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글로벌 양대 아트페어인 ‘프리즈 서울(Frieze Seoul)’과 토종 아트페어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함께 개최되며 7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모았다. 이러한 분위기는 자신의 취향을 투영하는 대상이자 자산 증식 수단으로 미술품을 바라보는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의 등장과 관련이 깊다. 이들은 저상장 시대 투자 대체재로서 ‘아트테크(아트+재테크) 열풍’을 주도하고 있으며 온라인 플랫폼 거래에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이 MZ 세대를 중심으로 올해 사상 처음 미술품 거래액 1조원대를 넘보고 있는 국내 미술 시장 대중화 현상을 분석한 배경이다. [편집자주]

이건희 특별전

‘벨 에포크(Belle Epoque·아름다운 시절을 뜻하는 프랑스어)!’

10월 12일 오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현장. 80여 팀의 현장 대기를 기다린 후 전시관 내부에 들어서자 가로등이 켜진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의 초저녁을 연상케 하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어 둥근 벽면을 따라 마르크 샤갈, 폴 고갱, 클로드 모네, 살바도르 달리 등 미술계 거장들의 작품이 펼쳐졌다. 책에서나 볼 수 있는 명화를 눈앞에서 확인한 관람객들은 쉴 새 없이 ‘인증샷’을 찍었고 “정말 멋진 작품”이라는 감탄사를 보내기도 했다. 가장 많은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작품은 모네의 말년작 ‘수련이 있는 연못’이었다. 미술 애호가였던 고(故) 이건희 회장 역시 생전에 거실에 걸어뒀을 만큼 아끼는 작품인데, 지난해 5월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모네의 비슷한 작품이 4000만달러(약 582억원)에 낙찰된 만큼 값비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삼성 일가는 예술을 공유하고 향유하는 일에 의미를 두겠다며 기증 리스트에 포함시켰다.

슈퍼리치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고가 미술품에 대한 직간접 경험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누군가의 통 큰 기증 외에도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거래 플랫폼의 급증, 한국 미술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진출하는 글로벌 대형 아트페어의 잇단 개최 등이 한국 미술 시장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저상장 시대 주식과 부동산의 투자 대체재로서 ‘아트테크(아트+재테크) 열풍’이 불고 있는 것도 한몫한다. 이 같은 현상은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가 주도하고 있다.

특히 올해 글로벌 3대 아트페어(미술 장터)인 프리즈가 지난 9월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려 전시 나흘 만에 6500억원 규모(추정)의 완판 기록을 세우는 등 분위기도 달아오르고 있다. ‘프리즈 서울(FRIEZE SEOUL)’과 함께 서울 코엑스에서 국내 최대 아트페어 ‘키아프 서울(Kiaf SEOUL·한국국제아트페어)’이 열렸는데, 두 아트페어에 7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간 것으로 주최 측은 추산했다. 아트페어 입장권이 17만원이나 했는데도 현장에는 소셜미디어(SNS)에 인증샷을 올리며 문화생활을 즐기는 MZ 세대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YONHAP PHOTO-4137> 피카소 작품 전시된 '프리즈 서울'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에서 한 관람객이 피카소의 작품을 촬영하고 있다. 2022.9.2 scape@yna.co.kr/2022-09-02 16:45:44/ <저작권자 ⓒ 1980-202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지난해 9200억원에 달한 한국 미술 시장은 올해 상반기 이미 5300억원을 넘어섰다. 한국미술시장정보시스템 측은 “하반기에는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키아프 서울이 세계적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과 동시에 개최되는 등 한국 미술 시장의 성장과 국제화가 촉진되며 다수의 전문가가 1조원의 문턱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술품이 부유층의 전유물에 머물지 않고 대중이 향유하는 문화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젊은 세대의 투자와 온라인 거래 활성화는 위축됐던 세계 미술 시장의 반등을 이끈다. 실제 미술품을 포함한 세계 예술 시장은 2020년 503억달러(약 73조2800억원)로 전년 대비 21.9% 위축됐지만 지난해엔 651억달러(약 94조8500억원)로 전년 대비 29.4% 반등했다. ‘이코노미조선’이 ‘미술품 대중화’를 분석한 이유다.

세계 5위 韓 현대미술 경매 곧 ‘1000억 시대’

글로벌 미술 전문 조사기관 아트프라이스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1년간 국가별 현대미술 낙찰 총액 순위에서 한국은 미국(10억5000만달러), 중국(7억4000만달러), 영국(4억8000만달러), 프랑스(6800만달러)에 이어 5위(6550만달러)를 차지했다. 전년 대비 증가율로 따지면 344%로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한국의 현대미술 경매 시장은 곧 1000억원대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유수의 해외 대형 아트페어나 글로벌 경매사들이 홍콩·싱가포르를 대신할 ‘넥스트 아시아 미술 시장 거점’으로 한국을 점 찍은 이유다.

MZ 세대의 참여는 한국 미술 시장에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MZ 세대 사이에서 작년부터 40세 미만 젊은 작가들의 작품인 ‘초현대미술(울트라 컨템퍼러리 아트)’ 작품이 주목받는 모습이다. 김환기, 이우환 등 원로 작가 작품에만 붙는 단어인 ‘프리미엄’이 김선우, 장마리아, 문형태 등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도 확대 적용되고 있다. 글로벌 미술 시장에서도 MZ 세대는 큰손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아트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영앤리치’ MZ 세대가 전 세계 고액 자산가 컬렉터 중 64%를 차지하며 미술품에 대한 지출 규모도 전체 세대 중 최고인 평균 37만8000달러(약 5억5000만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YONHAP PHOTO-3348> 호안 미로 '회화' (과천=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20일 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 전시 기자간담회 및 언론공개회에서 참석자들이 작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2022.9.20 ryousanta@yna.co.kr/2022-09-20 14:25:58/ <저작권자 ⓒ 1980-202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MZ 세대가 이끈 미술 투자 붐

MZ 세대는 자신을 어필하는 수단이자 취향을 투영하는 대상으로 미술품을 바라보고 자산 증식 수단으로도 활용한다. 최근 수집과 판매를 함께하는 ‘딜렉터(Deallector·딜러+컬렉터)’가 등장한 배경이다. MZ 세대는 직관적이면서도 표현 대상이 명확한 구상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무명 작가 작품이라도 본인이 보기에 좋은 그림을 찾아 ‘베팅’하는 것이다. 신진 작가 소개 목적으로 0원부터 시작해 거래 참여자들이 가격을 형성하는 서울옥션의 제로베이스 경매처럼 중견·신진 작가들의 데뷔 무대가 과거보다 다양해지고 있는 이유다.

국내 미술 시장이 급부상하면서 부동산·주식 투자의 대체재로 아트테크 열풍이 분 것도 MZ 세대 급부상과 관련이 있다. 신기술 습득에 거리낌 없는 MZ 세대를 대상으로 한 미술품 공동 구매 및 조각투자 플랫폼도 늘어나는 모습이다. 글로벌 경매사인 크리스티 역시 젊은 세대를 잡기 위한 디지털 혁신을 하고 있다. 프랜시스 벨린 크리스티 아시아·태평양 총괄사장은 “역사적으로 의미 깊은 ‘오브제(object)’를 원하는 밀레니얼 세대(1981~96년생)가 늘고 있다”면서 “온라인 경매 창구를 늘리고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 같은 디지털 예술품 관련 다양한 실험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 시장 불안이 미술계 훈풍을 꺾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 양대 경매사 9월 경매 낙찰률은 70% 이하다. 투기성 거래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아트프라이스 보고서는 “잦은 리세일(resale·재거래)이 초현대미술 작가들을 레드오션으로 내몬다”고 지적했다.

plus point

아트에 진심인 백화점·은행예술품 장터·전시 서비스

신세계백화점이 진행하는 ‘블라썸 아트페어’. 사진 신세계백화점

국내 백화점과 은행이 예술품을 사고파는 이른바 ‘아트 비즈니스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기존의 VVIP 고객뿐 아니라 최근 미술품에 관심을 보이는 MZ 세대가 늘면서 연령대 상관없이 맞춤형 아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는 10월 6일부터 11월 7일까지 고객 맞춤형 아트 컨설팅을 위해 국내외 50여 명의 작가 대표작 300여 점을 소개하는 ‘블라썸 아트페어’를 진행한다. 이곳에는 전문 큐레이터가 상주해 고객의 집과 사무실 인테리어에 어울릴 만한 미술 작품을 추천한다. 현재까지 100여 점이 팔렸으며 이 중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의 로고를 형상화한 작품이 최고가(10억원)를 기록했다.

보수적인 은행권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하나은행은 미술품 구매에 관심 있는 고객을 대상으로 미술품 자문 및 구매 특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은행 수장고 공간을 활용해 고객이 소유한 미술 작품 보관 및 전시를 진행한다. 하나은행은 이 밖에 프리미엄 자산 관리 브랜드인 Club 1 PB센터 공간을 활용해 미술에 관심 있는 고객에게 미술·문화 교육 등 체계적인 아트 교육 서비스도 제공한다.

미술품 대중화 인포 그래픽 / 박용선 기자, 김보영 인턴
미술품 대중화 인포그래픽 / 박용선 기자, 김보영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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