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사진)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27일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본격적인 '이재용 시대'가 열렸다. 부친인 고 이건희 회장이 2020년 10월 별세한 지 2년 만이자 이 회장이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지 31년 만이다.
이 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2014년 5월 10일 병상에 오른 이후 사실상 그룹 총수 역할을 했지만, 공식적으로 회장직에 올랐다는 것은 '이재용 삼성' 시대가 본격 시작됐다는 신호탄과 같다. 이 회장의 '뉴삼성' 비전도 빠르게 구체화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이날 '어닝쇼크'(실적 충격)를 기록한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특히 주력 사업인 메모리 반도체 업황 악화로 3분기 영업이익이 30%나 급감했다. 실적 버팀목이던 메모리 반도체가 부진했고, 코로나19 특수가 사라지며 완성품 수요가 위축된 영향이 컸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위기를 타개하고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속에 초격차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회장 취임과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삼성전자 이사회도 이날 이 회장의 승진을 의결한 이유에 대해 글로벌 대외 여건이 악화하고 있는 가운데 ▲책임 경영 강화 ▲경영 안정성 제고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회장직에 올라 경영 전면에 나서는 만큼 삼성전자가 바이오, 인공지능(AI), 차세대통신 등 미래 신사업 분야에서 적극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태스크포스(TF) 수준인 삼성의 컨트롤타워가 정식 조직으로 복원될지도 관심이다. 삼성은 2017년 2월 말 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미전실)을 폐지하고, 사업지원(삼성전자)·금융경쟁력제고(삼성생명)·EPC(설계·조달·시공) 경쟁력 강화(삼성물산) 등 사업 부문별로 쪼개진 3개의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이다.
이 회장은 2019년 10월 임기만료로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상태다. 책임 경영 차원에서 내년 3월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등기 임원에 오를지도 관심사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글로벌 경제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삼성전자의 통신장비 사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경쟁력으로 꼽히고 있다. 2020년 버라이즌과의 7조9000억원 규모 대규모 5세대 이동통신(5G) 장기계약, 2021년 NTT 도코모와의 통신장비 계약 당시에도 이 회장은 직접 통신사의 최고경영자(CEO)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협상을 진척시켰다. 최근 미국의 '디시'와 5G 통신장비 공급계약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이 회장과 디시 회장이 직접 만나 함께 오랜 시간 산행하며 사실상의 협상을 마무리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 그룹 회장 자녀들의 결혼식에 국내 기업인 중 유일하게 초청받아 인도를 방문해 친분을 쌓았다. 인도 최대 통신사인 릴라이언스 지오는 현재 전국 LTE 네트워크에 100% 삼성 기지국을 쓰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회장의 '바이오 네트워크'가 삼성에 대한 글로벌 바이오 업계의 신뢰와 평판을 높이며, 삼성의 바이오 사업뿐만 아니라 한국의 바이오 산업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 회장은 지난해 11월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서 누바 아페얀(Noubar Afeyan) 모더나 공동 설립자 겸 이사회 의장을 만나 ▲삼성과 모더나 간 코로나19 백신 공조 ▲향후 추가 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같은해 8월에는 모더나 최고경영진과 화상회의를 통해 성공적인 백신 생산을 통해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바이오 산업 전반으로 협력을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코로나19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2020년에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화이자 백신 국내 조기 도입에도 기여했다.
이 회장은 최근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2030년 세계엑스포 부산 유치를 지원하기 위한 '민간 외교관'도 수행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은 한국의 핵심자산"이라며 "지금과 같은 엄중한 상황에서는 이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대한민국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54세인 이 회장은 경복고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뒤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했고, 일본 게이오기주쿠대 대학원 경영관리학과를 거쳐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경영학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학업을 마친 뒤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실 상무보로 복귀해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2007년 1월 전무 겸 최고고객책임자(CCO)로 승진했다. 이후 삼성 특검 결과가 발표된 2008년 4월 CCO를 내려놓고 '백의종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09년 5월 경영권 편법 승계 의혹을 핵심으로 하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사건이 대법원에서 무죄로 마무리됐고, 같은 해 12월 부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승진했다. 2014년 5월 부친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경영 전면에 나섰고, 이듬해 5월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선임되며 그룹 승계를 위한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2016년 10월에는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올랐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되며 같은 해 11월 참고인 신분으로 첫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고, 2017년 2월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이후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며 풀려났으나 다시 지난해 1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재수감됐다.
2020년 5월 총수로서 처음으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4세 경영 포기'를 전격 선언했다. 또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구성했으나 구속을 막지는 못했다. 지난해 8월 가석방된 그는 형기가 종료된 뒤에도 5년 동안의 취업 제한 규정 때문에 경영 활동에 제약을 받았으나 올해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되며 모든 제한이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