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방산 업체들이 폴란드로 대규모 수출을 이뤄낸 가운데, 전차·자주포 등에 사용되는 포탄을 생산하는 풍산(103140) 역시 수출 수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풍산은 지난해 구리 가격이 내려가면서 실적에 타격을 입었지만, 최근 국내 방산업체들과 수천억원 규모의 탄약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구릿값 하락으로 인한 손실도 일부 만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풍산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와 2025년 4월 30일까지 1647억원 규모의 대구경 탄약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지난 17일 공시했다. 풍산은 계약 내용을 자세히 밝히지 않았으나, 규모를 봤을 때 폴란드로 수출된 K9 자주포 등에 사용되는 탄약과 관련한 계약으로 추정된다. 풍산은 지난달 28일에도 현대로템(064350)과 2934억원 규모의 대구경 탄약 공급 계약 내용을 공시했는데, 이 역시 폴란드로 수출된 K2 전차 등에 사용되는 탄약으로 추정된다.
풍산은 신동(伸銅·구리 가공) 사업을 주력으로 삼고 있다. 지난 2021년 기준 신동 부문 사업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1%에 달한다. 그러나 지난해 3분기 구리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며 실적에 타격을 입었다. 구리 가격이 내려가면 제품 가공을 위해 쌓아둔 재고 자산에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 가격은 지난해 초 톤당 9630달러에 거래됐고, 3월 초 1만730달러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이후 하향세를 나타내며 7월 중순 7005달러까지 하락했다. 3분기 평균 구리 가격은 톤당 7723달러로 1분기(9977달러), 2분기(9516달러)와 비교해 2000달러 가까이 내려갔다. 지난해 3분기 풍산은 전년 동기 대비 63% 줄어든 29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구리 가격은 다시 반등하며 4분기 평균 7988달러까지 상승했고, 올해 들어 9000달러를 돌파하는 등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대규모 탄약 공급 계약으로 방산 부문 실적도 개선되며 구릿값 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일정 부분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에 따르면 풍산은 지난해 4분기 54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년 동기 대비 15% 줄어들었지만, 3분기와 비교하면 83% 상승한 수치다. 박현욱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풍산의 방산 부문은 수출 증가에 힘입어 전년 동기대비 매출이 증가했다”며 “역사적으로 이번 4분기 방산 매출액은 사상 최고 수준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올해 구리 가격은 더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구리 등 비철금속의 세계 최대 소비국인 중국이 코로나로 굳게 잠갔던 빗장을 풀면서 산업용 금속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올해 말까지 구리 가격이 톤당 1만15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다른 원자재와 달리 비철금속 수요 부문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이상”이라며 “중국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여전히 진정되지 않고 있지만, 정부 주도의 재정정책 유입 기대감이 비철금속의 수요 회복 기대감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가도 풍산이 방산 수출과 구릿값 상승 등으로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달 들어 풍산 보고서를 발표한 8개 증권사 가운데 5곳이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했다. 안희수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풍산에 대해 “올해 구리 가격은 상저하고(상반기에 낮고 하반기에 상승)로 전망돼 중장기적인 이익 상승세가 기대된다. 방산 부문 역시 러시아·우크라이나전 장기화, 수출 호조 지속으로 중장기적 성장이 예상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