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HD현대(267250))이 경기 판교 신사옥 '글로벌 R&D 센터(GRC)' 입주를 앞두고 사무실 의자로 미국 사무용가구업체 허먼 밀러(Herman Miller)의 제품을 낙점했다. '의자계의 명품'으로 불리는 허먼 밀러의 제품은 주로 IT(정보기술)기업의 전유물로 여겨져왔다. 현대중공업그룹이 연구·개발(R&D)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판교에 새 둥지를 마련한 만큼 복지 수준도 IT업계 기준에 맞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은 GRC 이전에 맞춰 허먼 밀러의 의자 5000여개를 주문할 계획이다. 허먼 밀러는 가장 저렴한 제품도 1개당 100만원을 웃돈다. 미국 구글과 애플 등이 허먼 밀러의 의자를 사용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국내 대기업 중에선 네이버(NAVER(035420))가 가장 먼저 직원들에게 제공해 '네이버 의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현대중공업그룹의 글로벌R&D센터(GRC) 조감도. /HD현대 제공

카카오(035720)와 넥슨 등 IT기업들이 잇달아 허먼 밀러를 들여오면서 '개발자 의자'라는 별명도 생겼다. SK하이닉스(000660)도 올해 출범 10주년을 맞아 수백억원을 투자해 임직원 3만여명의 의자를 모두 허먼 밀러 제품으로 교체하겠다고 발표해 화제가 됐다. 지난 8월 시작된 교체 작업은 2023년 3월쯤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처럼 주요 기업들이 허먼 밀러의 의자를 들여오면서 '복지 수준의 가늠자' '대기업 판별기'라는 말까지 나왔다. 현대중공업그룹도 직원들의 근무 환경을 고려해 허먼 밀러 의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또 GRC에 인근 IT기업들의 사옥처럼 크리에이티브 라운지, 층별 휴게공간, 피트니스 센터 등 직원 편의시설에 공을 들였다. 다음달 입주에 맞춰 새로운 복지제도도 도입할 계획이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GRC 입주 시점에 맞춰 확정해 직원들에게 공지할 예정"이라고 했다.

허먼 밀러의 사무용 의자 '에어로'. /허먼 밀러 제공

현대중공업그룹이 GRC의 업무환경과 복지에 신경쓰는 가장 큰 이유는 인재 확보 때문이다. GRC에는 한국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 현대오일뱅크, 현대건설기계, 현대두산인프라코어 등 현대중공업그룹 17개사의 R&D 및 엔지니어링 인력 5000여명이 입주한다. 기술 개발에 시너지를 내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뒷받침할 고급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판교에 새 둥지를 튼 만큼, 복지 역시 인근 기업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것이다.

미래 성장동력도 IT 영역과 맞물려 있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현대중공업그룹은 기존의 조선·기계·정유 등 '굴뚝산업'에 자율운항 선박, 재생에너지와 친환경 바이오 연료, 스마트 팩토리 등 신기술을 더해 '100년 기업'으로 가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앞서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은 "GRC는 현대중공업그룹이 기술 혁신을 통해 새로운 50년으로 도약하기 위한 핵심"이라며 "최고 수준의 근무 환경을 조성해 직원들이 맘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GRC 이전만으로 조직 문화가 단기간에 바뀌기 힘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당장 오는 21일부터 현대중공업그룹 조선 3사 노조는 임금 및 단체교섭의 연내 타결을 요구하며 농성을 예고했다. IT기업과의 임금 격차나 현장직 직원들 달래기도 과제로 꼽힌다. 현대중공업의 한 직원은 "전문 인력들이 울산을 떠나는 것을 두고 직원들 사이에서 말이 나온다"며 "현장에서 느끼는 복지 수준이 수년째 제자리걸음인 상황에서 GRC 근무자와 격차가 벌어지면 박탈감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