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LG(003550)그룹 회장이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이달 초에 회장 취임 후 처음으로 폴란드 주요 계열사 사업장을 방문한 후 약 보름 만이다. 2018년 6월 회장에 오른 뒤 그룹 사업 구조조정 등 내실 다지기에 집중했던 구 회장이 미래 준비에 속도를 내기 위해 글로벌 경영에 본격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에 따르면 구 회장은 17일(현지시각) 미국 오하이오주 로즈타운에 있는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 제너럴모터스(GM)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 1공장을 방문해 4시간가량 머물며 보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오하이오 1공장은 최근 준공돼 설비라인 중 절반가량을 갖췄다. 이 공장은 LG에너지솔루션이 전사적 역량을 투입하고 있는 ‘스마트팩토리’ 공정을 한층 고도화해 도입한 곳인데, 구 회장은 이를 중점적으로 살핀 것으로 알려졌다.

구광모 LG그룹 회장./LG그룹 제공

LG에너지솔루션은 2019년 12월 GM과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체결하고 이듬해부터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총투자금은 23억달러(약 3조2800억원)로, 연간 생산능력 목표는 40GWh(기가와트시)다. 지난달 초부터 배터리 셀 시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이르면 연말에 양산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800여명이 근무 중으로, 내년 최대 생산 능력치에 도달하면 직원 수는 1300명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오하이오주 배터리 공장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합작법인 형태로 설립한 최초의 배터리 공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큰 곳”이라고 말했다.

구 회장이 미국 출장에 나선 것은 이달 초 폴란드 출장에 이어 약 보름 만이다. 폴란드 출장은 2019년 4월 회장으로는 처음 미국 실리콘밸리를 방문한 후 3년 만의 공개 해외 일정이었다. 구 회장은 폴란드 브로츠와프에 있는 LG에너지솔루션 공장을 찾았는데, 그가 해외 계열사 사업장을 방문한 것은 올해 들어 처음이었다.

업계는 구 회장이 폴란드에 이어 미국에서도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을 점검한 것을 주목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이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나 북미산 배터리 광물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한 전기차에만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한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다.

중국산 원자재 비중을 낮추기 위해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한편, 늘어나는 전기차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공장 증설 작업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이 와중에 환율과 금리, 물가가 급등해 투자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LG에너지솔루션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배터리 사업은 구 회장이 취임 후 추진해 온 ‘선택과 집중’ 전략의 핵심 축으로 꼽힌다. 구 회장은 지난해 정기주주총회에서 “선택과 집중 전략에 따라 비핵심 사업을 정비하고 주력 사업과 성장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한다”고 선언했고, 이후 열흘 만에 휴대폰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그러면서 배터리를 비롯해 자동차 전자장치(전장),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등에 집중하고 있다.

폴란드에 이어 보름 만에 미국을 방문하면서 구 회장이 글로벌 경영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구 회장은 이전까지는 사업 구조조정과 조직문화 혁신 등 내실 다지기에 주력하고, 각 사업과 관련된 공개 일정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에게 일임해왔다.

이는 미래 준비에 속도를 내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구 회장은 사장단 워크샵에서 “경영 환경의 변화가 클수록 그 환경에 끌려갈 것이 아니라, 미래의 모습을 스스로 결정하고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미래준비는 첫째도 둘째도 철저히 미래고객의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편 구 회장은 이달 말부터 약 한 달간 일정으로 그룹 사업보고회를 실시할 예정이다. 사업보고회에서는 올해의 사업성과를 점검하고 내년 사업 계획을 중심으로 미래준비 차원의 역량 보강 방안, 주력 및 성장 사업의 경쟁력 강화 전략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재계 관계자는 “다른 그룹의 총수들이 글로벌 경영에 적극 나서는 것과 달리 구 회장은 내부에서 사업 혁신을 위한 큰 그림을 제시하는 데 집중해 왔다”며 “최근 글로벌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은 만큼 구 회장도 직접 해외 무대에 뛰어들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