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 세대(1997~2010년생)는 디지털 자산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역사적 보도 기반의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는 내재적 가치가 있습니다.”
“당신이 축구 문외한이라도 당신의 딸이 소속된 동네 축구팀의 경기 결과 뉴스를 읽고 싶어 할 겁니다.”
세계뉴스미디어총회(World News Media Congress 2022)가 9월 28일부터 30일(현지시각)까지 스페인 사라고사 콩그레스 팰리스(Palacio de Congresos de Zaragoza)에서 열렸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여파로 3년 만에 열린 총회였다. 1000년 전 고도(아라곤 왕국의 수도)라는 자부심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도시에서 ‘노 마스크(No Mask)’ 행사 참가만으로도 자유라는 단어 자체를 만끽하기 충분했다. 문제는 전 세계 저널리즘 상황.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가짜 뉴스 창궐로 세계는 분쟁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날 줄 모르고 미디어 업계는 테크 플랫폼 기업에 독자와 광고주를 내주며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전 세계 주요 미디어들이 팬데믹 기간에 치열한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성과도 만들어 냈다. 대형 강당에서 열린 기조연설도 인기를 끌었지만, 100여 명이 들어가는 강의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기술 세션에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기자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총회에 참가, 전 세계 미디어 기업의 최신 흐름을 살펴봤다.
눈길 끄는 미디어 혁신 사례
1│동네 뉴스로 구독자 증가 베르겐스 티덴데
노르웨이 신문사인 베르겐스 티덴데(Bergens Tidende)는 로봇 기자를 활용, 진성 구독자를 모은 노하우를 공개했다. 베르겐스 티덴데는 노르웨이 5위권 신문사다. 오슬로 이외 지역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다. 이 회사는 2015년 설립된 스웨덴 기업 유나이티드 로봇(United Robots)과 협업해 텍스트, 이미지, 그래픽, 지도 등의 콘텐츠를 대량으로 자동 생산하고 있다. 베르겐스 티덴데가 추구하는 로봇 저널리즘은 중앙 정치인의 행보나 거창한 어젠다 논쟁이 아니라 독자 가까이에 있는 뉴스, 즉 동네 뉴스를 발굴하는 데 있다. 세션 제목이 ‘우리 집에 더 가까운 스토리(More stories, closer to home)’인 이유다. 이 회사 장 스티안 볼드(Jan Stian Vold) 프로젝트 책임자는 이를 ‘하이퍼로컬 스토리(Hyperlocal stories)’라고 명명했다.
베르겐스 티덴데 로봇 기자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지역 내 기업의 실적 보고서를 쉽게 요약해주고, 일대의 모든 주택 거래를 보도한다. 약 3년 동안 총 3만5000건의 기사를 작성했고, 이 덕분에 2000건의 구독권 판매가 이뤄졌다. 로봇 기자가 만들어낸 페이지뷰도 500만 건에 달한다. 매스 미디어 시대에서 경력을 쌓아온 ‘인간 편집자’들은 많은 사람이 좋아할 만한 아이템을 찾는다. 하지만 로봇 기자를 이용하면 극소수 사람의 관심사도 뉴스로 다룰 수 있다. 이 회사의 부동산 로봇 기자는 3~4개의 단락을 쓰고 주택 크기, 평방미터당 가격, 다른 주택 거래 가격과 비교, 구글 스트리트뷰 사진, 위성 지도 및 주소 등의 정보를 덧붙인다.
2│스타 CEO가 창업한 블록체인 회사 아티팩트 랩스
게리 리우(Gary Liu)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전(前) 수장이 블록체인 세션의 발표자로 나섰다. 세션 주제는 ‘웹 3.0(Web3: a dive into the decentralised web- NFT’s, DAO’s)’. 리우는 2017년 34세 나이에 120년 역사를 자랑하는 홍콩 유력지 SCMP의 최고경영자(CEO)에 올라 화제가 된 인물이다. 기자도 2019년 SCMP를 방문, 그에게서 디지털 전환 노하우를 얻었다.
지난 3월 SCMP는 자체 블록체인 사업 부문을 분사, NFT 전문 기업인 아티팩트 랩스(Artifact Labs)를 만들었고 리우 CEO는 이 회사 창업자 겸 CEO로 변신했다. 아티팩트 랩스는 1997년에 발행된 SCMP 지면을 기반으로 NFT를 만들어 첫 번째 성공 사례를 낳았다. 25만달러(약 3억6000만원)어치의 NFT가 수 시간 만에 팔려나갔다. 1997년은 영국이 100년 만에 홍콩을 돌려준 해다.
3│자동화 강자로 거듭나다 글로벌앤드메일
이번 총회에서 기자를 의외로 놀라게 한 기업은 캐나다 미디어 기업 글로벌앤드메일(The Globe and Mail)이다. 뉴욕타임스(NYT)나 악시오스(Axios) 등 미국 미디어 기업의 성과는 많이 접했지만, 글로벌앤드메일의 기술적 약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 회사는 팬데믹 기간에 뉴스 생산 자동화 기술을 고도화해 다른 미디어 회사에 솔루션을 판매하는 단계까지 왔다. 이 회사의 ‘소피 사이트 자동화(Sophi Site Automation)’ 솔루션은 독자에게 가장 매력적인 콘텐츠를 찾아 게시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영어 매체 뉴스24가 이 솔루션을 보조 에디터로 사용하고 있다. 또 지난 5월에는 유력 통신사 로이터와 제휴를 맺어 소피 알고리즘을 한층 고도화하고 있다. 이 회사는 클릭 한 번으로 종이 신문의 레이아웃을 자동으로 만드는 솔루션도 개발했다.
AI는 친구인가, 적인가
미디어 업계의 내로라하는 기술 전문가 네 명이 뉴스 생산 및 편집 자동화 기회와 도전에 대해 토론하는 세션도 있었다. 행사에 참가한 한국언론진흥재단 오세욱 연구위원은 일본 경제 신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에 최고과학자(Chief Scientist)가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평가했다. 이 세션의 패널로 참가한 나카지마 히로토(中島寛人) 니혼게이자이 최고과학자는 이론 물리학 박사다. 니혼게이자이는 딥러닝(기계 학습)을 통해 기사 페이지 클릭률을 세 배 이상 높이고, 영상 뉴스를 만화 캐릭터를 이용해 자동으로 만드는 방법으로 제작 비용을 절감했다. 최근 나카지마 박사는 빠른 기계 학습을 위해 양자 컴퓨터를 미디어에 접목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오 연구위원은 “해외 미디어들이 기술에 투자하고 고급 인력을 유치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데, 한국 미디어들도 참고할 만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후안 세뇨르(Juan Señor) 이노베이션 미디어 컨설팅 그룹 대표는 AI와 웹 3.0 기술이 미디어와 만나는 트렌드를 두고 “제2의 디지털 시대(second digital age)의 서막이 열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1900년대 탄생한 ‘페니 프레스(Penny Press·독자에게는 1센트에 신문을 판매하고 광고로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 매스 미디어를 상징하는 용어)’ 시대가 끝난 오늘날, AI와 블록체인이 미디어를 구할 수 있을까.
+Plus Point
총회에서 울려 퍼진 “#저널리즘이중요하다”
9월 28일은 세계 뉴스의 날이다. 허위 정보에 맞서 팩트에 기반한 저널리즘을 확산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전 세계 500여 개의 편집국(newsrooms)이 ‘#저널리즘이중요하다(#JournalismMatters)’라는 간단명료한 메시지를 냈고, 총회장에서는 ‘저널리즘 복원’을 주제로 한 토론이 이어졌다.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도 총회 첫날 참가해 ‘황금펜(Golden Pen of Freedom)’ 수상자를 격려했다. 황금펜은 세계신문협회가 매년 언론 자유 수호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언론인에게 주는 상이다. 펠리페 6세 국왕은 “양극화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며 “허위 정보 등이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건강한 언론, 저널리즘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올해 황금펜 수상자는 폴란드의 일간지 가제타 비보르차(Gazeta Wyborcza)다. 폴란드 정권의 탄압에 맞서 언론 자유를 지키고 비브로차재단을 설립해 동유럽의 언론사들과 우크라이나 언론인들을 지원한 공로를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