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011170)의 탄탄한 재무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미래 준비를 위해 ‘고평가’ 논란에도 배터리 소재기업을 인수했는데, 잔금을 치르기도 전에 레고랜드 사태로 계열사에 6000억원을 지원하게 되면서다. 롯데케미칼이 업황 악화로 적자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자금 압박에 시달리면서 롯데그룹 전체로 위기가 확산될 지 시장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의 주가는 지난 18일 16만6000원에 거래됐다가 지난주 금요일 14만4000원으로 13.3% 하락했다. 지난 주에만 3곳의 증권사가 롯데케미칼 목표주가를 내렸다. 흥국생명은 24만원에서 22만원으로, KB투자증권은 28만원에서 20만원으로, 하나투자증권은 27만원에서 22만원으로 하향조정했다.

김교현 롯데케미칼 부회장./뉴스1

시장이 롯데케미칼의 미래를 어둡게 점치는 것은 최근 들어 급격히 늘어난 자금 부담 때문이다. 지난 18일 롯데건설이 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는데, 롯데케미칼이 참여하게 됐다. 롯데케미칼은 롯데건설 지분 43.79%를 보유하고 있어 최소 875억원을 투입해야 한다. 20일엔 롯데케미칼이 롯데건설에 단기자금 5000억원을 연 6.39% 이율로 빌려준다고 공시했다.

이번 롯데건설 지원은 ‘레고랜드 사태’와 연관돼 있다. 롯데건설은 서울 둔촌 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에 참여 중인데, 최근 강원도 레고랜드 채권 채무불이행 사태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해당 사업의 PF 차환 발행이 어려워졌다. 이에 7000억원의 사업비를 롯데건설을 비롯한 네 개 건설사가 자체 자금으로 상환하게 됐고, 롯데케미칼이 긴급 지원에 나선 것이다.

롯데케미칼이 롯데건설 지원에 나서면서 재무 구조가 급격히 악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먼저 현금 창출력이 크게 하락했다. 장현구 흥국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으로 화학 기업들은 최악의 업황에 직면한 상황”이라며 “롯데케미칼은 2000년 이후 이례적으로 2개 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롯데케미칼의 올해 373억원 영업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했다. 작년에는 1조535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석유화학에 쏠린 사업구조를 다변화하기 위해 조(兆) 단위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롯데케미칼은 최근 ‘고평가’ 논란 속에서도 2조7000억원을 들여 세계 4위 동박업체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를 확정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5월 2030년까지 수소·배터리 사업에 총 10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힌 바 있다. 2011년에 발표했지만 올해 들어서야 본격화된 인도네시아 초대형 석유화학단지 조성 사업도 앞으로 대규모 자금 투입이 필요하다. 해당 사업 규모는 39억달러(약 5조6082억원)에 달한다.

롯데케미칼의 재무 상태는 고금리·고환율 상황과 겹쳐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진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인수금인 2조7000억원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예상보다 비용이 커질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했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의 연말 가용현금은 약 1조1000억원으로 최소 1조6000억원 이상의 차입이 필요하다. 그는 “이번 인수로 순부채비율은 6%에서 23% 이상으로 증가할 예정이며, 실적 부진 및 금리 인상 때문에 계획보다 자금 조달 비용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자금 조달 비용에 영향을 미치는 신용등급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달 초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발표 이후 나이스신용평가(나신평)는 롯데케미칼과 롯데지주(004990)의 재무 부담이 확대될 것이라며 신용등급 하향검토 등급감시 대상에 올린 바 있다. 여기에 롯데건설에 대한 유상증자 및 자금대여까지 겹치자 한국신용평가는 “계열사 지원 성격의 자금 지출은 현금흐름 관리 및 자체 재무부담 상승 가능성 측면에서도 신용도 하향압력을 가중하는 요인”이라며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롯데케미칼의 위기가 롯데그룹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용평가사는 주요 계열사의 신용도를 감안해 그룹 내 지원 여력인 ‘계열통합 프로파일’을 평가하는데, 롯데케미칼은 롯데그룹의 계열통합 프로파일을 결정짓는 6개 계열사 중 하나다. 즉 롯데케미칼의 신용도가 떨어지면 그룹 신용도 전체가 하락하는 셈이다. 실제 나신평은 지난 11일 롯데케미칼과 롯데지주의 신용등급 하향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뒤 롯데렌탈과 롯데캐피탈도 하향검토 등급감시 대상에 올렸다.

나신평은 “롯데케미칼이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을 감안할 때, 롯데케미칼의 신용도가 하락할 경우 계열통합 프로파일 하방 압력이 확대된다”며 “향후 계열통합 프로파일이 낮아질 경우 롯데렌탈 및 롯데캐피탈의 신용등급에 계열관계요인을 통한 노치(등급) 조정이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즉 이전까지는 대기업 계열사인 만큼 그룹 내 지원 여력을 감안해 회사 자체 여건 대비 높은 신용등급을 받았지만, 지원 여력이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이들의 신용등급 역시 하향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