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올해 경제 정책 방향으로 '내수 확대'를 최우선 순위로 발표하며 경기 부흥 기조를 내세웠지만,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아직 업황 개선을 낙관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매출 비중이 높은 국내 석유화학 기업 입장에서 중국의 경기 부양은 반가운 소식이나, 중국산 제품 생산량이 늘어나 공급이 과잉될 우려또한 병존하기 때문이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중국 업체들과 비교해 기술 우위를 가지는 고부가 제품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지난 5일 열린 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올해 주요 개발 목표는 약 5%의 GDP 성장"이라며 "국내 수요 확대에 힘쓰고 소비 회복과 확대에 우선순위를 둘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올해 최우선 경제 업무로 내수 확대를 내놓으며 경기 부양 기조를 밝힌 것이다.

LG화학 여수 공장 전경./LG화학 제공

세계 최대 석유화학 제품 소비국인 중국의 경기 부양은 국내 석유화학 기업에는 좋은 소식이다. 지난해 중국 봉쇄로 석유화학 제품의 중국 수출액은 206억7513만달러(약 27조2270억원)로 전년 대비 5.5% 줄었다. 중국은 국내 기업들이 수출하는 석유화학 제품 가운데 약 40%의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중국이 석유화학 산업의 내재화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 대규모 설비 증설을 앞두고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중국의 폴리프로필렌(PP) 증설 물량은 655만톤(t)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지난해 기준 국내 기업의 전체 연간 생산능력(636만톤)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중국의 석유화학 생산량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중국의 폴리에스터(합성섬유) 공장 가동률은 작년 65%까지 내려갔으나 이달들어 80%를 상회했다. 플라스틱 제조에 쓰이는 BPA(비스페놀A) 공장 가동률 역시 기존 68%대에서 최근 90%까지 올라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폴리프로필렌(PP), 폴리에틸렌(PE) 등 범용 석유화학 제품보다는 중국과 비교해 기술 우위에 있는 고부가 제품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LG화학의 POE(Polyolefin Elastomer) 제품./LG화학 제공

LG화학(051910)의 경우 POE(Polyolefin Elastomer) 제품을 앞세우고 있다. POE는 고무와 플라스틱의 성질을 모두 가진 고부가 합성수지로 태양광 필름 등에 사용된다. POE는 공정 난이도가 높아 세계에서 5개 업체만 생산이 가능하다.

LG화학은 2021년부터 충남 서산에 연산 10만톤 규모의 POE 생산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LG화학 관계자는 "서산 공장의 증설은 올해 4분기 중 마무리될 예정이고, 완공 시 세계 2위 규모인 총 38만톤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니트릴부타디엔라텍스(NBL) 역시 LG화학이 내세우는 제품이다. NBL은 부타디엔을 주원료로 하는 합성고무 소재로 니트릴 장갑의 핵심 원료로 사용된다. 니트릴 장갑은 강도와 내화학성이 뛰어난 라텍스 장갑으로 기존의 천연고무 장갑을 대체해 의료용, 산업용, 요리용 등으로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 LG화학은 국내 여수 공장뿐만 아니라 중국, 말레이시아에도 NBL 생산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롯데케미칼(011170)도 특수 소재인 ABS를 앞세워 중국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목표다. ABS는 아크릴로나이트릴(Acrylonitrile), 부타디엔(Butadiene), 스티렌(Styrene)의 세 가지 성분을 중합해 만들어진다. 가공이 쉬워 생활용 소재로 많이 쓰이며, 전체 가전제품의 약 40% 정도가 ABS로 만들어진다.

롯데케미칼 ABS 소재와 ABS가 적용된 일상 속 제품들./롯데케미칼 제공

롯데케미칼이 생산하는 ABS는 외부 충격에도 쉽게 깨지지 않으며, 내열성과 난연성이 우수하고 도금도 가능해 금속화 플라스틱으로도 쓰이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속적인 증설을 통해 현재 전 세계 ABS 생산업체 가운데 5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중국 리오프닝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중국의 수요가 공급보다 늘어나야 국내 기업에게도 이익이 되는데 현재로서는 상황을 마냥 낙관하기 어렵다"며 "중국의 범용 제품 공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 위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