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산 반도체 수입을 대폭 줄이고 우방국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면서 대만과 베트남이 가장 큰 수혜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가 얻은 반사이익은 미미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이같은 내용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따른 한국의 기회 및 위협요인’ 보고서를 28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반도체 수입시장에서 중국의 비중은 2018년 30.1%에서 2021년 11%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대만의 점유율은 9.7%에서 17.4%로, 베트남의 점유율은 2.6%에서 9.1%로 뛰어 중국의 빈자리를 대체했다. 우리나라의 미국 반도체 수입시장 점유율은 2018년 11.2%에서 2021년 13.2%로 2.1%포인트 늘어나는데 그쳤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 클린룸 현장. /삼성전자 제공

중국 의존도는 여전했다. 우리나라 반도체 관련 품목별 중국 수출 비중은 지난해 기준 ▲시스템반도체 32.5% ▲메모리반도체 43.6% ▲반도체 장비 54.6% ▲반도체 소재 44.7% 등이었다. 무역협회는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한 견제 수위를 높이고, 중국 역시 반도체 자급률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며 “중국에 편중된 반도체 수출을 다른 국가로 다변화할 필요가 커졌다”고 평가했다.

반도체산업의 연구·개발(R&D) 투자와 장비·소재 공급망 강화가 주요 과제로 꼽혔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반도체 매출 대비 R&D 투자는 8.1%로 미국(16.9%), 중국(12.7%), 일본(11.5%), 대만(11.3%) 등 주요국 가운데 가장 낮았다. 또 우리나라가 지난해 1만달러 이상 수입한 반도체 품목 3개 중 1개(37.5%)는 특정국 수입 의존도가 90%를 웃돌았다. 반도체 소재 품목 역시 18.2%가 특정국 수입에 90% 이상 의존했다. 중국과 일본은 특정국 수입 의존도가 90%를 넘는 반도체 소재가 하나도 없었다.

설비투자 확대를 위한 정부의 지원도 뒤처지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시설투자에 25% 세액공제를 지원하고 있다. 대만도 지난달 반도체 연구개발 및 설비투자 세액공제 비율을 기존 15%에서 25%로 확대하는 ‘산업혁신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설비투자에 대한 대기업 세액공제를 현행 6%에서 8%로 소폭 늘렸다.

최근 메모리반도체 수요 부진에 따라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의 재고자산이 급증하고 있다. 무역협회는 반도체 기업의 투자가 어려워지고 있는 만큼 적극적인 세제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원빈 무역협회 연구원은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는 지금이 미국 시장을 선점할 적기”라며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 재편 구도에 참여해 핵심 장비·소재 수급의 안정성을 강화하는 한편, 연구개발 및 설비투자 지원을 통해 첨단기술 영역에서 초격차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