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구리(전기동) 가격이 반등하면서 국내 전선업계의 매출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원자력, 풍력, 태양광 등 친환경 에너지 수요 증가로 국내외에서 대규모 수주 계약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대한전선(001440)의 경우 그동안 재무 건전성 회복에 힘써온 만큼 업황 호조까지 맞물리면 회사 체질 개선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3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27일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 가격은 톤(t)당 9345.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3월 역대 최고가인 1만달러를 웃돌았던 구리 가격은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로 같은 해 7월에는 7000달러대로 급락했다. 이후 하반기에는 줄곧 7000~8000달러대에서 움직였고, 지난달 본격적으로 반등하기 시작해 올해 들어서만 11% 넘게 올랐다.

그래픽=손민균

통상 전선업체는 주요 원재료인 구리 가격이 오르면 제품 판매 가격이 상승하기 때문에 실적 개선 효과를 누린다. 지난해 상반기 구리 가격이 역대 최고가를 새로 쓰면서 국내 주요 전선업체 5곳의 총매출액은 약 5조원으로 전년동기대비 27.9% 상승했다. 일 년 전인 2021년 상반기 총매출액(3조8769억원)의 전년동기대비 상승률(17.72%)을 10%포인트(p)가량 웃도는 수준이다.

구리 가격이 오르는 와중에 국내외에서 전선 수주도 늘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계기로 원자력, 풍력, 태양광 등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높아진 것이 계기가 됐다. 새로운 발전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확대될수록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송하는 전력 케이블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 선진국을 중심으로는 노후화된 전력망을 교체하려는 움직임도 잦아지고 있다.

이런 업황 호조로 그동안 재무구조 개선에 집중해온 대한전선이 특히 수혜를 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 전선 시장은 LS전선, 대한전선, 가온전선(000500) 등 3개 업체를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각 사의 매출액을 기준으로 본 지난해 상반기 시장 점유율은 LS전선(58.4%), 대한전선(26.9%), 가온전선(14.8%) 순이다.

대한전선은 지난 1955년 국내 최초로 세워진 종합 전선업체로 2008년까지 50년 넘게 흑자를 기록했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무리한 사업 확장에 나서면서 재무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다. 결국 회사는 2012년 채권단 관리에 들어갔고, 2015년 국내 사모펀드(PEF)인 IMM 프라이빗에쿼티(PE)의 특수목적법인(SPC) 주식회사 니케에 인수됐다. 현재 최대주주는 2021년 5월 니케로부터 지분 40%를 인수한 호반그룹 자회사 호반산업이다.

그래픽=손민균

IMM PE 인수 이후 대한전선은 비주력 사업 부문을 매각해 부채비율을 낮추고 유동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IMM PE가 대한전선을 인수한 2015년 2000%를 웃돌던 연결 기준 부채비율은 지난 2021년 말 266.4%를 기록했고, 지난해 3분기에는 104.3%로 낮아졌다. 부채비율은 부채 총계를 자기자본 총계로 나눈 값으로 기업의 재무 건전성 판단하는 지표다. 업종별로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100% 이하일 때 이상적인 수준이라고 판단된다.

호반그룹이 새 주인이 된 이후에도 무상감자와 유상증자를 동시에 추진하며 재무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한전선은 지난 2021년 액면가 감액 방식 무상감자와 5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했다. 액면가 감액 무상감자는 액면가를 감액해 자본금을 낮춰 재무 건전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자본 총계와 주식 수는 변화가 없지만 줄어드는 자본금이 자본잉여금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자본잠식을 해소할 수 있다.

대한전선은 지난해 실시한 유상증자에서 기존 주주 대상 96% 청약률을 기록했다. 호반산업의 경우 배정 주식 전량을 청약했다. 대한전선이 유상증자를 통해 발행한 주식은 총 3억8800만주로, 주당 발행가액(1260원) 기준으로 약 5000억원을 조달했다.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는 유상증자 이후 대한전선에 대한 신용등급을 ‘A-안정적(Stable)’으로 상향했다. 유상증자 이후 회사의 연결 기준 순차입금이 2021년 말 4567억원에서 279억원으로 93% 이상 급감한 점 등이 근거가 됐다.

향후 대한전선은 해저케이블 등 신사업 투자를 늘리고 우리나라와 북미에 이어 중동 지역 사업 확대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대한전선은 지난달 충남 당진에 해저 케이블 임해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최근 빠르게 성장하는 해상풍력 시장을 공략하는 전초 기지로 임해 공장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북미 시장에서 연간 누적 수주 3억달러(한화 약 3700억원)를 달성하기도 했는데, 이는 회사가 북미에 진출한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대한전선은 29일(현지 시각) 쿠웨이트에서 현지 최초의 광케이블 공장 착공식을 개최했다. 쿠웨이트 광케이블 시장을 선점하고, 그간 쌓인 중동 시장 영업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로 사업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대한전선은 사우디와도 현지 합작법인 파트너사와 투자 및 사업 확대 방안을 논의하고, 전력기기 생산법인 사우디대한을 방문해 초고압 케이블 생산법인 설립을 검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