의 경우, 공급 받는 데까지 3~4년의 시간이 걸린다.

한수원 관계자는 “기존에도 원전 점검, 자재, 인력, 인허가 등 모든 부분에서 점검 지연을 줄이는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번 GOH는 이러한 경험과 노하우를 표준화해서 중장기 정비 계획을 짜겠다는 의미”라며 “4월까지 최종안을 마련해, 엔지니어들이 활용하는 표준정비 절차서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수원 '중장기 계획예방점검 체계 도입' 효과 /자료=한수원

한수원은 GOH 도입을 위해 원전 장비·부품 등 중장기 자재 조달 체계도 개편하기로 했다. 자재가 적기에 입고되지 않을 경우, GOH를 도입해도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한수원에 따르면, 지난해 자재 적기 조달률은 47.1%였다. 한수원은 최대 4주기(1주기는 18개월) 조기 발주 등을 통해 적기 조달률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이 밖에도 GOH 체계를 가동하기 위한 인력 부족이 예상되는 만큼 대체근무일, 보상휴가제, 유연근무제 시간외 수당 확대 등 보상체계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또 이용률 향상에 따른 매출·이익 상승분의 일부를 실적 보상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한수원은 GOH 체계 도입으로 연간 원전 이용률을 1.04%p 이상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10년 누적으로 OH 일수가 총 971일 감소하는 것이다.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한수원은 매년 1월 전년도 GOH를 평가하고 개선사항을 차기 GOH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한수원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윤석열 정부가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원전 이용률 회복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2017년~2018년 원전 이용률은 65%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윤 정부가 들어선 뒤 이용률이 2021년 74.5%에서 지난해 81.6%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