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해사기구(IMO)와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해운업 탄소 감축을 위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당장 탄소세가 도입되면 국내 해운사들이 1년에 총 4조원이 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해운사들뿐만 아니라 정부까지 나서서 해운업 탈탄소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7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IMO 시장기반조치 도입이 국내 해운기업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해운사 95개사의 선박 1094척의 연간 탄소배출량은 2850만톤(t)으로 추산됐다. 선박의 종류와 연료 종류 등을 토대로 연간 연료 소모량 추정치를 산출해 분석한 결과다. ▲컨테이너선 807만t ▲드라이벌크선(건화물선) 802만t ▲원유운반선(유조선) 357만t 등이 척수가 많은 만큼 탄소배출량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현대미포조선이 2021년 인도한 메탄올 추진 PC선의 시운전 모습. /한국조선해양 제공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진이 탄소배출량을 토대로 검토한 모든 탄소세 시나리오에서 국내 해운사들은 연간 조(兆) 단위의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글로벌 해운사 머스크(A.P. Moller - Maersk)는 탄소중립을 위해 탄소배출량 1t당 150달러의 탄소세를 부과할 것을 제안했다. 이 기준대로면 국내 해운사들은 4조8916억원을 탄소세로 지불해야 한다. 국내 해운사들이 2021년 기준 벌어들인 당기순이익 총 12조1668억원의 40.2%를 탄소세로 내야 한다는 의미다.

▲마샬아일랜드와 솔로몬아일랜드가 IMO에 제안한 탄소배출량 1t당 100달러를 기준으로 하면 3조2611억원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탄소배출량 1t당 75달러의 경우 2조4458억원 ▲일본이 탄소세를 지지하며 낸 탄소배출량 1t당 56달러를 기준으로 하면 1조8262억원이다. 다른 산업에 탄소세를 이미 시행하는 27개국 평균 탄소배출량 1t당 32.8달러를 기준으로 하면 1조700억원의 탄소세 부담이 발생한다.

기업별로 보면 HMM(011200)은 선박 탄소배출량이 약 400만t으로 추정됐다. 시나리오에 따라 연간 최대 6862억원에서 최소 1501억원의 탄소세를 내게 된다. 2021년 기준 자기자본수익률(ROE)이 6.6%포인트(p)에서 1.4%p 하락할 수 있는 수준이다. 팬오션(028670)은 탄소배출량 추산치 약 267만t을 기준으로 하면 탄소세로 연간 최대 4528억원에서 최소 1003억원 지불해야 한다. 2021년 기준 ROE가 최대 12.8%p, 최소 2.8%p 떨어진다.

정확한 비용은 탄소배출량 1t당 가격이 정해져야 하지만, 해운업에 대한 탄소 감축 압박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IMO는 해상 물동량 증가 등으로 전 세계 해운업 탄소배출량이 지속해서 늘자, 2050년 국제해운 탄소배출 감축목표를 기존 50%에서 100%로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존의 에너지효율 강화 규제에 더해 배출한 만큼 부담금을 납부하게 하는 탄소부담금 제도(탄소세) 등 경제적 규제 조치를 추가로 도입할 가능성이 있다.

해운업에 대한 탄소배출권거래제(ETS)는 이미 가시화하고 있다. EU는 'Fit for 55(2030년까지 1990년보다 탄소 최소 55% 감축)'의 일환으로 2024년부터 해운 분야에 탄소배출권거래제(ETS)를 적용할 계획이다. 도입 시 EU 역내를 운항하는 선박은 온실가스 배출량의 100%를, 다른 지역에서 EU를 입출항하는 선박은 온실가스 배출량의 50%만큼 ETS 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진은 EU의 ETS 가격 1t당 49.8달러 기준으로 국내 해운사들이 2024년부터 2027년까지 총 2조7096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가장 저비용 시나리오인 국내 ETS 가격 1t당 15.9달러를 적용해도 8651억원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분석됐다.

탄소세와 해운 분야 ETS 모두 논의가 이어지겠지만,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탄소 감축이라는 큰 방향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대비해야만 한다"며 "국제관계가 얽혀있는 문제여서 각 선사의 노력에 더해 정부 차원의 지원도 필수"라고 말했다.

국내 해운사들은 친환경 선박을 늘리고 있다. HMM은 벙커C유 등 화석연료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메탄올을 연료로 쓰는 9000TEU(1TEU=20피트 컨테이너)급 컨테이너선 9척을 발주하는 데 1조4128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팬오션, KSS해운(044450), 대한해운(005880)도 액화천연가스(LNG)선을 확대하고 있다.

정부도 '국제해운 탈탄소화 추진전략'을 제시했다. 국제 환경 규제 대상인 5000t급 이상 외항선 867척 가운데 노후 선박부터 친환경 선박으로 바꿀 계획이다. 특히 2030년까지 유럽·미주 정기선대의 60%를 먼저 전환하기로 했다. 또 한국해양진흥공사와 KDB산업은행 등이 최대 4조5000억원 규모의 공공기금을 조성해 친환경 선박 도입 등을 지원하고, 암모니아 추진설비나 수소연료전지와 같은 무탄소 기술 개발도 뒷받침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