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1열연공장. 가열로를 지나며 1200℃로 달궈진 슬래브(Slab·철강 반제품)가 압연기를 오가자 얇고 길어졌다. 냉각 후 권취기를 지나면서 열연제품이 두루마리 형태(Coil·코일)로 말렸다. 뒤편에 열연 코일들이 쌓여있었다. 허춘열 포항제철소 압연담당 부소장은 "지난 9월 냉천이 범람했을 때 가열로부터 재고까지 모두 물에 잠겼었다"고 말했다.

2열연공장은 여전히 멈춰있었다. 벽에 선을 그어놓은 것처럼 다른 위아래 색깔이 차올랐던 물 높이를 짐작하게 했다. 8m 깊이의 지하공간은 상흔이 더 뚜렷했다. 유압설비 등에는 붉은 글씨로 '수리 요망'이라고 쓰여 있었다. 2열연공장 지하에서 물을 퍼내는 데만 4주가 걸렸고, 이어 30㎝ 높이로 쌓여있던 진흙을 걷어내야 했다. 진흙을 삽으로 퍼내고, 설비 틈을 손으로 닦아냈다고 한다. 허 부소장은 "처음에는 과연 공장을 살릴 수 있을지 막막했다"면서도 "가열로 4기 모두 축조를 마쳤고, 다음달부터 2열연공장도 재가동할 것"이라고 했다.

23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1열연공장에서 열연 코일을 생산하고 있다. /포스코 제공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수해 복구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포스코그룹 임직원은 물론 민·관·군 지원인력까지 연인원 100만명이 포항제철소를 살리기 위해 구슬땀을 흘린 끝에 압연공장 18개 가운데 7개가 정상화됐다. 포스코는 연말까지 8개 공장을 추가로 재가동해 '연내 모든 종류의 제품 생산'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계획이다.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지난 9월 6일 물에 잠겼다. 태풍 '힌남노'가 상륙하면서 4시간 동안 200㎜가 넘는 비가 쏟아졌고, 영일만 만조(밀물이 가장 높은 해면까지 꽉 차게 들어오는 현상)까지 겹쳐 냉천이 범람했다. 냉천과 가까운 압연공장들의 피해가 특히 컸다. 1전기강판과 1선재공장은 지상 1.5m 높이까지 물이 차올랐다.

제품창고도 마찬가지였다. 재고 132만톤(t) 가운데 96만2000t이 침수 피해를 봤다. 천시열 포항제철소 공정품질 부소장은 "셀러(Cellar·지하실) 크기 등을 토대로 자체 추산한 결과, 수해 당시 약 620만t의 흙탕물이 유입됐다"며 "여의도를 2.14m 높이로 채울 수 있는 양"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이은현

유례없는 피해였던 만큼 포항제철소를 정상화하려면 최대 2년이 걸릴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하지만 포스코는 포항제철소에서 생산하던 철강제품을 연내 모두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어 2023년 2월 15일 스테인리스 1냉연공장 재가동을 마지막으로 포항제철소를 수해 이전 상태로 완전 복구할 예정이다.

제철소의 심장으로 불리는 고로(용광로)를 살린 것이 빠른 정상화의 밑바탕이 됐다. 이날 포항제철소 3고로에선 1500℃의 쇳물이 출선구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철판 위에 서 있었지만 흐르는 쇳물의 열기가 느껴졌다. 이런 3고로도 수해 당시엔 식어 있었다. 관건은 고로의 열기를 다시 살리는 '골든타임'을 지킬 수 있느냐였다. 고로 내부의 융용물들이 굳으면 고로를 다시 짓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어진 시간은 7일 남짓이었다. 밤낮없이 복구 작업이 이어졌고, 3고로는 나흘 만에 다시 열기를 되찾았다. 이틀 뒤 2고로와 4고로도 다시 가동됐다.

30년째 고로 업무를 맡아 온 김진보 포항제철소 선강담당 부소장은 수해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자식 같은 고로를 살리지 못할까 봐 잠을 잘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태풍이 상륙하기 전에 휴풍(임시 가동 중단)했던 것도 복구에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초고온인 고로 내부로 물이 들어가면 기화하면서 팽창해 고로가 폭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부소장은 "태풍 상륙을 이유로 사전에 고로 가동을 멈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며 "사실 휴풍 조처를 결정했을 때 오버(과잉 대응)한다고 했는데, 돌이켜보면 정말 조상들이 포스코를 도왔다는 생각만 든다"고 했다.

23일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직원들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포스코 제공

포스코 임직원들이 공장 설비 구동에 핵심 역할을 하는 모터를 직접 정비한 것도 복구 기간을 단축한 동력이다. 포항제철소에는 약 4만4000대의 모터가 설치돼있는 데, 이 가운데 1만3000여개가 침수 피해를 봤다. 모터를 새로 발주할 경우 제작과 설치에 1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압연기용 메인 모터는 무게가 최대 170t에 달해 들어내는 것도 일이었다.

포스코 1호 명장인 손병락 포항제철소 EIC기술부 상무보 주도로 압연기용 메인 모터 총 47대 가운데 현재 33대를 분해·세척·조립해 복구했다. 이를 포함해 전체 모터 가운데 73%가 다시 돌아가고 있다. 포스코에 따르면 재가동 후 2~5일 만에 제품 품질과 생산성 모두 수해 피해 전 수준을 회복했다. 손 명장은 "국내외 수많은 설비 전문가와 압연기용 메인 모터 제작사조차 수리는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다"며 "하지만 침수 피해를 겪기 전에 전원을 차단했던 만큼 복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성공했다"고 말했다.

도움의 손길도 이어졌다. 소방관과 해병대원들은 배수 작업과 진흙을 제거하는 데 큰 보탬이 됐다고 한다. 현대제철(004020)은 당진제철소의 토페도카(쇳물을 옮기는 용기) 5기를 포항제철소로 보냈고, 인도 JSW는 열연공장용으로 제작 중인 모터 드라이브를 내주기로 했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010140) 등 조선 3사는 수중펌프를 비롯한 복구장비 총 100대를 지원했다. 포스코는 복구를 시작하고 80일째인 오는 25일 이들 장비를 반납할 예정이다.

포스코는 '빠르게 보다 안전하게'라는 구호 아래 사고 없이 복구 작업을 계획대로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또 수해 피해 상황과 복구 과정을 기록한 백서를 제작해 재난 대비 체계를 다시 구축하기로 했다. 천시열 부소장은 "정말 많은 분의 도움 덕분에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다"며 "끝까지 중대재해 없이 복구를 마쳐 더 강건한 제철소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