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분기까지 산업기계·정밀기계 수입이 지난해보다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기업들이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이른바 3고(高) 상황을 맞아 설비 투자를 줄인 영향으로 풀이된다.

26일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산업기계 수입 규모는 7억2208만달러(약 1조원)로 지난해 동기보다 7.3% 줄었다. 하위 품목 가운데 식품가공포장기계(-30.6%), 주조설비(-30.2%), 제지인쇄기계(-19.8%), 금속공장기계(-16.4%)의 수입 감소 폭이 컸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으로 보면 섬유·화학기계 수입 규모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8% 적었다.

일러스트=손민균

정밀기계 수입 규모는 지난달 17억4146만달러(약 2조5000억원)로 전년 동기보다 2.6% 늘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반도체 제조용 장비는 5.8% 감소한 11억594만달러였다. 특히 올해 3분기까지 반도체 제조용 장비 누적 수입 규모는 지난해 동기보다 19.2% 줄었다.

기계류 수입 규모는 국내 설비 투자의 가늠자 역할을 한다. 경기가 나빠지면 기업들이 투자 규모를 줄이고, 기계 수입도 감소한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듬해에는 기계류 수입 규모가 전년 대비 반토막났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을 중심으로 자국우선주의 정책이 쏟아지면서 우리 기업들이 해외 투자를 늘렸는데, 금리인상과 함께 돈줄이 빠르게 마르면서 상대적으로 국내 투자는 미루거나 축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동성 관리를 위해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거나 미루고 있다. 염료 전문업체 경인양행(012610)은 전북 익산 제3일반산단에 1700억원을 투자해 공장을 새로 짓기로 했으나, 이달 투자 규모를 500억원으로 줄였다. 경인양행은 "기준금리 인상, 고물가, 고환율 등 대내외 요인으로 투자비가 증가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세계 경제침체 우려에 따라 투자 규모를 축소했다"고 공시했다.

주요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SK하이닉스(000660)는 지난 6월 4조3000억원 규모의 청주 반도체 공장 증설을 보류하고, 내년도 투자규모도 올해보다 절반 이상 줄이기로 했다. 한화솔루션(009830)은 질산유도품(DNT) 생산공장 신설 계획(1600억원)을, 현대오일뱅크는 정유설비 신규 투자 계획(3600억원)을 철회했다. 현대차(005380)도 올해 투자 규모를 9조2000억원에서 8조9000억원으로 3000억원가량 줄이기로 했다.

기업들은 3고 위기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경영전략을 점검하고 나섰다. LG전자(066570)는 다음달부터 워룸(War room·전시 작전실)을 운영하기로 했고 SK(034730)그룹도 계열사별 위기관리 매뉴얼을 준비하기로 했다. 앞서 포스코·한화·현대중공업그룹도 비상 경영에 돌입했다. 포스코그룹은 지난달부터 계열사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이 정기 회의를 진행, 현금 흐름을 관리하고 있다.

제조 대기업 관계자는 "신규 투자를 아예 중단할 수는 없어 옥석을 가리고 있다"며 "사업 부문별로 서로 성장성이 뛰어나다고 내부 경쟁까지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