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의 3세 조현민 한진(002320) 사장이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나선 지 1년이 되어가는 가운데, 조 사장의 남다른 경영 행보가 물류 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한진은 B2B(기업 간 거래)를 주로 하는 물류 기업이지만, 조 사장은 안정보다는 변화를 꾀하며 소비자에게 직접 다가가는 등 새로운 시도를 펼치고 있다. 동시에 물류 인프라 구축에도 1조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를 예고하면서 외적 성장에도 집중하는 모습이다.
조현민 사장은 지난해 정기 임원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한 지 1년 만인 올해 1월 12일 ㈜한진 사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회사 측은 조 사장의 승진 배경으로 "한진의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들어 나갔다"고 설명했다. 조 사장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마찬가지로 한진 지분 0.03%를 갖고 있다. 한진의 최대주주는 한진칼(180640)로, 조 사장은 조 회장에 이은 한진칼 개인 2대 주주(지분율 5.73%)다.
조현민 사장의 대표적인 경영 전략은 '로지테인먼트'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로지테인먼트는 물류(logistics)와 문화(entertainment)를 합친 단어로 물류에 문화·오락적 요소를 결합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물류에 대한 인식을 바꿔 고객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조 사장은 지난 6월 기자간담회에서 "물류는 전반적으로 어렵고 재미없으며 부담스러운 부문이라는 생각이 있지만, 한진이 업계 리더로서 좀 더 재밌고 쉽게 그리고 친근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 로지테인먼트"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로지테인먼트의 첫 콘텐츠는 지난해 5월 한진이 택배업계 최초로 출시한 모바일게임 '택배왕 아일랜드'다. 한진은 출시 당시 "대표적인 택배 프로세스인 분류, 상차, 배송 등을 모티브로 한 미니게임을 플레이하는 3D 형태의 캐주얼 아케이드 게임"이라며 "언택트 시대에 라스트마일(최종 배송 단계)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택배사가 고객에게 재미있고 스마트한 물류 경험을 제공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게임 내에 광고를 유치하면서, 발생하는 수익금은 택배기사의 근로 환경 개선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진은 이달 13일 기존 '택배왕 아일랜드'의 세계관을 확장한 '물류왕 아일랜드' 게임을 새로 출시하기도 했다. 물류왕 아일랜드는 현재 플레이스토어에서 5만회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 중이다.
한진은 로지테인먼트의 일환으로 업계 최초로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한진 로지버스 아일랜드'를 구축하기도 했다. 메타버스 내에서 물류 서비스에 대한 간접 경험을 제공해 MZ세대 등 다양한 고객과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고, 내부 임직원들의 소통 공간으로도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밖에도 한진은 택배를 소재로 한 단편영화 '백일몽'을 제작했고, 향후 유튜브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조현민의 한진을 이루는 또 다른 축은 공격적 투자다. 한진은 창립 80주년을 맞이하는 2025년까지 총 1조1000억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올해 6월 밝혔다. 구체적으로 풀필먼트 및 인프라(8000억원), 글로벌네트워크(1500억원), 플랫폼과 IT 및 자동화(1500억원)에 투자해 '아시아 대표 스마트 솔루션 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목표다.
한진은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지금의 한진이 육상운송이나 해운, 택배 등 물리적 운송 서비스만을 제공하는데 그쳤다면, 이제는 고객의 요구에 맞춘 물류 솔루션(Logistics Solution)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수익성도 확보하며 2025년에는 매출 4조5000억원, 영업이익 20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함께 제시했다. 이는 한진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2조5033억원, 영업이익 1058억원과 비교해 2배가량 늘어난 수준이다.
한진의 올해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한진은 올해부터 2024년까지 택배 인프라에 총 633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대전 스마트 메가터미널 구축에 2215억원, 택배터미널 확충 및 자동화에 2124억원, 물류 거점확보 및 장비확충에 1326억원, 물류 플랫폼 구축 등에 500억원 등을 투자한다. 이를 통해 지난해 말 기준 13.1% 수준인 국내시장 점유율을 내년까지 우선 2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조 사장의 로지테인먼트 전략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 섞인 시각도 나온다. 한진의 주된 매출은 결국 B2B 거래에서 나오는데, 로지테인먼트는 개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진은 이에 대해 "택배는 B2B 사업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결국 택배나 물류를 접하는 고객은 대부분 개인"이라면서 "개인 고객과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면서 기존 사업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 차원의 활동이고, 당장 수익을 내고자 하는 사업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진이 목표로 세운 2025년 매출 4조5000억원, 영업이익 2000억원 달성도 매우 도전적이다. 한진은 지난 6월부터 시작된 쿠팡 물량 이탈로 물동량이 감소하면서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1.5% 감소하는 등 타격을 입었다. 여기에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도 물류 업계에 부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조 사장 취임 당시 3만2050원이었던 한진 주가는 20일 종가 기준 2만250원으로 36.81% 하락했다. 흥국증권은 지난달 한진의 목표주가를 기존 4만5000원에서 2만6000원으로 한 번에 42.22%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이병근 흥국증권 연구원은 "한진은 쿠팡 물량 이탈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지속되고 있다"면서 "터미널사업부 역시 해상 운임 하락에 따라 실적 감소가 지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