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이차전지) 업계가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관련 기술 보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소재 업체들을 중심으로 기술 유출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양극재 1위 제조업체 에코프로비엠(247540)은 올해 안에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기술 수출 승인을 받는다는 계획이다. 에코프로비엠은 캐나다 퀘벡으로의 진출을 추진 중인데, 배터리 소재 관련 기술은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돼 산업부 산업기술보호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만 해외 공장에서 쓰일 수 있다. 기술 유출 시 국내 핵심 산업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최근 글로벌 배터리 시장 내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소재 부문에서도 중국 업체들은 저렴한 가격과 물량을 앞세워 시장을 공략하고 있지만, 아직 기술적인 면에서 국내 업체의 수준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지금처럼 기술력을 기반으로 시장 우위를 점하는 상황이 이어져야 국내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엘앤에프(066970)는 지난해 기술 수출 심사에서 발목을 잡혀 미국 진출에 제동이 걸린 바 있다. 국가핵심기술인 양극재 제조 기술에 대한 보안 조치가 미흡하다는 이유에서다. 국가 예산으로 연구·개발(R&D)비용을 지원받았을 경우 정부 승인을 받아야 수출이 가능한데, 엘앤에프는 국비 지원을 받은 적이 있다.
엘앤에프는 니켈 함량 90% 이상인 양극재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실상 유일한 국내 기업으로 여겨진다. 당시 엘앤에프는 미국 폐배터리 재활용 기업 레드우드와 합작법인(JV) 형태로 미국 진출을 검토하고 있었는데, 파트너사와 공장을 함께 짓는 사례인 만큼 정부에서 까다롭게 들여다볼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엘앤에프는 단독 공장 설립 가능성도 열어두고 이달 중 수출 심사 재신청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배터리 소재 업계 관계자는 "파트너사에서 합작공장 설립을 위해 요구한 장비 이전 등 일부 조건이 기술 유출 우려를 키운 것으로 안다"며 "합작공장을 지으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협력사의 원자재 공급망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생산 협력 과정에서 기술 공유가 있을 수 있다는 건 위험요인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에코프로비엠은 자체적으로 사내 기술 보안을 한층 더 강화했다. 수출 심사를 앞둔 데다 정부에서 실시하는 감사나 요구사항이 이전보다 엄격해진 탓이다. 휴대폰에 보안 스티커를 부착하는 것은 물론 본사 출입구에 스크리닝 기계를 설치해 오가는 외부인은 물론 모든 직원의 소지품 및 신체 검사를 실시하도록 했다. 기술 보안 차원의 통제를 연구소 중심에서 전사로 확장하는 분위기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산업이나 사업장별로 보안 등급이 나눠져 있어서 반도체, 배터리 등 핵심 산업은 보안에 힘을 쓸 수밖에 없다"며 "본사나 사업장을 오가는 사람들은 물론 주차장의 차량까지 통제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차량은 문서나 장비 등을 반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설치된 특수 카메라로 내외부 시설을 촬영할 위험도 있다"고 설명했다.
포스코케미칼의 경우 지난 1월 말 산업기술보호위원회으로부터 국가핵심기술인 니켈 함량 80% 이상 양극재 설계, 제조 및 공정기술 수출을 승인받았다. 포스코케미칼과 완성차 업체 GM의 합작사 얼티엄캠은 캐나다 퀘벡에 연산 3만톤 규모 하이니켈 양극재 공장을 2024년 6월 완공해, 2025년 상반기부터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국가핵심기술 유출은 매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특허청 등에 따르면 연도별 해외로 유출된 산업기술 가운데 국가핵심기술은 2018년 5건, 2019년 5건, 2020년 9건, 2021년 10건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해외 기술유출로 피해를 본 기업 유형은 중소기업이 절반이 넘는 53%를 차지했고, 대기업(37%), 대학 및 연구소(10%)가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