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조선'으로 불리는 탱커(액체화물선) 시장이 한국 조선업계의 새로운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다. 구조조정을 마친 중형 조선사들은 올해 가을 잇따라 탱커를 수주하며 일감을 확보했다. 최근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운임이 오르면서 조선사들은 탱커 발주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5일 조선업계 따르면, 케이조선은 지난 11일 중동 지역의 한 선사로부터 중형 탱커인 MR급 석유제품운반선 4척을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조선과 함께 KHI그룹에 속한 전남 해남의 대한조선도 지난 9월 벨기에 선사 유로나브(EURONAV)로부터 중대형 탱커인 수에즈막스급 원유운반선 2척을 수주했고, 지난 10월에는 그리스 선사 아틀라스(ATLAS)로부터 아프라막스급 원유운반선 2척을 수주했다.
탱커중 가장 규모가 큰 VLCC도 운임 강세가 이어지면서 선주들이 신조 발주를 낼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31만DWT급 VLCC 정기용선료는 올해 3분기에 하루당 평균 2만5661달러를 기록하며 전분기 대비 61.2% 상승했다. 이는 폐선이 임박한 낡은 배들이 많고 러시아에 적을 둔 선박의 사용이 제한된 상황이라 공급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상균 현대중공업 사장은 지난 9일 3분기 경영현황설명회에서 "탱커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운임이 상당히 호전되고 노후선을 매각한 뒤 최신 선형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신조 발주 확대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탱커 신조 시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전세계 선박 발주량이 늘어난 최근 2년 동안 탱커는 오히려 줄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새로 배를 짓겠다는 주문을 낼 선주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와 영국 클락슨리서치 등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형 탱크 발주량은 전년대비 76.7% 감소했고, 국내 중형 탱커 상반기 수주량은 4척에 불과했다.
글로벌 환경 규제나 국제 정치 상황도 탱커 신조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석유 증산, 고연료비 대응을 위한 저속 운항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로 점차 노후선의 폐선이 증가함에 따라 선복량은 오히려 감소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와 함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의 유류 수입노선이 길어졌고, 제재를 받는 러시아 선박은 사용이 제한되면서 가용 선박수도 줄게 됐다.
반면 한국과 중국의 조선소들은 수년간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생산력이 줄었고, 살아 남은 조선사들도 수익성이 좋은 LNG운반선 및 컨테이너선으로 향후 2년 간 작업 일정을 채웠다. 이 때문에 글로벌 해운업계에서는 2025년까지는 전 세계적으로 새로 건조한 탱커의 공급이 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탱커는 원유나 정제된 석유제품, 화학제품 등 세계적으로 수요가 많은 액체화물 운송을 담당하는 화물선으로, 중형급 이상의 전세계 탱커 선대규모는 7400척 수준으로 추정된다. 신조 시장에서는 벌크선 다음으로 큰 시장으로 한중일 3국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시장이다.
원유운반선에 집중돼 있는 20만DWT(재화중량톤수) 이상의 VLCC, 12만5000~20만DWT급인 수에즈막스(Suezmax) 등이 대형선으로 분류된다. 중대형선은 원유운반선과 제품운반선 등이 혼재돼 있으며 8만5000~12만5000DWT급인 아프라막스(Aframax) 또는 LR2, 5만5000~8만5000DWT급인 파나막스 또는 LR1이 해당한다. 석유 및 화학 제품운반선이 주를 이루는 중형선으로는 4만~5만5000DWT급 MR2, 2만5000~4만DWT급 MR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