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전 직원이 6명인 한 스타트업에서 프로덕트 매니저(PM·상품 전략을 세우고 관리하는 )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전사 미팅을 하면서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데 3명이 현직자였습니다. 한 친구는 유명 게임사의 데이터 과학자였고, 또 다른 친구는 한 검색엔진 회사의 프론트엔드(프로그래밍) 개발자였습니다.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회사의 디자이너도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정보통신(IT) 업계에 부업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황현태 스페이스와이 대표는 경력직 파트타임 채용 플랫폼 ‘DIO(디오)’를 출시하게 된 계기로 IT업계에 몸담으면서 느꼈던 경험을 언급했다. 국내에 다양한 구인구직 플랫폼이 있지만 파트타임 일자리를 구하는 현직자를 위한 플랫폼은 없다는 점을 깨닫고 사업 성공 가능성을 포착했다는 것이 황 대표의 설명이었다.

황현태 스페이스와이 대표. 스페이스와이는 경력자 채용 플랫폼 '디오(DIO)'를 운영하고 있다./최온정 기자

DIO는 IT업계에 종사하는 현직자와 기업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직자를 대상으로하는 만큼 일반적인 구인구직 플랫폼과는 달리 블라인드 방식으로 채용 과정이 이뤄진다. 자체적인 검증을 거친 현직자들을 인력 풀(Pool)에 등록한 후, 알고리즘을 통해 기업이 원하는 조건에 맞는 사람을 연결해주는 방식이다. 현직자와 기업이 면접을 수락하면 화상 미팅이 열리고 계약 여부를 결정한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채용 방식이 입소문을 타면서 현재 6000명의 현직자가 서비스에 가입했다. 구인기업은 3000여개사가 등록돼있다. DIO를 통해 계약까지 체결된 경우는 작년 2월부터 현재까지 700여건이다. 누적 거래액(DIO를 통해 현직자에게 지급된 급여 총액)은 17억원이다. 황 대표를 서울 강남구의 한 공유오피스에서 만났다.

-어떻게 창업을 결심하게 됐나.

“스페이스와이를 창업하기 전 B2B 세무 스타트업인 ‘혜움랩스’에 초기 멤버로 합류했다. 그전까지는 연세대학교 기계공학과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쭉 학교에 있었다. 그런데 스타트업에 들어온 후 공부보다는 기업을 운영하는 과정에 더 재미를 느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주도적으로 이뤄낼 수 있다는 점에서 창업에 본능적으로 끌렸다. 이후 4년을 근무하다가 스페이스와이의 공동창업자인 남송학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만나면서 직접 창업을 하게됐다.”

-파트타임 채용 플랫폼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시니어 개발자인 남송학 CTO의 경험이 기반이 됐다. 창업을 준비하며 남 CTO에게 스타트업의 테크리드(기술적 의사결정을 담당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 제안이 많이 들어왔고, 작년에는 파트타임 제안까지도 들어왔다. 남 CTO는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현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경력직 파트타임 채용 플랫폼을 제안했다.

작은 회사가 좋은 회사에 있는 사람을 데려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부업 방식이라면 회사를 바꾸지 않고도 추가 소득을 얻을 수 있어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으로 봤다. 그래서 사업 구상을 시작했고, 2021년 11~12월 테스트를 거쳐 작년 2월 정식으로 런칭했다.”

-스타트업 시장에서 인력난이 심각한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소프트웨어(SW) 분야 개발인력 수요는 32만6450명이다. 그러나 공급은 18만8700명에 그친다. 특히 기업이 선호하는 경력 3년 이상의 시니어급 인재는 많이 부족하다. 지난 2021년 국내 기업은 총 700만개를 넘어섰는데, 이 중 상위 200등 이내 기업을 제외하면 모두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소위 말하는 ‘네카라쿠배당토’(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 당근마켓, 토스)에 다니는 시니어 개발자들이 잘 다니고 있는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회사에 몸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니어급 인재를 데려오려는 기업의 경쟁은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

디오(DIO)는 기업이 원하는 조건에 맞춰 다양한 직종의 구직자를 매칭해준다./디오 홈페이지 캡처.

-DIO는 어떤 플랫폼인가.

“DIO는 경력직 실무자를 구하는 기업과 현직자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이다. 주로 개발자나 마케터, 디자이너, 프로덕트 매니저를 대상으로 한다. IT업계에는 프리랜서도 많지만 사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현직자 중에 더 많다. 채용 프로세스를 거치면서 검증 과정을 거친 인재들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을 활용하면 스타트업의 인력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서비스를 제공하게 됐다.”

-채용 과정은 어떻게 되나.

“기업이 공고를 내면 알고리즘을 통해 조건에 맞는 현직자를 추천해준다. 현직자는 DIO가 직접 업종과 능력을 검증한 후 인력 풀에 등록하는데, 구인기업과 구직자의 요구조건이 맞으면 자동으로 연결된다. 양쪽이 연결되는 과정은 소개팅 애플리케이션(앱)의 연결 방식과 비슷하다.

구직자에게 조건이 맞는 기업을 추천해주면, 구직자는 해당 기업의 조건을 따져 면접 여부를 결정한다. 기업과 구직자가 연결되면, DIO가 함께 참여하는 화상 미팅이 열리고 계약 여부를 결정한다. 최종적으로 계약이 체결되면 DIO는 현직자가 받는 월급의 약 10~15%를 기업으로부터 별도 수수료로 얻어간다.”

-현직자가 부업을 갖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는 없나.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업무시간을 잘 지키고, 소속회사와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에서 일하지만 않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퇴근 후에 집에서 쿠팡 라이더를 하거나, 유튜브나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개발자들이 인터넷 강의를 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출퇴근 이외의 시간에 실시한 수익 활동을 사생활의 범주로 보는 판례(서울행법 2001. 7. 24. 선고, 2001구7465판결 참조)도 있었다.”

-부업 사실이 공개되지 않기를 바라는 현직자가 많을텐데.

“채용 과정이 철저히 블라인드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DIO가 고려하는 연결 기준은 간단하다. 기업이 원하는 업무를 현직자가 경험해 본 적이 있는지, 현직자가 원하는 처우를 기업이 맞춰줄 수 있는지 등이다. 이 조건이 맞으면 기업과 현직자를 연결해주고, 현직자와 기업이 동의하면 화상 면접이 열린다. 채용이 돼도 현직자가 이름이나 소속 회사를 알릴 필요가 없다. 현직자가 직접 밝히지 않는 한 소속 회사가 부업 사실을 알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디오의 현직자-구인기업 매칭 과정/스페이스와이 제공

-현직자들과 구인기업들의 반응은 어떤가.

“현직자들은 월급 외 부수입을 올릴 수 있어 만족하고 있다. DIO를 통해 부업을 구한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월 300만원의 수입을 더 얻고 있다. 한 빅테크(네이버, 카카오 등) 기업에 다니는 개발자는 DIO에서 6개월간 약 5000만원을 벌어가기도 했다. 빅테크 회사에 다니지는 않지만,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DIO에서 6개월간 3400만원을 번 개발자도 있다.

기업도 만족도가 높다. DIO에서는 공고 등록 후 매칭까지 약 3일이 소요된다. 지원자를 구하지 못해 인력난에 시달리던 기업이 DIO를 통하면 대기업 출신 개발자를 채용할 수 있다. DIO를 통해 파트타임 근로자를 구한 기업이 계약을 연장하는 비율은 93.3%에 이른다. 한 핀테크 서비스 기업은 DIO 플랫폼 출시 직후 파트타임 근로자 8명을 구한 뒤 1년째 쓰고 있다. 어떤 회사는 성인용 서비스를 만드는데 풀타임 근무자 채용이 쉽지 않아 고생하던 중 DIO를 통해 파트타임 개발자를 채용했다.”

-그간의 성과는 어땠나.

“처음 서비스를 출시했을 당시 구인기업은 30개사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3000개사로 늘어났다. 플랫폼에 등록된 구직자도 6000명에 달한다. 작년 2월 서비스 출시 후 지금까지 DIO를 통해 발생한 거래액(구인기업이 근로자에게 지급한 급여) 총액은 17억원에 달한다. 현재 매달 2억5000만원가량이 거래되고 있다. 수수료 매출은 월 20%씩 꾸준히 성장했고, 올해 4분기에 월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업 과정에 패스트벤처스와 퓨처벤처스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는 성과도 있었다.”

-앞으로의 목표는

“연결을 시켜준 이후 스타트업이 근로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게 목표다. 현재 DIO 시스템을 통해 현직자가 스스로 주간 업무계획을 확인하고, 기업이 현직자를 평가할 수 있는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근로자들은 적은 시간에만 부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의사소통이 이뤄져야 한다. 시스템을 고도화해 체계적인 인력 관리가 가능한 서비스를 마련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