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화물연대 파업 때도 대체 화물차와 창고를 섭외하느라 손해가 컸는데, 반년도 지나지 않아 또 파업을 대비해야 합니다.”(석유화학업체 관계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안전운임제’ 지속·확대를 요구하며 총파업(운송거부)을 예고한 가운데 석유화학업계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공장을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석유화학산업의 특성상 파업이 장기화하면 손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22일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LG화학(051910), 롯데케미칼(011170), 금호석유(011780)화학 등 주요 업체는 제품 출하를 앞당기며 화물연대 파업에 대비하고 있다. 공장 내·외부에 제품을 쌓아둘 수 있는 공간도 확보하고 있다. 다만 석유화학 제품의 부피가 크고 폭발 가능성이 있는 위험물도 있어 적재 공간을 단기간에 마련하기 어렵다. 석유화학업체 관계자는 “고객사에 미리 제품을 받아달라고 최대한 요청하고 있지만, 고객사도 공간이 한정돼 있어 임시방편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화물연대는 올해 말로 일몰될 예정인 안전운임제를 영구 시행하고, 대상 품목도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화물연대는 지난 6월에도 8일간 총파업을 진행했고 정부와 잠정 합의안을 마련한 뒤 복귀했다. 하지만 제도 관련 논의가 진척이 없자 다시 파업카드를 꺼냈다. 화물연대는 “유례없이 강력한 총파업이자 일시에 모든 산업이 멈추는 총파업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석유화학업계는 파업이 장기화하는 상황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파업 후 10일 이상 제품 출하가 되지 않으면 결국 나프타분해시설(NCC)과 같은 핵심 설비를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석유화학기초원료인 에틸렌, 프로필렌 등을 만드는 NCC가 가동을 중단하면 하부 공정도 잇달아 세울 수밖에 없다.
공장이 멈추면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 화물연대 파업 당시 LG화학, 금호석유화학, 롯데케미칼 등 8개사의 하루 평균 출하량은 평소의 10%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루 손실 규모는 900억원가량으로 추산됐다. 석유화학업계는 공장 중단 상황까지 갈 경우 하루 손실 규모가 3000억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재가동 과정에도 수백억원 이상의 비용이 추가로 들어간다.
최근 업황이 악화한 상황에서 화물연대 파업까지 겹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다. 석유화학업 수익성의 핵심 지표로 꼽히는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 가격-나프타 가격)’는 올해 3분기에 톤(t)당 180달러를 기록했다. 손익분기점으로 평가받는 t당 300달러를 크게 밑돌았다. 이 여파로 롯데케미칼은 올해 3분기에 연결기준 영업손실 4239억원을 내며 적자 전환했고, 금호석유화학과 SK케미칼(285130)의 영업이익도 지난해 동기보다 반토막 났다.
4분기 들어서는 에틸렌 스프레드가 t당 160달러에도 못 미치고 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좋지 않아 회사마다 허리띠를 조이고 있는 상황인데 파업 문제까지 어떻게 대처할지 막막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