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로 된 톱니바퀴 모양의 불판 위에 미리 손질해 둔 삼겹살을 올리자 조리를 원하는 모듈을 선택하라는 알람이 떴다. 직원이 1번 모듈을 선택하자 고기를 얹은 불판이 위로 올라가더니, 상단에 부착된 톱니바퀴 모양의 또 다른 불판과 맞물리며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두 불판은 서로 겹치지 않게 고기를 누르며 열이 균일하게 가해지도록 했다.
약 1분 뒤 소 채끝살 300g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져서 나왔다. 직원은 채끝살을 꺼내 포장 용기에 담았다. 요리가 진행되는 도중 3번 모듈에서 구웠던 버섯과 마늘, 고추도 함께 완성됐다. 조리된 음식을 모두 담으니 배달할 요리가 준비됐다. 주문부터 포장까지 걸리는 시간은 채 5분이 되지 않았다. 직원은 “소 채끝살은 1분, 삼겹살은 4분이면 요리가 완성된다”면서 “4대의 모듈형 로봇으로 한 시간에 최대 100인분을 조리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27일 찾은 서울 관악구 봉천동 ‘미트봇(MEATBOT)’ 매장 1호점에서는 고기를 굽는 로봇이 직원을 대신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주문이 들어오면 직원은 손님이 원하는 고기를 선택해 자른 뒤 불판에 얹어놓는다. 이후의 조리 과정은 로봇의 몫이다. 직원은 로봇에 부착된 모니터로 업무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조리된 고기를 포장 용기에 담는 일을 맡는다. 미트봇 매장 직원은 “노동 투입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고기 굽는 로봇은) 배달 전문점이나 육류 조리 프랜차이즈에 적합한 제품”이라고 평가했다.
미트봇은 스타트업 ‘피플즈리그’가 개발한 인공지능(AI) 육류 조리 로봇이다. 미트봇에는 이미지센서가 달려있어 불판에 올려진 고기의 지방·단백질·마블링 비율을 분석하고, 이에 맞춰 온도와 시간을 스스로 설정한다. 피플즈리그에 따르면 현재 조리 과정의 40%가 자동화됐다.
이날 매장에서 만난 류건희 피플즈리그 대표는 “구인난에 시달리는 점주님들을 인터뷰하면서 사업 기회를 포착했다”고 로봇 개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직원 한 명의 인건비가 월 200만~250만원으로 치솟았다. 그러나 고기를 굽는 일이 중노동인 탓에 일하려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면서 “로봇이 이 일을 대신하면 직원의 노동강도를 낮추고 점주의 인건비 부담도 줄여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류 대표에 따르면 생산성이 보장되려면 최소 모듈 2대가 필요하다. 모듈 1대가 사람 0.5~1명의 노동량을 대체할 수 있어, 2대는 있어야 직원 한 명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플즈리그는 현재 모듈 수에 따라 월 최소 100만원(1대), 최대 150만원(4대 이상)의 구독료를 받고 미트봇을 대여해주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모듈 4대를 빌릴 경우 직원 한 명의 인건비보다 적은 비용을 투입해 세 명 이상을 고용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미트봇 1호점의 요리 가격은 시중 음식점과 비교해 저렴한 편이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 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작년 12월 기준 삼겹살(200g 기준) 품목의 외식비는 서울 평균 1만9031원이었다. 미트봇에서는 삼겹살 250g 가격으로 평균 외식비의 절반 수준인 1만900원을 받고 있다. 삼겹살 500g은 1만7900원이다. 합리적인 가격과 독특한 조리기법이 입소문을 타면서 1호점은 오픈 3개월만에 주간 평균 매출액이 3.6배로 늘었다.
현재 피플즈리그는 로우파트너스와 아이피에스벤처스 등 벤처캐피탈(VC)로부터 총 13억5000만원을 투자받아 미트봇에 대한 시장 반응을 수집하고 있다. 시장 반응을 바탕으로 올 한해 미트봇을 더욱 정교화한 후 외식업체와 프렌차이즈를 대상으로 사업 솔루션을 제공할 계획이다. 류 대표는 “사업에 관심이 있는 예비 점주들을 대상으로 창업을 지원하는 서비스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피플즈리그는 앞으로도 자동화율을 높여 일손이 필요한 과정을 더 줄일 예정이다. 류 대표는 “6개월 내로 자동화율을 더 높여 주문이 들어오면 로봇이 직접 필요한 고기를 냉장고에서 꺼내 조리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사람은 음식을 포장하거나 매장의 청결만 유지하면 되는 매장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미트봇이 육류 조리 시장의 구인난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