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에 제품가를 평균 43% 내렸고, 12월에 또다시 평균 17% 낮췄다. 앞으로 가격은 계속 내릴 예정이다.”

‘가성비 면도기’로 이름을 알린 6년차 커머스 기업 와이즐리컴퍼니(이하 와이즐리). 지난 2017년 시중 가격의 5분의 1에 고품질 면도기·면도날을 선보이며 등장했고 글로벌 대기업이 독점하던 시장에서 점유율 9.3%를 기록했다. 도루코가 2020년 와이즐리에 면도날 특허침해소송을 내면서 제동이 걸릴 뻔했으나, 법원은 도루코의 특허 자체를 무효로 판단해 와이즐리의 손을 들어줬다.

와이즐리는 면도기 브랜드 사업을 넘어 ‘최저가 생활용품 커머스’로 사업을 확장했고 최근엔 육류, 달걀, 요거트 등 신선식품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공동 창립자 전영표 부대표는 “소비자에게 ‘압도적인 가성비’를 제시하기 위해 원가 이외에 나머지 비용을 무자비하게 없앴다”고 말했다. 2021년 위기를 겪은 와이즐리는 이달 손익분기점(BEP) 달성을 앞두고 있다. 전 부대표를 서초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전영표 와이즐리 부대표. /이은영 기자

-면도기 사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소비자로서의 문제 의식에서 시작했다. 소득이 거의 없던 대학생 시절에 마트나 편의점에서 장을 보는데 가격이 2000원, 3000원에서 3만원으로 훅 오를 때가 종종 있었다. 면도날 때문이었다. 4개에 2만~3만원 하는데 ‘이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면도날 원가는 판매가의 5%도 안 된다는 기사를 보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시장을 좀 더 들여다 보니 폭리의 원인은 독과점에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이 문제는 우리가 풀 수 있겠다고 생각해 창업하게 됐다.”

-지금은 영양제, 화장품 등 각종 생활용품을 판매하고 있다. 품목을 늘린 이유는.

“창업 6년차인 현재 160종이 넘는 제품을 팔고 있는데 솔직히 초기엔 이렇게 될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그저 면도기 시장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고객들이 꿈을 키워줬다. 사실 면도기 가격 거품을 없앤 것의 효용이 그다지 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금액만 보면 2~3개월에 2만원 정도 아끼는 것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런데 3개월 동안 팔려고 만든 재고가 2주 만에 동나고 고객들에게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다른 제품도 만들어 달라’는 문의를 받으면서 고객들이 와이즐리를 단순히 면도기 회사로 보고 있지 않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와이즐리 면도기를 만든 철학을 가지고 다른 생활소비재 문제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생활용품으로 품목을 늘리게 됐다.”

-생활용품 시장은 이미 국내외 대기업이 포진해 있지 않나. 생존 비결이 궁금하다.

“사실 망할 뻔했다. 2020년엔 매출액이 108억원이었고 2021년에 109억원이었다. 성장이 없었던 거다. 반대로 영업적자는 전년 대비 24%에서 40%로 불었다. 2017년 창업 이후 3년 동안은 빠르게 성장하다가 정체가 크게 걸리고 지표가 악화했다. ‘시리즈B의 함정’이라고도 하는데, 큰 규모로 시리즈B 투자를 받은 뒤 급격한 성장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당시 ‘많이 알려야 매출이 오른다’는 단순한 사고를 했고, ‘알리기만 하면 불티나게 팔릴 것’이라는 오만한 착각을 했다. 그래서 마케팅을 강화했다. 심지어 ‘마케터가 빛날 수 있는 회사’로 브랜딩을 하며 마케터를 공격적으로 채용했다. 6개월 동안 마케팅에만 50억원을 썼다.

그런데 결과는 참혹했다. 2021년 10~11월쯤, 이대로 가면 회사가 망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면적인 개편을 했다. 전사 타운홀 미팅을 열고 직원들에게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경영진이 잘못된 판단을 했고 지금까지 하던 프로젝트를 모두 중단하자’. 그리고 와이즐리가 고객에게 줄 수 있는, 주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를 다시 고민해보자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와이즐리 사무실. 와이즐리는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강남 테헤란로의 250평 사무실에서 나와 교대역 인근 60평짜리 사무실에 자리를 잡았다. /이은영 기자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와이즐리의 새 사무실. 오른쪽 공용 테이블이 회의실이다. /이은영 기자

-그 결론이 ‘초저가’였나.

“그렇다. 우리가 고객들한테 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가성비다. 답은 간단하다. 안 쓸 이유가 없을 정도로 가격을 내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압도적인 가성비를 가진 생활용품을 한데 모은 ‘원스톱 쇼핑몰’이 되는 것이다.”

-가격이 너무 저렴하면 소비자들은 품질을 우려할 텐데.

“품질은 포기한 채 가격만 낮추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제조 공정에서 부릴 수 있는 마법은 없다. 또 무조건 제일 저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같은 품질 대비 최저가’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품질 문제는 걱정이 없다.”

-가격은 어떻게 낮추나.

“품질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를 무자비하게 없앴다. 생활용품 가격 구조는 원가 20%, 유통비 30~40%, 마케팅·판관비 30%, 나머지는 기업 이윤이다. 바꿔 말하면 유통비와 마케팅·판관비를 빼면 타사 제품 대비 최대 5분의 1 가격에 팔 수 있는 것이다. 자체 애플리케이션(앱)과 온라인 스토어로 직접 유통하기 때문에 물류비와 인건비 정도만 남긴다.

사업방향을 돌리는 과정에서 인건비도 대폭 줄였다. 마케팅팀과 개발팀을 없앴다. 마케팅은 경영진의 오판으로 필요 이상의 자원을 투입했기 때문이고 개발자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가장 큰 실수 중 하나가 모든 걸 직접 하려고 했던 것이다. 와이즐리 앱과 온라인 스토어를 100% 자체 개발했다.

그런데 와이즐리는 냉정하게 말해서 개발자가 오고 싶어 하는 회사는 아니다. 기술적으로 고도화된 서비스를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채용도 어려웠고 마침 개발자 인건비도 너무 비쌌다. 완성차를 만들어야 하는데 타이어 장인을 데려와 바퀴부터 한땀한땀 만들려 했던 것이었다. 과감히 팀을 없애고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로 대신했다.

매달 3000만원씩 들던 사무실 비용도 줄였다. 강남 테헤란로에 826㎡(250평) 크기의 사무실에서 서초동 198㎡(60평) 사무실로 이사왔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팀 규모는 절반이 됐지만 매출액은 2배가 뛰었고 영업이익률도 크게 올랐다. 생산성으로 따지면 이전에 비해 10배 이상이 올랐다. 그 덕에 제품가격도 더 내릴 수 있게 됐다.”

-최근엔 신선식품에도 도전했다.

“전략적으로 판단했다. 생활용품 커머스로 사업을 확장하고 보니까 이 분야 구매력은 확실히 여성 고객이 갖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한 번에 구매하는 양을 보면 여성 고객은 가족들과 함께 쓸 물건을 같이 사는 경우가 많다. 남성 고객은 보통 그러지 않는다. 그래서 고객들에게 친구 추천 쿠폰을 주면서 구전(口傳) 지수를 확인했더니 여성 고객의 구전력이 남성 고객의 5~6배로 나왔다.

그래서 30~50대 여성 고객을 타깃으로 하게 됐는데, 이들이 가장 민감하게 찾는 제품이 바로 식료품이다. 육류 등으로 실험해 본 결과 처음 면도날을 팔기 시작할 때처럼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재입고 문의가 끊이지 않아, 재정비 끝에 이달 정식으로 다시 선보이게 됐다. 제품군당 하나씩만, 품질 대비 제일 저렴하게 판다.”

전영표 와이즐리 부대표. /이은영 기자

-기존에 취급하던 품목들보다 품질·재고 관리가 어렵지 않나.

“차원이 다르다. 특히 육류, 달걀 등 날것을 다루기 때문에 품질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고객이 겪는 불쾌함과 불편함의 수준이 다르다. 그래서 애초에 품질 관리를 잘하는 제조사를 선별해 발주를 하고 있다.

또 신선한 제품을 팔아야 하기 때문에 재고 관리가 어렵고 신선식품을 정식으로 판매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데이터가 많이 없어서 수요 예측이 어렵다. 발주 후 기한 내 못 팔면 폐기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은 최대한 보수적으로 수요를 잡고 있다. 점진적으로 발주량을 늘려갈 예정이다.”

-일명 ‘야쿠르트 아줌마’가 배송을 한다.

“HY(한국야쿠르트)가 저희 주주다. HY는 식료품 분야를 굉장히 오랜 기간 다뤄왔기 때문에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HY는 프레쉬 매니저를 활용해 라스트마일(last mile·배송의 마지막 구간) 물류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프레쉬 매니저가 이용하는 전동차 ‘코코’는 부피가 크고 무거운 걸 싣기 어렵다. 이 때문에 HY도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와이즐리의 상품은 두루마리 휴지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영양제, 샴푸, 화장품 등 초소형 제품이어서 코코 배송이 용이하다. 서로 수요가 맞은 것이다. 또 코코 배송은 일반 택배배송과 달리 상자를 던질 일이 없어 제품 파손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포장을 간소화해 부피를 줄일 수 있다.”

-와이즐리컴퍼니의 중장기 목표는 무엇인가.

“’압도적인 가성비’를 단 하나의 가치로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커머스를 만드는 것이다. 최근 불황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럴수록 우리가 고객에게 줄 수 있는 가치가 훨씬 더 빛을 발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모두가 제품가격을 올리고 있지만 와이즐리는 지난 연말에 가격을 내렸고, 앞으로도 계속 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