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011200)의 2만4000TEU(1TEU=20피트 컨테이너)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오슬로(OSLO)호’는 지난달 4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출항, 독일 함부르크와 벨기에 안트베르펜(앤트워프)을 거쳐 같은 달 23일 모로코 탕헤르에 도착했다. 이후 오슬로호는 이집트 수에즈운하 대신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을 돌아 현재 인도양을 지나고 있다.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것보다 약 9000㎞ 긴 항로를 선택한 것이다.
HMM뿐만 아니라 일본 오션네트워크익스프레스(ONE) 등 전 세계 컨테이너선사들이 수에즈운하 대신 희망봉 항로로 우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해상 운임이 약세인 상황에서 수에즈운하 통항료를 아껴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25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HMM의 2만4000TEU급 컨테이너선 사우샘프턴(Southampton)호 역시 지난해 12월 29일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출발, 수에즈운하 대신 희망봉을 지나 이달 16일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HMM 관계자는 “수에즈운하 통항료가 많이 올라 비용 절감 차원에서 아시아~유럽 노선의 일부 선박이 희망봉으로 우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에즈운하청(SCA)은 선박의 종류와 무게에 따라 수에즈운하 통항료를 책정하는데, 지난 1년간 인상이 이어졌다. 지난해 2월 기본요금 6%를 올린 것을 시작으로 3월에 추가 할증료율 5~10%를 적용했고, 5월에는 추가 할증료율을 7~20%로 상향 조정했다. 올해 1월에 통행료를 또 15% 일괄 인상했다.
현재 수에즈 운하 통항료는 2만4000TEU급 컨테이너선 기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할 때(헤드홀·head-haul) 170만달러(약 22억1500만원), 유럽에서 아시아로 돌아올 때(백홀·Back-haul)는 140만달러(약 18억2400만원) 수준이다. 수에즈 운하로 아시아~유럽 노선을 왕복하면 통항료만 310만달러(약 40억원) 안팎을 내야한다는 뜻이다.
컨테이너선 운임이 약세인 상황에서 수에즈운하 통항료 인상에 따른 부담이 크다. 중국 상하이해운거래소가 지난 24일 발표한 아시아~유럽 노선의 스폿(Spot·비정기 단기 운송 계약) 운임은 882달러다. TEU당 수에즈운하 통항료가 약 100달러인 점을 고려하면, 운임으로 받은 돈의 11%를 통항료로 지불해야 한다.
선박 연료비가 하락하면서 장거리인 희망봉 항로를 선택할 때 드는 비용은 줄었다. 싱가포르에서 지난 23일 선박용 경유(MGO)는 t(톤)당 774달러에 거래됐다. 지난해 6월 t당 1407달러보다 절반 가까이 싸졌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선적량이 많은 헤드홀 구간은 시간을 맞춰야 해서 수에즈운하를 이용해야 한다”면서도 “백홀 구간만이라도 수에즈운하 대신 희망봉 항로를 선택하면 2만4000TEU급 컨테이너선 기준 80만달러(약 10억원)를 절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컨테이너선사들이 운항시간을 늘려 공급을 조절하려는 측면도 있다. 수에즈운하 대신 희망봉을 돌아가면 아시아~유럽 노선 기준 7일에서 10일가량이 더 걸린다. 그만큼 컨테이너선 선복량(적재능력)은 감소한다. 전 세계 컨테이너선사들이 경기 침체로 컨테이너선 수요가 줄자 선박 속도를 늦춘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항로 변경 외에도 컨테이너선사들은 컨테이너 임대·보관 비용을 줄이기 위해 보유 컨테이너도 조정 중이다. 글로벌 해운컨설팅업체 드류리(Drewry)는 현재 잉여 컨테이너 500만TEU 수준으로 연말까지 임대한 컨테이너를 조기 반납하거나 노후 컨테이너를 폐기하는 움직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컨테이너선 운임이 반등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비용 절감 노력은 계속될 전망이다. 컨테이너선 운임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 24일 기준 946.68로 2020년 6월 이후 가장 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