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수도 헬싱키 시내에서 차를 타고 북서쪽으로 약 2시간(180㎞)을 달리면 제2의 도시 탐페레(헬싱키의 위성도시인 에스푸 제외 기준)가 나온다. 퓌헤예르비(Pyhäjärvi) 호수를 끼고 있어 수력 발전으로 핀란드에서 최초로 산업혁명이 일어나기도 한 탐페레는 공업도시의 명성을 뒤로 하고 최근 스타트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2020년 10월 탐페레 중심부에 스타트업과 이를 지원·투자하기 위한 모든 조직을 위한 공간인 '플랫폼6'가 문을 연 것이 대표적이다. 네트워킹을 위한 널찍한 공간부터 60여개 로컬(현지)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는 별도 사무실 공간까지 구비한 이곳은 '스타트업을 위한 모든 것을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탐페레 스타트업 생태계의 진원지'를 모토로 내세우고 있다.

탐페레 로컬 스타트업과 지원기관, 투자자를 위한 공간 '플랫폼6'. /플랫폼6

탐페레에서 노키아·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내로라한 대기업을 거쳐 로컬 스타트업 생태계에 뛰어들었다는 알렉산드라 산토스 플랫폼6 최고경영자(CEO)는 "회사를 키우려면 인재와 돈(자금조달)이 필요한데, 이것들이 헬싱키에 주로 모여있기 때문에 지난 10년간 핀란드에서도 수도권으로의 스타트업 집중 현상이 나타났다"면서 "이는 단순히 지리적인 문제를 떠나 '투자자와 스타트업의 접근성이 쉬운가'로 봐야 하며, 플랫폼6는 그 연결고리가 돼서 이런 트렌드를 뒤집고자 한다"고 말했다.

플랫폼6에는 로컬 스타트업뿐 아니라 탐페레 지역 경제 개발 기관인 비즈니스 탐페레, 현지 액셀러레이터인 '레드 브릭', 스타트업 커뮤니티인 '트라이브 탐페레' 같은 곳들이 총집결해 있다. 걸어서 5분 거리에는 핀란드 명문대학 중 한 곳으로 꼽히는 탐페레대가 있다.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가 이곳 탐페레대 출신이다.

테로 쿠클링 비즈니스탐페레 선임사업고문은 "200여개 로컬 스타트업이 8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1억5000만유로(약 2100억원)의 매출(2021년 말 기준)을 올리고 있다"며 "탐페레 스타트업이 헬싱키를 거치지 않고 바로 글로벌로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투르쿠의 스타트업 공간 '스파크업'에서 창업가들이 디지털 마케팅에 관한 세미나를 듣고 있다. /투르쿠(핀란드)=곽재순 PD
핀란드 투르쿠에 있는 스파크업에서 창업가들이 디지털 마케팅에 대한 세미나를 듣고 있다. /투르쿠=곽재순 PD

1812년까지 핀란드의 수도였던 남서부 해안 도시 투르쿠도 자체 스타트업 생태계를 육성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투르쿠시 산하의 투르쿠사이언스파크가 핵심 역할을 한다. 무대는 스타트업과 관련 종사자들을 위한 '스파크업'이라는 곳이다. 플랫폼6와 비슷하다.

티아 투르끼 투르쿠사이언스파크 이사는 "투르쿠는 해양·제약 산업에서 매우 강한데, 모두 기업·대학과 긴밀하게 협업한 것이 배경"이라면서 "글로벌로 뻗어나가고자 하는 모든 스타트업에 이곳이 최고의 장소가 될 수 있도록 스파크업을 거점으로 로컬 명문대인 투르쿠대, 공공·민간부문과 힘을 합치고 있으며, 심지어 헬싱키와도 경쟁하지 않고 손잡고 있다"고 말했다.

투르쿠 현지 스타트업인 '코르피포레스트(숲 가상체험을 통한 정신건강 솔루션)'의 미코 포흐욜라 공동창업자는 "투르쿠사이언스파크를 통해 아이디어 사업화, 고객사 확보, 스파크업 입주 혜택을 받았고, 투르쿠대를 통해 '숲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과학적 결과물도 받을 수 있었다"면서 "핀란드는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헬싱키로 가느냐보다 해외로 나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만큼 유럽 등과 좋은 네트워크가 있는 이곳을 떠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 그와 공동창업한 친동생은 헬싱키 인근에 머물면서 원격으로 사업 중이다.

탐페레대 창업가 과정인 '허브'에서 팀워크를 수행 중인 학생들. /탐페레=곽재순 PD

핀란드와 한국 로컬 스타트업 생태계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인재의 보고'라 할 수 있는 명문대가 각지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핀란드 상위 5개 대학 중 1~2위인 헬싱키대·알토대를 제외하곤 투르쿠대, 오울루대, 탐페레대 등 지역 대학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대학별 격차가 그만큼 작다는 것이다. 이들은 재학 시절부터 기업가 정신을 배우며 창업에 대해 간접 경험한다.

탐페레대는 '허브(HUBS)'라는 창업가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전공에 관계 없이 대학 내 학생 모두에게 열려 있는 선택과목이다. 학생들은 로컬 기업들이 내는 실제 문제를 받아 팀을 짜서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수련한다. 나아가선 이를 제품화해보기도 한다. 여기에 로컬 기업의 관계자, 전문가가 멘토로 투입된다.

허브에서 학생들을 코치해주는 라울 베르랑가는 "전공이나 희망 직업에 관계 없이 기업가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면서 "지난해에만 허브를 거친 스타트업이 15개가 생기는 등 창업을 택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투르쿠대 연구팀이 시작해 분사한 '에듀텐(게임으로 수학교육)'은 대학과 연계해 가장 성공한 스타트업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핀란드 전역에서 40만명 이상의 학생·교사가 이를 이용 중이며, 전 세계 40개국에도 진출했다. 헨리 무우리마 에듀텐 CEO는 "투르쿠대에서 연구할 때 핀란드 정부에서 자금 지원을 받았고, 투르쿠대를 통해서 전국 학교가 프로그램을 채택했다"고 말했다.

레이싱 게임으로 뺄셈을 익히는 에듀텐 연습 콘텐츠. /에듀텐

유럽 최대 규모로 꼽히는 핀란드 엔젤투자자협회(FiBAN)도 로컬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누카 미켈손 FiBAN 이사회 의장은 "100만유로(약 14억원)를 투자하면, 19~20개 일자리가 새로 생긴다는 연구결과가 있는 만큼 공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면서 "현지 대학과 손잡아 연구 단계에서부터 투자하는 방식으로 초기 스타트업을 지원을 할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핀란드 스타트업 정책을 총괄하는 노동경제부의 삼프사 니시넨 혁신·기업금융 국장은 "스타트업의 절반은 헬싱키에 몰려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 지역을 중심으로 이를 개선하기 위한 많은 활동이 이뤄지고 있어 긍정적"이라면서 "지역발전과 경쟁력을 위해 스타트업 육성은 (핀란드 경제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헬싱키·탐페레·투르쿠(핀란드)=곽재순 PD, 편집 이신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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