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이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이건희 회장에 이어 27일 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 모두 사람과 기술을 토대로 '혁신'을 강조하며 삼성그룹을 키워왔다. 이재용 회장도 "선대의 업적과 유산을 계승 발전시켜야 하는 게 제 소명"이라며 변화와 도전을 예고했다.
삼성의 시작은 1938년 이병철 회장이 대구에서 설립한 삼성상회(현 삼성물산(028260))다. 이병철 회장은 이후 '사카린 밀수 사건'과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제일제당, 삼성전자, 삼성중공업(010140)을 설립하며 확장을 이어갔다. 1983년 2월 8일에는 당시 반도체 중에서도 첨단 기술로 꼽히는 초고밀도집적회로(VLSI)에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2·8 도쿄선언'이다. 같은해 64K D램 개발에 착수하고 6개월 만에 미국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개발에 성공했다.
이병철 회장은 1984년 기흥 VLSI 공장 준공식에서 "삼성이 반도체에 대규모 투자를 한 것은 충분한 투자여력이 있어서만은 아니다"라며 "오로지 우리나라의 반도체산업을 성공시켜야만 첨단산업을 꽃피울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삼성의 모든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이 사업의 추진을 결심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 역시 위기 때마다 혁신을 돌파구로 삼았다. 이병철 회장이 타계하고 이건희 회장은 1987년 12월 회장직에 올랐다. 이듬해 '제2 창업'을 선언하고 양에서 질로 성장 방식을 전환할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뚜렷한 변화가 없자, 1993년 6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로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을 한다. 품질의 삼성이라는 표현이 이때부터 나왔다. 1995년 500억원어치 불량 휴대전화 15만대를 태운 사건도 이건희 회장의 품질경영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이건희 회장은 이후 "5년에서 10년 후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를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2002년 4월)"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는 샌드위치 신세(2007년 1월)"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2010년 3월)" 등의 말처럼 끊임없이 조직에 위기의식을 심어주고 혁신을 주문했다. 이 덕분에 이건희 회장 취임 당시 매출 9조9000억원이었던 삼성그룹은 2014년 400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이재용 회장도 이런 선대 회장들과 같이 끊임없는 혁신을 주문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25일 사장단 간담회에서 "선대의 업적과 유산을 계승 발전시켜야 하는 게 제 소명"이라며 "안타깝게도 지난 몇년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새로운 분야를 선도하지 못했고, 기존 시장에서는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돌이켜 보면 위기가 아닌 적이 없고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될 수 있다"며 "미래 기술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있고 최고의 기술은 훌륭한 인재들이 만들어 낸다"고 했다.
이재용 회장은 당장 경기 침체 위기 등 현안 과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이날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동기보다 31.4% 감소했다고 공시했다. 메모리 반도체 부진에 더해 TV·가전 수요가 줄어든 영향이 컸다.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업계에선 이재용 회장이 공식적으로 회장직에 오른 만큼 바이오, 인공지능(AI), 차세대통신 등 미래 신사업 분야에서 적극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