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시황이 개선되면서 내년도 한국 조선업계의 효자 선종 역할을 되찾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프로판 및 부탄 등으로 구성된 LPG를 운반하는 VLGC(초대형가스선)는 메탄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액화천연가스(LNG)보다는 기술 장벽이 낮지만, 다른 유조선(탱커)에 비해서는 난이도가 높아 한국의 조선업계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28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8만2000m³급 VLGC의 신조선가는 이달초 8850만달러로 지난달 말에 비해 50만달러 상승했다. 이는 올해 9월초 8700만달러에서 8800만달러로 한계단 상승한데 이어 추가로 상승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이 지난 10일 8만8000m³급 LPG선 2척을 아프리카 소재 선사로부터 9660만달러에 수주하면서 선가를 끌어올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부문 중간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은 지난 9월 현대중공업이 수주한 3척의 대형 LPG선, 지난 8월 등에 수주한 현대미포조선의 중형 LPG선 4척을 포함해 올해 총 9척의 LPG선을 수주했다. 이에 따라 한국조선해양의 LPG선 수주잔고는 총 59척에 달한다.

삼성중공업(010140)도 지난 10월 8만8000m³급 LPG선 2척을 척당 9429만달러에 수주하며 가스선 호황에 올라탔다.

최근 LPG선 시황이 좋아지는 이유는 우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공급이 불안해지면서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LPG는 러시아산 도입이 막혀 비싸진 LNG와 섞어 태울 수 있다. 이와 함께 미국의 LPG 수출이 증가하면서 LPG선 수요도 늘었다.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LPG 해상 수송량은 2022년 1억1700만 톤(t)을 기록할 전망이며, 2023년에는 1억2100만t으로 3%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최근 LPG선 문의가 증가하고 있어 다소 발주세가 완만했던 이 시장이 반등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LPG선이 미래 수소경제 생태계에 자연스럽게 편입될 수 있다는 점도 선주들에게는 새로운 투자 매력이다. LPG선은 수소 운반체 역할로 주목받는 암모니아 운반선으로 전용하기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LPG선의 기본적인 보냉 능력은 암모니아 운반을 위한 보냉 능력을 충족한다. LPG의 주성분인 프로판은 -42°C 아래에서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데, 암모니아는 -33°C 아래에서 액체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선주사 관계자는 "LPG선을 신조할 때 '암모니아 레디'로 준비한다고 해서 투자비가 크게 증가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암모니아 레디는 나중에 암모니아 연료 선박으로 개조할 수 있도록 미리 설계에 반영해 두는 것을 말한다.

국제해운회의소(ISC)는 이달 중순 발표한 '글로벌 에너지 전환을 위한 해운의 역할' 보고서에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30년까지 매년 20척의 신규 대형 암모니아 운반선 발주와 건조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대형 암모니아 운반선 발주 사례는 찾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향후 수소시대 초기에는 전세계적으로 암모니아 레디 엔진을 갖춘 LPG선의 형태로 암모니아 생태계가 성장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 조선업계는 대형 LPG선 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를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양종서 연구원은 지난달 발표한 '한중일 3국의 선종 및 선형별 신조선 시장 점유율 변화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대형 LPG선 시장에서 호황기 이후 지금까지 실적을 보유한 조선소는 전 세계에 총 12개에 불과하다"면서 "국내 대형 조선소들의 기술력과 경쟁력이 뛰어나고 LPG 연료추진 선박의 설계와 건조에 높은 품질 수준을 보유하고 있어 향후에도 이 시장을 주도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