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방산업체들과 124억달러(약 16조23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무기 구매 계약을 맺은 폴란드가 최근 한국항공우주(047810)산업(KAI)에 약 1조2000억원의 선수금을 지불했다. 당초 계약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폴란드의 구매 대금 지불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지만, 거액의 선수금 지급으로 논란을 불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폴란드 군비청은 FA-50 전체 구매 대금(30억달러)의 30%인 9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KAI에 선수금으로 지불했다. 통상 무기 수출 계약에서 선수금은 10% 수준에서 지급되고, 지급 시기도 1년 정도 여유를 두기 때문에 폴란드가 지난 9월 계약 후 2개월 만에 전체의 30%에 달하는 거액의 선수금을 지불한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 9월 16일(현지 시각) 폴란드에서 열린 FA-50 전투기 48대 수출 계약식에서 강구영(오른쪽)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과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이 악수하고 있다./KAI 제공

업계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대거 지원하면서 자국 안보가 위협받고 있는 폴란드가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예정된 납기 일정을 철저히 맞춰 달라는 의도로 보고 있다. KAI는 전체 계약 물량 48대 중 12대를 내년까지 납품하고, 나머지 36대는 2025년부터 2028년까지 순차적으로 납품할 예정이다.

폴란드가 대규모로 무기를 계약하자 일각에서는 구매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 왔다. 지난 2020년 기준 폴란드의 국방예산은 128억달러(약 16조8000억원) 수준으로, 올해 한국 방산업체들과 맺은 계약 규모(약 124억달러)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국방비를 크게 증액하고 있다. 폴란드는 지난 2월 관련법을 개정해 기존 GDP(국내총생산)의 2.2% 수준이었던 국방비를 3%까지 끌어올렸다. 지난 1970년대 우리나라가 도입했던 방위세와 비슷한 국군지원펀드(PFR)도 신설했다. 이를 통해 경제 상황이 어려워져도 국방 예산에는 영향이 가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했다.

한 번에 무기 도입 대금 전체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분산 지급한다는 점도 폴란드의 군비 부담을 낮추는 요인이다. K9 자주포는 2026년까지, K2 전차와 K239 천무 다연장로켓은 2027년까지, FA-50 경공격기는 2028년까지 계약 기간이 설정돼 있다. 폴란드는 이 기간에 수차례에 걸쳐 계약금을 분할 납부하고, 국내 방산업체들도 무기를 분할 인도한다. 이 밖에도 폴란드가 NATO로부터 받는 일부 지원금을 감안하면 지급 능력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0월 19일 경상남도 창원에서 열린 현대로템의 K2전차,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디펜스)의 K9 자주포 출고식 행사에서 각 무기들이 기동하고 있다./정재훤 기자

폴란드에 무기를 수출하는 현대로템(064350),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도 폴란드와의 계약이 잘 이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폴란드는 계약서상의 납기 일정에 맞춰 대금을 지급하고 있고, 업체도 예정된 납품 일자에 맞춰 차질 없이 생산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로템은 폴란드와 4조5000억원 규모의 K2 전차 180대 수출 계약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9 자주포 212문(약 3조2000억원), K239 천무 다연장로켓 200여문(약 5조원) 수출 계약을 맺은 상태다. 양 사는 지난 10월 계약상 초도 물량으로 각각 K2 전차 10대, K9 자주포 24대를 출하해 폴란드로 보내기도 했다.

향후 폴란드에 추가로 수출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폴란드 바르샤바에서는 폴란드 정부 관계자, 방위사업청 및 국내 18개 방산업체 임원진이 참가한 '한·폴란드 방산협력 콘퍼런스'가 열렸다. 행사에선 FA-50 경공격기, K2 전차, K9 자주포의 2차 수출 이행계약 체결을 위한 협상과 함께 국내 방산 업체들의 홍보, 지상·항공·해상 무기의 추가 수출을 위한 협의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폴란드와 계약을 맺을 때 생산 능력과 일정을 고려해 계약서에 반영했고,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도 "폴란드 건은 계약서상의 일정 대로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