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KT(030200)가 통신 3사 최초로 매출 25조원 시대를 여는 등 큰 성과를 냈지만, 차기 최고경영자(CEO) 선임 과정에서 내홍을 겪고 있다. 대통령실과 여권의 압박 속에 연임에 도전했던 구현모 대표는 후보자에서 사퇴했고 세 차례나 선정 방식을 바꾸면서 최종적으로 윤경림 그룹트랜스포메이션 부문장(사장)이 최종 후보자로 결정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국민연금, 현대차(005380) 등 주요 주주의 반대에 부딪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내홍을 겪는 근본적인 배경에 대해 KT가 사회적인 동향(분위기)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반면 SK(034730)그룹의 경우, 문재인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에서도 사업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면서 흐름을 잘 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에서는 두 회사의 이러한 차이가 '대관' 능력에서 비롯됐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KT 서울 광화문 사옥. /뉴스1

◇ 구현모, 대관 조직 사실상 폐지... 동향에 귀 막아

14일 재계와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 따르면 구 대표는 지난 2020년에 취임한 직후 정부나 국회 대관을 담당하는 CR(Corporation Relation·사업협력) 부문을 대폭 축소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CE 조직을 경영지원 부문 산하로 옮겼다. 대관은 정부나 국회를 상대로 소통하거나 기업에 리스크(위험 요인)가 될 수 있는 정보를 취합하는 부서다.

CR 조직을 경영지원 부서 산하로 옮겼다는 것은 사실상 대관의 목소리를 직접 듣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통신업은 규제 산업인데, CR 부문을 없애는 것에 대해 당시 업계에서는 굉장히 이례적인 조직개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후에도 대관 조직을 점차 축소하는 분위기가 지속됐다. 정부나 국회를 담당했던 임원들은 업무와 관련없는 다른 부서로 전환됐다. 또 국회를 담당하기 위해 여의도에 설치했던 사무실도 폐쇄했고, 활동을 위해 지급했던 법인 카드를 대부분 회수했다. 사실상 정부, 국회 등과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사라진 셈이다.

구현모 대표이사가 주주총회에서 취임 직후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KT 제공

구 대표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전임 황창규 회장 시절의 '쪼개기 후원' 논란과 선을 긋기 위한 조치였다. 황 회장 시절 KT는 상품권을 구매해 조성한 비자금을 임직원·지인 명의로 100만~300만원씩 금액을 분할해 국회의원 후원금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구 대표도 대관 담당 임원에게 명의를 빌려주는 방식으로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들을 정치자금법 위반 및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하면서 양벌규정에 따라 KT도 함께 기소했다. 이로 인해 KT 대관 부서 임직원들이 줄줄이 조사를 받게 됐고, 이런 상황에 대한 책임으로 대관 조직을 축소했다.

대관 조직이 사라지면서 사회적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채널도 함께 사라졌다. 지난해부터 정부는 5~6%대의 고물가 상황 속에서 '통신비 인하'를 강조해왔다. 하지만 KT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30GB대 중간요금제와 8800원 e심 요금제 등을 출시하면서 담합 의혹이 불거졌다.

KT 내부에서도 대표 선임 과정에서 대관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KT 관계자는 "이번 대표 선임 과정을 보면서 대관 조직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면서 "썩은 나무를 없애기 위해 산을 태워버리면서 그간 축적해왔던 대관의 경험이 대부분 사라지게 됐다. 우리의 목소리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 지 방법조차 못 찾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소유분리기업에 대한 투명한 지배구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사전에 알았다면, 애초부터 공모 절차를 밟았을 텐데, 결국 소통의 부재가 지금은 상황을 만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부산 엑스포 공동유치위원장인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10일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 제3차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뉴스1

◇ 발 빠른 SK, 文 이어 尹에서도 선전

KT와 대조적인 대표적인 회사는 SK그룹이다. SK그룹의 자산총액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170조2830억원에서 2021년 239조5300억원으로 급증했다. 행복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던 SK그룹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과 비슷해 주목을 받았고, 문 정부에서 기업 분할을 통해 덩치를 키웠다. 지난해 SK는 창립 69주년 만에 자산 기준 재계 서열 2위로 올라서게 됐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직·간접적인 압박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많았으나 윤 정부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2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윤 대통령이 공들이고 있는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에 앞장서고 있다. 최 회장은 윤 대통령의 취임 첫 해인 지난해 대통령을 12차례 만나며 '재계 대표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다른 총수들이 6~7번씩 만난 것과 비교하면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SK그룹이 선전하는 이유는 윤석열 정부의 친(親)기업·친산업 기조를 빠르게 읽어낸 대관의 힘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정부 인수위원회에도 SK그룹 출신 인사가 대거 포진되면서 눈길을 끌었다. 산업 정책을 담당하는 인수위 경제2분과에 SK그룹 출신 인사는 총 3명이었다.

대표적으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된 이창양 카이스트 교수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년 간 SK하이닉스(000660) 사외이사로 활동했다. ㈜SK 경영경제연구소장(상무급), SK차이나 수석부총재, ㈜SK 중국경제연구소장(전무급) 등을 역임했던 왕윤종 동덕여대 교수는 국가안보실 경제안보비서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SK의 대관 인재 육성도 남다르다. 보통 대관 조직에 있는 사람은 대관 역할만 담당하는 경우가 많지만, SK의 경우 대관 조직에서 실력을 인정 받을 경우 그룹의 경영자로 성장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형희 커뮤니케이션위원회 위원장(사장)이다. 이 위원장은 재계에서 '대관 전문가'로 불릴 만큼 전방위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형희 SK SV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5월 서울 종로구 SK서린사옥에서 2021년 SK그룹의 사회적 가치 화폐화 측정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SK제공

최근 SK그룹은 인사를 통해 이 사장이 SK그룹의 대관과 홍보를 모두 책임지게 했다. 또 지난해 SK텔레콤(017670)은 오랜 기간 대관 업무를 이끈 정보통신부 출신 하성호 CR부문장을 SK텔링크 대표로 선임했다.

한 대관 관계자는 "인수위에서는 차기 정부 5년 간의 정책이 결정되는 시기인데, 각 인수위원의 사전 정보와 경험이 반영될 수 밖에 없다"라며 "SK그룹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물들이 인수위에 포함됐다는 것은 SK그룹에 굉장히 유리한 상황이다. SK의 경우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검찰, 경찰, 법조인, 국회 보좌관 등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을 대관으로 채용하고 있고, 최고위층들이 동향을 파악할 수 있도록 수시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