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마니아층에 국한됐던 키덜트(kidult·장난감 선호 등 어린이 취향 가진 성인) 시장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골치 아픈 현실을 피해 동심(童心)의 공간에서 안식과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성인이 늘면서다. 새롭고 독특한 걸 추구하는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의 키덜트 시장 유입도 한몫했다. 이른바 ‘MZ 키덜트’다. 키덜트 시장의 성장은 완구 등 전통적으로 아이들을 타깃으로 한 산업뿐 아니라 가전, 명품, 식품 등 성인들이 소비하는 제품을 만드는 산업에도 새로운 동력을 제공한다. ‘이코노미조선’이 새로운 소비자군으로 떠오른 키덜트를 집중 분석했다. [편집자 주]
“코로나19 이후 제대로 된 취미를 갖기를 원하는 성인들이 많아지면서 전통적인 ‘키덜트(kidult·장난감 선호 등 어린이 취향 가진 성인)’ 개념도 변하고 있다. 특정 마니아층에서 차, 건물 등의 제한된 제품군이 인기였다면 최근에는 명화, 다육식물, 인테리어 소품 등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제품으로 범위가 넓어지면서 레고를 찾는 3040의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레고코리아 현재욱 시니어 브랜드 매니저(부장)는 최근 인터뷰에서 키덜트의 진화를 언급하며 이같이 설명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소수의 마니아층에 국한됐던 키덜트 시장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단순히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대한 향수(鄕愁) 때문에 소비를 하는 것을 넘어서, 놀이처럼 즐기지만 진지한 취미를 갖고자 하는 성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장난감이 재조명받고 있는 것이다.
올해 90주년을 맞은 레고는 이 같은 흐름에 올라탄 대표적 사례다. 레고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지난 2020년부터 성인들의 폭넓은 관심사를 반영해 인테리어 소품부터 명화, 예술 등 아트와 식물 같은 자연 영역까지 제품군 테마를 다양화했다. 덕분에 레고그룹의 지난해 글로벌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7% 증가한 553억덴마크크로네(약 10조3405억원)를 기록했다.
현 매니저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제품은 상상력이 중요했지만, 어덜트 라인 제품은 현실과 똑같을 만큼 살아있는 디테일의 구현이 핵심”이라며 “레고로는 이 세상 현존하는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놀이처럼 즐길 수 있으면서도 전문적인 취미로 삼고 싶은 성인층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코로나19 이후 레고 제품 라인이 다양해졌다.
”레고그룹은 2020년 이후 10개 이상의 제품군을 새롭게 론칭하며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 자체 설문조사 결과, 한국 성인의 47%는 ‘휴식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답하면서도 동시에 85%가 ‘더 많은 취미를 원한다’고 했다. 놀이와 취미에 대한 갈망이 매우 큰 것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놀이와 취미를 동시에 원하는 성인들의 수요가 높아질 것을 예상해 제품 테마를 인테리어, 아트, 식물 등으로 더욱 다양화했다.
성인 대상의 제품은 아이들 제품에 비해 피스(piece) 수가 훨씬 많은 대신 현실과 똑같을 만큼의 디테일을 구현할 수 있다. 조립 후에는 집, 사무실, 특별한 장소에 전시하기에도 좋아 활용 가치가 높다. 건축물, 자동차, 예술, 스포츠, 패션에 이르기까지 성인들의 선호도가 높은 브랜드와 협업하는 등 다양한 시도 덕분에 성인 소비자층의 반응이 매우 좋다.”
성인들이 많이 찾는 제품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전 세계에 연간 레고 판매량의 20% 정도를 성인이 구매한다. 이들의 소비패턴 중 흥미로운 부분은 과거보다 다양한 분야의 제품군을 원하며 조립한 이후에는 인테리어 소품 등으로도 활용도를 넓힌다는 것이다. 레고그룹이 식물을 테마로 지난해 처음 출시한 ‘레고 보태니컬 컬렉션’인 ‘레고 난초’와 ‘레고 다육식물’ 등은 초도 물량이 완판됐고, 실제 플로리스트를 초청해 레고 꽃을 생화와 함께 꽂아보는 플라워 클래스도 큰 인기를 끌었다. 명화를 모티브로 한 ‘레고 아이디어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의 경우 레고그룹이 뉴욕 현대미술관과 협업한 첫 제품으로, 3D 액자 형식으로 디자인돼 예술과 인테리어에 관심이 높은 성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
레고가 성인 팬들의 창작 활동도 지원하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는 레고에 매우 열성적인 레고 성인 팬을 ‘AFOL(Adult Fan of LEGO)’이라고 부른다. 레고그룹이 추정한 전 세계 AFOL 수는 10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기 위해 팬들이 창작한 작품 중 1만 표 이상을 받은 제품을 실제 제품화하는 ‘레고 아이디어(LEGO Ideas)’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연간 4~7개 제품이 이를 통해 실제 제품으로 출시되며 창작자는 제품 순매출액의 1%를 받게 된다. 실제로 지난 2월에는 ‘지구본’ 제품이 이 과정을 통해 탄생하기도 했다.”
국내 키덜트 시장에서 레고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인가.
“향수를 일으키는 장난감들은 상황 불문하고 언제나 인기가 있다. 그러나 (레고 제품의 큰손인) 3040 세대 입장에서 봤을 때는 어릴 때만 해도 레고는 접하기 쉬운 제품은 아니었다. 외국으로 이민 갔던 친구들의 장난감(레고)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레고가 인기를 얻은 것은 향수 그 이상의 무엇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레고는 이 세상 현존하는 모든 것을 다 만들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더구나 성인용은 피스가 많을수록 디테일이 좋다. 실제만큼 작동 원리를 똑같이 구현해 내서 디테일을 발견할 때 더욱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현실을 바탕으로 한 창작 활동이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이다. 한국 팬들은 창의성이 뛰어나고 적극적으로 창작하는 경향이 있다. 레고코리아는 지난 2013년부터 매년 레고 창작 전시회인 ‘브릭코리아 컨벤션(BRIC KOREA CONVENTION)’을 후원한다. 작년에는 약 200명의 작가가 참여해 500점에 달하는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레고로 만들 수 있는 범위의 한계가 없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레고의 영원한 미션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우리의 삶과 놀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 생각한다. 특히 스트레스를 받는 현대인들에게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나 소통창구 역할은 꼭 필요한데, 레고가 그 역할을 대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잠시 레고에 흥미를 잃었더라도 다시 돌아와 레고로 스트레스를 풀어보면 어떨까. 많은 사람이 놀이를 떠나서는 살 수 없으니 말이다.”
전효진 기자
-더 많은 기사는 이코노미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
<관련 기사>
Part 1. 키덜트 성장 가속
· 키덜트 시장 성년이 되다
· [Infographic] 키덜트 붐에 뜨는 캐릭터 비즈니스
Part 2. 키덜트 시장 이끄는 사람들
· [Interview] 현재욱 레고코리아 시니어 브랜드 매니저
· [Interview] 키덜트 쇼핑 플랫폼 업체 틴고랜드 하현호 대표
· [Interview] 키덜트 유튜브 채널 ‘이상훈TV’의 개그맨 이상훈
Part 3. 전문가 제언
· [Interview] ‘키덜트 핸드북’ 저자 니콜 부즈
· [Interview] 한창완 세종대 창의소프트학부 만화애니메이션텍 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