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과 공급 과잉, 유가 상승 등 '3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석유화학 업계가 연초부터 '자금 수혈'에 나서고 있다. 미래 먹거리 확보 등 신사업 투자금 확보를 위해, 경쟁적으로 회사채를 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의 재무건전성과 계열사 리스크, 사업 구조 등에 따라 기업들의 수요 예측은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 SK·한화 회사채 '흥행'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SK케미칼(신용등급 A+)은 2000억원 규모 회사채를 증액 발행하기로 했다. 당초 모집하려고 한 금액(1000억원) 두 배 수준이다. SK케미칼은 수요예측에서 1조1000억원 넘는 주문을 받았는데, 올해 신용등급 A급 발행사 가운데 최대 규모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7일 SK케미칼 신용등급 근거로 ▲화학 및 생명과학 부문으로 다각화된 사업 구조 ▲ 사업부 매각과 구조조정, 신사업 투자를 바탕으로 시현 중인 우수한 수익성 ▲ 자회사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 기업공개(IPO) 이후 유지 중인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제시했다.
최근 석화업체들은 줄줄이 회사채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연초 효과에 힘입어 자금 시장이 호황을 보이는 만큼 업황 부진 우려를 선제적으로 대비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수요 부진, 공급 과잉, 유가 상승이 한데 맞물리며 석화업체 수익성은 악화하는 상황이다.
배인해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글로벌 경기 저하로 중국 리오프닝 효과가 희석되는 가운데, 저율 가동 중인 역내 크래커들의 가동률 상향으로 공급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며 "중국의 유화제품 자급률 상승도 업황 개선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달 수요예측에 나선 SK인천석유화학(A+) 회사채 발행에도 1조원에 가까운 뭉칫돈이 몰렸다. 기존에 SK인천석유화학이 계획한 모집액은 1500억원이다. SK인천석유화학의 경우 영업이익 개선으로 인한 신용등급 상향 여지, SK그룹의 지원 여력 등이 수요를 뒷받침했다는 평가다.
지난 14일에는 한화토탈에너지스(AA0)가 수요예측에서 1조원이 넘는 자금을 끌어모으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기존에 목표한 모집액 2400억원의 4배에 가까운 규모다. 회사가 모집액 2배 수준인 4800억원까지는 증액 한도를 열어둔 만큼 증액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계열사 리스크에 우는 롯데케미칼... 업황도 '부진'
하지만 같은 업계지만 미매각이 발생한 경우도 있다. 지난달 1200억원 규모 자금 조달에 나선 효성화학(A)은 수요예측에서 단 한 건의 주문도 받지 못했다. 부정적인 신용등급과 차입금 등 재무 부담 우려가 투자 심리를 위축시켰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매각분 전량은 산업은행과 주관사가 인수하기로 했다.
롯데케미칼(AA+)은 회사채 발행을 앞두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실적 부진, 차입금 부담 증가로 신용등급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있는 데다 당장은 잠잠해진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려가 향후 롯데그룹 발목을 잡을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는 이유에서다.
롯데케미칼은 오는 22일 35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진행할 예정이다.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최대 7000억원까지 증액 발행할 계획이다. 이번에 조달한 자금은 향후 채무상환에 쓰일 예정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달 유상증자를 통해 1조2000억원 규모 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윤용식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리오프닝으로 인한 수요 증가에도 불구하고 증설과 낮은 가동률로 석유화학 업황 회복 속도는 더딜 전망"이라며 "특히 롯데케미칼의 경우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로 인한 차입 부담이 존재하고, 그 인수를 시작으로 2차전지 등 신사업 투자가 이어질 예정인 만큼 자금 확보에 대한 우려도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