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배터리 회사 CATL이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와 함께 미국에 배터리 합작 공장을 설립한다는 소식에 국내 배터리 소재 업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요건이 완화되며 중국산 원료로 만든 양극재·음극재 등도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중국이 IRA를 우회해 미국 진출을 추진하자 IRA의 대(對)중국 견제 관련 항목이 다시 강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소재 업체들은 오는 3월 발표될 IRA 최종안을 기다리며 상황에 맞춰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15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CATL은 포드와 함께 미국 미시간주에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합작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포드가 공장 설립에 필요한 35억달러(약 4조4500억원)를 전액 투자하면서 기반시설과 건물 등 공장 지분 100%를 소유하고, CATL은 기술 라이선스를 제공하는 형태다. 이는 전기차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미국의 IRA를 우회하는 모양새다.

배터리 양극재./LG화학 제공

지난해 12월 미국 재무부는 IRA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IRA의 방향성에 대한 세부 내용을 공개했는데, 여기에는 '핵심 광물'의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기존에 정의된 핵심 광물은 순도 99% 이상의 리튬, 니켈, 알루미늄, 코발트 등 전통적인 광물에 국한됐으나 전구체, 양극재, 음극재, 집전체 등도 핵심 광물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들 핵심 광물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도 완화됐다. 핵심 광물을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하지 않아도 가공 등을 통해 50% 이상 부가가치를 창출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완화된 조건대로라면 중국에서 원료를 들여와 한국 공장에서 양극재를 만들어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주민우 NH투자증권(005940) 연구원은 바뀐 IRA 가이드라인에 대해 "국내 소재 업체들의 투자 부담과 광물 조달 부담이 기존 예상보다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단기 투자 부담이 컸던 양극재 업체들의 투자비 부담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국내 소재 업체들은 중국산 원료 의존도가 높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수산화리튬과 산화리튬 전체 수입액(36억8000만달러) 가운데 중국 수입액은 32억3000만달러로 87.9%에 달했다. 재작년보다 4.1%포인트(p) 늘었다. 수산화리튬은 국내 배터리업계 주력 제품인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에 주로 쓰인다.

코발트(산화코발트·수산화코발트)도 지난해 전체 수입액(2억5000만달러) 가운데 중국 수입액이 72.8%(1억8000만달러)를 차지해 전년 대비 비중이 8.8%p 증가했다. 중국산 코발트 수입 비중은 2018년 53.1%에서 2019년 56.3%, 2020년 83.3%까지 상승한 뒤 2021년 64.0%로 줄었지만, 지난해 다시 의존도가 커졌다.

LG화학 테네시 양극재 공장 예상 조감도./LG화학 제공

그러나 이번 CATL의 미국 우회 진출 추진으로 오는 3월 IRA 최종안에서 기존 내용이 변경돼 광물 관련 규제가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배터리 소재 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은 IRA 초기 기준에 맞춰 대책을 수립하고 투자를 계획하고 진행 중이지만, 지난해 12월에 완화된 조건이 나오면서 수익성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며 "IRA 자체가 중국을 견제하는 목적이 있는 만큼 관련 내용도 수정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배터리 소재 업체들은 3월에 나올 IRA 최종안에 따라 투자 계획을 확정할 계획이다. 에코프로비엠(247540)은 2026년까지 북미에서 18만톤(t) 규모의 생산 능력을 갖춘다는 계획인데, IRA 개정안이 발표된 뒤 공장 설립 등 구체적인 북미 투자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양극재 공장 설립을 검토 중인 엘앤에프(066970)도 신중한 모습이다. 엘앤에프는 합작공장과 단독공장 설립을 모두 추진하고 있는데, 지난해 5월 미국 배터리 재활용 기업 레드우드에 투자하며 북미 진출을 공식화했다. 엘앤에프는 최근 4분기 실적 설명회에서 "IRA 법안이 최종 확정돼야 해외 진출 비즈니스 모델을 확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