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광역시 유성구 대학로는 궁동과 어은동, 충남대와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를 창업가 거리가 동서로 가르고 있다. 이곳 일대에는 중소벤처기업부 팁스(TIPS) 타운과 카이스트 창업원, 대전 스타트업파크 등 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시설들이 모여 있다. 유성천을 등지고 창업가 거리에 들어서자 파란색 대문이 활짝 열린 ‘시작점’이 눈에 들어왔다.

시작점은 대전 기반 액셀러레이터(AC) 블루포인트파트너스가 운영하고 있는 스타트업 커뮤니티 공간이다. 총 4층 규모로 모두 초기 창업가들을 위해 꾸며졌다. 지하 1층에는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펍이, 1층에는 카페가 있고 2층과 3층은 아지트와 사무공간으로 마련됐다. 이곳에서는 매달 창업 네트워킹 파티와 강연, 멘토링 등이 열린다.

차병곤 시작점 대표는 “한국의 스타트업 지원 생태계는 ‘톱 다운(Top-down)’ 방식이다. 네트워킹이라고 하면 보통 200~300명을 모아두고 유명 창업가가 일방향으로 강연을 한 뒤 명함을 주고 받는 데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며 “특정 주제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데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와 장소가 생각보다 없었다. 블루포인트는 ‘시작점’이라는 커뮤니티 공간을 제공하고 필요한 설루션을 제공함으로써 창업가들이 자유롭게 섞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창업가거리에 있는 블루포인트파트너스의 스타트업 커뮤니티 공간 '시작점'. /대전=이은영 기자
차병곤 시작점 대표(블루포인트파트너스 CFO)가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네트워킹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전=이신태 PD

‘인재의 보고’ 대전이 기술 스타트업의 요람으로 떠오르고 있다. 창업진흥원에 따르면 대전의 전체 창업기업 수는 3만5500개로 전국에서 네 번째로 적지만, 최근 5년 동안 평균 26.6% 증가하며 전국 평균을 웃돌았다. 특히 비수도권 지역 중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벤처투자 규모 역시 지난해 4364억원으로 수도권 다음으로 큰 것으로 집계됐다.

대전은 대덕연구개발특구를 중심으로 카이스트 등 국내 최고의 연구기관과 민간기업 연구소가 몰려 있어 연구소발(發) 테크 스타트업 창업이 활발하다. 이 때문에 유성구 대학로 창업가 거리 일대뿐만 아니라 중구, 대덕구, 서구 등에도 연구기관의 연구 결과물을 창업과 연계하기 위한 창업 허브들이 권역별로 마련돼 있다. 김영태 카이스트 창업원장은 “대전에는 과학기술 인재들이 집중돼 있고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며 “국내 어느 지역보다도 기술 창업 잠재력이 높은 곳”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대전 기반 AC 블루포인트는 활발해지고 있는 창업 분위기를 띄울 묘책으로 ‘커뮤니티’를 제시했다. 대전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지속 가능하려면 결국 사람간의 만남이 중요하다는 믿음에서였다. 차병곤 대표는 “창업자들이 창업 준비 활동을 제일 많이 하는 곳이 기숙사다. 초기에는 좋은 피드백을 듣기 어려우니 숨어서 혼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혼자서 문제 해결을 하려 하면 사업이 작아지고 잘 안 된다”며 “다른 사람과 만나 영감을 얻고 역량을 빌려야 어떤 ‘일’이 생기는 것인데 지금까지는 그런 장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점’이라는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고, 이벤트를 기획하고 블루포인트의 설루션을 제공해 모일 수 있게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커뮤니티 네트워킹을 통해 지역적 한계도 극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차 대표는 “기술 창업이 활발한 것은 대전의 장점이지만, 반대로 지역에 과학 기술자만 모여있다는 것이 한계점이 되기도 한다”며 “창업을 하려면 기술만 있어서는 안 되고 시장 감각이 있는 전략가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네트워킹 행사를 개최하면 처음에는 80%가 카이스트 창업자들이었는데 지금은 카이스트를 포함한 충청권 비율이 30%정도로 내렸다. 그만큼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네트워킹을 위해 대전을 찾고 있다. 여기서 협업 가능성을 찾는다면 인재를 찾아 서울로 떠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작점은 매달 ‘창업 메이트를 찾아라’, ‘스타트업에 관심 있는 예비 C 레벨’과 같이 특정 테마를 둔 무료 네트워킹 행사를 연다. 업계 관계자들의 강연과 블루포인트 심사역의 사업계획서 코칭 등 멘토링도 제공한다. 수륙양용 자율주행 로봇을 개발하는 4년차 스타트업 ‘아트와’의 강동우 대표는 “아이템 선정, 투자유치, 네트워킹 등 창업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작은 의사결정조차 어려웠던 시기에 이런 창업 커뮤니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그 당시 이룬 것의 80% 정도는 창업 선배들의 도움 덕이었다”고 말했다.

대전 팁스타운에서 만난 박상욱(왼쪽) 블링커스 대표와 강동우 아트와 대표./대전=이신태 PD

기술을 개발했을 때 커뮤니티 안에서 사용자를 찾고 피드백을 받는 등 서로가 서로의 테스트 베드(test bed·시험적으로 적용해보는 지역이나 집단)가 돼주기도 한다. 와인 NFT(대체 불가능 토큰) 거래 플랫폼 ‘뱅크 오브 와인’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블링커스의 박상욱 대표는 “시작점에서 만난 한 스타트업과 업무 제휴를 맺어 함께 사업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여러 네트워킹이 계속해서 쌓인 결과”라고 말했다.

학교와 기관도 네트워킹 지원에 나섰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서울 강남에 이은 두 번째 팁스타운을 지난해 충남대 캠퍼스에 개관했다. 팁스타운을 운영하고 있는 창업진흥원은 “대전은 다른 지역에 비해 고급기술인력의 기술창업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또 팁스 프로그램 참가 기업의 소재지를 보면 수도권을 제외하고 창업기업과 운영사가 가장 많은 곳”이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충남대학교에 위치한 대전 팁스타운. /대전=이은영 기자

지난 9월 기준으로 투자기관 8개와 스타트업 35개가 대전 팁스타운에 입주해 있다. 매달 ‘팁톡(팁스+토크)’이라는 행사를 통해 입주 기업과 투자자간 교류뿐만 아니라 지역 내 (예비)창업자와 각계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할 수 있도록 장을 제공하고 있다.

카이스트 창업원은 선배 창업자와의 네트워킹을 통해 ‘스마트업 마인드’를 가질 수 있게 하는 ‘런치 톡(점심+토크)’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김영태 창업원장은 “‘무얼 가르치면 창업자가 된다’는 공식은 없다. 대체로 창업가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감명을 받아 창업을 결심한다”며 “그래서 창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선배 창업자나 교수 창업자들과 경험을 나눌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무형의 네트워크를 유형의 자산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공간이라는 것이다. 김 원장은 “사업에서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50%이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을 하려면 적절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시설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지향점을 가진 다양한 분야의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여러 기술과 모델을 접목하면 새로운 시장이 탄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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