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 액티비티(조류 활동)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달 29일 오전 8시, 서울 강서구 하늘길 화물청사에 위치한 제주항공(089590) 훈련센터. 조종석 앞 화면에는 푸른 하늘이 펼쳐졌고, 제주항공의 B737-8 비행기는 김포공항에서 이륙해 제주공항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순간 기체가 크게 흔들리며 경고음이 들렸다. 새떼가 비행기와 부딪힌 것이다.

새가 왼쪽 엔진으로 빨려 들어가며 두 엔진 중 하나에 이상이 생겼다. 오정환(45) 제주항공 기장, 박찬국(40) 제주항공 부기장은 침착하게 왼쪽 엔진을 껐다. 멀쩡한 오른쪽 엔진의 추력은 89.3%이지만, 왼쪽 엔진은 14.6%까지 낮아졌다. 오 기장과 박 부기장은 오른쪽 엔진을 이용해 무사히 김포공항으로 회항했다.

29일 오전 8시 서울 강서구 제주항공 항공훈련센터에서 오정환(왼쪽) 제주항공 기장과 박찬국(오른쪽) 제주항공 부기장이 시뮬레이터 훈련을 하고 있다./윤예원 기자

◇ 폭우, 조류 충돌 생생하게 재현… 1년에 다섯 번 시험

B737-8은 엔진의 힘이 세고 연비가 좋아 기존 항공기 대비 운용비를 7% 줄이면서 1000㎞를 더 날 수 있다. 제주항공이 지난해 4월 도입한 시뮬레이터는 이 항공기 조종석 내부를 90% 가까이 재현했다. 2019년 첫 번째로 도입한 시뮬레이터에 이어 두 번째다. 국내 LCC 중 시뮬레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는 제주항공이 유일하다. 신규 도입한 시뮬레이터의 가격은 약 180억원이다.

조종석 앞 120도 화면은 눈, 비, 안개 등 모든 기상을 가상 화면으로 보여준다. 전 세계 모든 공항 활주로가 눈 앞에 펼쳐지며 생생한 교육이 가능하다. 조종사들은 법적으로 일 년에 네 번 시뮬레이터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일종의 중간고사, 기말고사인 셈이다.

제주항공에 소속된 300명의 기장과 300명의 부기장은 일 년에 다섯번씩 시뮬레이터 훈련을 받아야 한다. 운항 승무원이 되기 위한 훈련생 50여명도 시뮬레이터 훈련을 받는다.

안개가 짙게 낀 날을 재현한 제주항공 B737-8 시뮬레이터 화면(왼쪽). 오른쪽은 평상히 맑은 날의 활주로 모습./윤예원 기자

◇ 뿌연 안개, 높은 산도 대비

비행기는 푸른 하늘만 날지 않고 강풍, 폭설과 같은 극한의 상황만 아니라면 운항한다. 조종사들은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다양한 기후 현상에 대비한다. 훈련이 끝나면 회의실(디브리핑룸)에서 녹화된 훈련 영상을 보며 교육을 진행한 교관의 피드백(feedback)을 받는다.

일교차가 큰 봄에는 활주로에 안개가 짙게 낀다. 이때 시정도(물체의 존재나 형상을 인식하는 눈의 능력)에 따라 운항 당일 기재를 몰 수 있는 조종사가 달라진다. 안개가 심하게 낀 날 조종석에 앉기 위해서는 시뮬레이터 훈련 등을 통해 시험을 보고 추가 자격증을 획득해야 한다.

이날 시뮬레이터에서는 화면상 시정도를 200m로 설정했다. 통상 미세먼지가 없고 날씨가 좋은 날은 시정도가 10㎞ 이상이다. 시정도 200m는 고속도로에서 앞차와의 간격이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가 심하게 낀 날이다. 화면에서는 항공기가 활주로 가운데에 있는지조차 파악이 어려울 정도로 눈앞이 뿌옜다. 조종사들은 착륙하면서 생길 기체 결함 등 상황에 대비하는 훈련을 받는다.

제주항공은 전 세계 모든 공항별로 비행 시 악조건에 대비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지난 2002년 중국 민항기가 김해공항 북쪽에 있는 돗대산(해발 320m)과 충돌한 사고가 있었는데, 제주항공 조종사들은 김해공항에서 이륙할 때 산과 가까워졌을 때 회피하는 기동 훈련을 받는다.

장익세 제주항공 SIM훈련팀장(기장)이 28일 오전 서울 강서구 항공훈련센터에서 제주항공 B737-8 시뮬레이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윤예원 기자

◇ "안전은 '소통'에서 온다"

기장, 부기장 간의 소통 역시 안전의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위계질서가 명확한 조종사 사회의 특성상 부기장이 기장에게 의사를 표하기는 쉽지 않다. 이에 따라 최근 항공업계에서는 CRM(Crew Resource Management)을 강화하는 것이 추세다. 제주항공의 비행 시뮬레이터 훈련을 책임지는 장익세(44) 제주항공 SIM(시뮬레이터) 훈련팀장은 "훈련을 통해 조종 능력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조종사들 간의 협동과 소통 능력을 키우고자 한다"고 말했다.

장 팀장은 과거 1970년대~80년대 발생한 항공 사고의 절반 이상은 인적 요소가 원인이라고 말했다. 호흡을 맞춰야 하는 기장과 부기장 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면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부기장이 먼저 새떼 충돌 상황을 인지해도 기장의 눈치를 보며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면 사고가 발생한다. 장 팀장은 "우리나라는 조종사 간의 파워 디스턴스(Power distance·권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간의 거리)가 유독 심한 편이다. 이를 깨기 위해 녹화한 시뮬레이터 훈련 영상을 복기하며 소통 방식에 대해서도 피드백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조종사들이 받는 제주항공 시뮬레이터 교육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