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견 철강사 세아베스틸 통상임금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회부된 가운데 정유업계 내부에서 판결을 앞두고 노사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대법원이 세아베스틸 노동조합 손을 들어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기면서 노조 내부에서는 통상임금과 관련해 사측 압박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아베스틸 사건의 핵심 쟁점은 통상임금 항목 중 '재직자 요건'(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에 있다. 대부분 기업은 정기상여금에 재직자 요건을 붙여 통상임금으로 포함되는 것을 막아왔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이 2018년 12월 세아베스틸 사건에서 재직자 요건 자체가 무효라고 판단하면서 파장이 일었다.
당초 대법은 2013년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는 상여금 등 재직조건부 임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이후 유사 소송 판결의 기준점이 됐다. 대법은 재직조건부 임금은 통상임금을 규정하는 '고정성'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고정성은 재직이라는 추가 요건 없이도 일정 근무에 대한 대가를 확정적으로 지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S-Oil(010950)(에쓰오일) 노조는 최근 사측에 최고(催告)장을 발송했다. 최고장은 상대방이 일정 행위를 하도록 재촉하는 문서다. 의무이행과 권리행사에 관한 것으로 나뉘고 법적인 효력이 있다. 통상 사측이 최고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송 단계로 넘어가기 때문에 일종의 소송 전 사전고지라고 볼 수 있다. 조합원 600여 명이 최고장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 등을 포함해 다시 산정해야 한다는 게 노조 주장이다. 통상임금은 초과근무, 휴일근무수당, 퇴직금 산정기준이 되기 때문에 상여금이 포함되면 그간 지급하지 않은 수당과 이자까지 포함해 사측이 부담하는 인건비는 크게 늘어난다. 세아베스틸 사건에서 재직자 요건에 대한 대법원의 해석이 뒤집히면, 노조 요구에 명분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노조 관계자는 "근로자에 유리한 판결이 내려질 경우 받을 수 있는 체불임금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최고장을 보냈다는 이유로 사측은 승진, 보상 불이익을 운운하며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며 "세아베스틸 판결이 통상임금뿐 아니라 또 다른 임금 등에도 영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과거부터 제조업을 중심으로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 갈등은 꾸준히 있었지만, 판결은 점점 근로자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추세다. 현대중공업 사건을 계기로 사측 방어 수단으로 활용돼 온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이 적용될 가능성은 희박해진 만큼, 재직자 요건에 대한 법리를 다루는 세아베스틸 사건에 노사 모두 촉각을 세우는 상황이다.
신의칙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은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기업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고,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할 경우 이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법원의 신의칙에 대한 판단에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인정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는 게 중론이다.
SK이노베이션(096770)의 경우 지난해 노사 합의로 약 7년간 이어진 통상임금 공방을 마무리했다. 앞서 노조는 사측을 상대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패소했고, 2심 재판부는 세아베스틸 사건의 대법 결론이 나온 이후로 판결을 미룬 상태였다. 노조는 사측과 잠정 합의로 소송 취하를 결정했다.
다만 내부에서는 다소 성급한 합의였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잡음이 계속되고 있다. 세아베스틸 사건이 전원합의체로 회부된 만큼 판례가 바뀔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분위기다. SK이노베이션 노사는 정기상여금 800%(소정 209시간)를 통상임금에 반영해 지급하는 방향으로 뜻을 모았는데, 소정 근로시간, 과거 소급분 미지급 등 주요 조건이 근로자에 불리하게 적용됐다는 것이다.
정유업계에선 현대오일뱅크 노사가 처음으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영구 산입하기로 합의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2017년 정기 상여금 600%를 통상임금에 반영해 과거 소급분과 앞으로 지급할 산입분(소정 180시간)에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과거 소급분 지급 대상 기간은 2012~2016년 등 총 4년 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