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개찰기와 ATM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오므론, IT기기 필수 부품인 적층세라믹콘덴서 분야 세계 1위인 무라타제작소, 자동차 배기가스 측정기 시장을 석권한 호리바제작소, 일본 ‘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가 창업한 교세라, 세계 최대 모터 기업인 일본전산.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교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기업가 정신은 ‘교토식 경영’이라 불리며 전 세계 경영인의 벤치마크 모델로 자리잡았다.

이처럼 세계 시장에서 내로라 하는 기업들이 여전히 교토 본사를 유지하고 있지만, 정작 교토의 경제 성장은 침체돼 있다. 일본 내무부에 따르면, 2019년 교토의 총생산은 10조7661억엔으로 2018년(10조6995억엔)보다 0.6% 성장하는 데 그쳤다. 2018년 총생산 역시 전년( 10조6281억엔) 대비 0.7% 늘었다.

그러나 여전히 교토의 기업가 정신은 살아있는 만큼, 여기서 지역 경제 활성화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교토 경제계의 판단이다.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스타트업’을 선정한 이유다. 민관합동 스타트업 지원 기관 ‘교토지혜산업창조의숲’의 카와구치 타카시 차장은 “장수기업은 적기에 혁신을 이뤄내지 않으면 오래 사업을 유지할 수 없고, 여기서 기업가 정신이 나타난다”며 “글로벌 기업이 많은 교토인 만큼 이곳 청년들도 자연스럽게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노우에 토모코 오므론벤처스 CEO. 오므론벤처스는 1974년 오므론 창업자 다테이시 가즈마가 설립한 일본 최초 민간벤처캐피탈인 '교토기업개발(KED)'의 철학을 계승해 2014년 출범했다./오므론벤처스 제공

◇ 선배 기업이 끌어준다… 교토, 일본 기업주도형 VC의 출발지

교토의 기업가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선배 기업들이 앞장서고 있다. 오므론은 2014년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인 ‘오므론벤처스’를 설립했다. 이곳은 다테이시 가즈마 오므론 창업자가 1972년부터 1979년까지 운영한 일본 최초의 민간 벤처캐피탈인 ‘교토기업개발(KED)’의 철학을 계승했다. 다테이시가 KED를 통해 1974년 일본전산의 공장 건설 자금을 지원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노우에 토모코 오므론벤처스 CEO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자사의 지식과 사업 자산을 활용해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한다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는 신념 하에 오므론벤처스가 출범했다”고 말했다.

오므론은 탄소중립과 디지털 사회 실현, 건강수명 연장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스타트업 지원 대상을 선정할 때도 이같은 목표를 함께할 수 있는 파트너인지를 살핀다. 이노우에 CEO는 “오므론과 함께 사회적 이슈를 해결하려 하는 동기, 그리고 이 이슈들을 적극적으로, 꾸준하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중요하게 본다”고 말했다. 오므론벤처스는 현재까지 21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CVC의 장점은 스타트업의 자금 애로를 해소해줄 뿐만 아니라, 선배 기업의 경험을 전수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노우에 CEO는 “CVC는 풍부한 인적 자산 외에도 엄청난 사업 자산과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라며 “일반 VC와 스타트업 대부분이 조직관리 분야 지식과 인적 자산이 부족하지만, 대기업 VC는 스타트업이 진정으로 원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처리해주고 제공해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외국인의 발상·문화 적극 도입하는 ‘스타트업 비자’

기업가 정신을 이어가되, 시대가 바뀐 만큼 보다 역동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외국인의 창업을 촉진하는 ‘스타트업 비자’가 교토에 도입된 이유다. 쇼 히데키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교토 소장은 “교토엔 벤처기업에서 대기업이 된 기업들이 있지만, 일본 전체적으로는 보수적이고 리스크(위험 요인)를 회피하려는 분위기가 있다”며 “외국인의 발상과 그들의 문화, 속도감이 일본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일본 스타트업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토는 투자 자금부터 모아야 하는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과 사업화에 바로 착수할 수 있는 스타트업 등 두 부문으로 나눠 스타트업 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공통적으로 6개월간 비자를 내주는데, 초기 단계 스타트업 운영자는 6개월 더 비자 연장이 가능하다. 쇼 소장은 “자금 500만엔을 조달할 수 있는 계획과 능력, 고객 확보 방안, 각 사업에 필요한 자격 보유 등에 따라 비자 발급을 승인한다”며 “비자 유효기간이 종료될 때 사업 성과를 내고 있다고 판단되면 ‘비즈니스 매니저’ 비자로 전환하도록 해 사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말했다.

일본으로 유학온 중국·대만 학생들이 '스타트업 비자'를 받아 창업한 음식점 디지털 전환(DX) 스타트업 '펀포'. QR코드를 통해 주문, 계산 등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한다./펀포 홈페이지 캡처

교토가 스타트업 비자 제도를 도입한 2020년 이후 현재까지 총 9명의 외국인이 스타트업 비자를 취득했고, 이중 4명이 비즈니스 매니저 비자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같은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도쿄, 후쿠오카 등 다른 지역과 달리, 교토는 스타트업 비자를 발급할 때 사업 분야를 한정짓지 않고 있다. 쇼 소장은 “분야와 상관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최대한 받아들이려 한다”고 말했다.

그 결과 탄생한 스타트업이 일본 음식점의 디지털 전환(DX)을 돕는 ‘펀포(Funfo)’다. QR코드를 통해 고객이 스마트폰으로 주문하고 계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음식점은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고객 정보를 수집해 마케팅에도 활용할 수 있다. 펀포는 교토 리쓰메이칸대에 유학 온 중국, 대만 학생들이 2020년 10월 창업했다. 현재 일본 전역에서 1000여개의 음식점이 펀포의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쇼 소장은 “교토는 오래된 기업과 혁신적인 기업이 공존하는, 기업가 정신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는 도시”라며 “외국인 스타트업을 통해 일본 청년들이 자극을 받는다면 스타트업이 많아지는 것은 물론, 해외로 진출하는 스타트업도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오므론·교세라 키워낸 日 교토 ‘기업가 정신’ 스타트업으로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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