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간을 전문으로 개발하는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브레인AI의 장세영 대표는 석달째 미국 캘리포니아에 체류하고 있다. 2025년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기 위해 '플립(Flip·본사 이전)'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내년 8월까지 캘리포니아에 머물며 미국 사업 확장에 나설 예정이다. 이를 위해 올초 미국 법인 인력도 충원했다.
딥브레인AI 관계자는 "처음부터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을 공략할 계획이었고 그 시점이 됐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최근 국내 투자가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미국 내 AI 스타트업 투자가 다시 활성화되고 있다는 소식에 이 같은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스타트업의 기업 가치가 하락하고 투자가 크게 위축된 가운데,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스타트업들이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시장이 크고 글로벌 투자 유치에 유리하다고 판단해서다. 국내보다 규제가 자유롭고 기존 사업과 마찰이 적다는 점도 이유로 꼽혔다.
푸드테크 스타트업 아머드프레시는 미국 법인 이름을 따라 본사 이름을 당초 '양유'에서 변경했다. 아머드프레시는 디저트, 피자 브랜드를 국내에 출시하며 사업을 시작했지만, 대체식품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지난해 개발한 비건 치즈가 미국 대형마트에 진출하는 등 해외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그 덕에 지난 5월 마무리한 270억원 규모 시리즈B 투자에 국내 투자사뿐만 아니라 미국의 콜라보레이티브펀드도 참여했다.
아머드프레시 관계자는 "한국은 대체식품 시장이 매우 작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하게 됐다"며 "5년 안에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버지니아주에 세운 미국 법인 역시 이를 고려해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에듀테크 스타트업 뤼이드도 미국 본사 이전을 진행 중이다. 글로벌 시장 가운데 가장 시장 규모가 큰 만큼 사업을 키우기에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캘리포니아에 법인 사무실이 두 개 있는데, 본사 위치로는 투자 유치가 용이한 실리콘밸리나 규제 강도가 낮은 델라웨어가 언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나스닥 상장한 쿠팡도 미국 델라웨어에 본사를 두고 있는데, 델라웨어는 국내엔 없는 차등의결권제를 허용하고 있다. 차등의결권제는 주주에 따라 의결권 숫자에 차등을 둬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쿠팡의 김범석 의장은 지분율이 10%에 불과하지만 이 제도 덕분에 75%가 넘는 의결권을 쥐고 있다.
한국의 스타트업은 규제 및 기존 사업과의 마찰 때문에 사업을 접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승차 공유 플랫폼 타다는 택시업계와 국회 반대에 부딪혀 사업을 접어야 했다. 타다는 렌터카를 이용해 운전자와 승객을 중개했는데, 국회는 지난 2020년에 11~15인승 렌터카를 이용해야 하고 대여·반납 장소가 공항이나 항만이어야 한다는 법조항을 내걸어 사실상 타다의 영업을 금지시켰다. 최근엔 공인중개사를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의무 가입시키고 협회에 단속 권한을 주는 '직방 금지법'이 발의돼 논란이 일고 있다. 그간 협회가 직방과 같은 프롭테크(부동산 자산과 기술의 합성어) 기업의 시장 진출을 막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스타트업 4곳 중 1곳은 국내 규제를 피해 해외로 이전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무역협회가 국내 스타트업 256개사를 대상으로 '지속 성장과 애로 해소를 위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44%가 국내 규제로 인해 기업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선의 필요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분야로는 신기술 관련 규제가 꼽혔다.
투자 관련 어려움에 대해선 '정부 및 지자체의 투자감소(59.4%)와 투자 전문기관의 투자 감소(54.3%), '대기업 및 CVC의 투자 감소'(49.2%) 순으로 답변이 많았다. 이와 관련한 정부 지원책으로는 '정부·지자체의 투자 재원 확충'(72.3%),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 마련'(67.6%), '투자자와의 네트워킹 활성화'(58.2%) 등이 꼽혔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미국도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가 크긴 하지만, 시장 규모가 큰 데다 신기술과 혁신제품에 대한 시장의 수용력이 다르다"며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하는 기업의 경우 국내보다 사업을 더 빨리 확장할 수 있는 미국으로 옮기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