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휘발유 가격이 7개월 만에 리터(ℓ)당 1600원대로 내려왔지만, 겨울을 앞두고 또다시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산유국들이 원유 감산을 검토한다는 소식에 국제유가가 최근 급등했는데, 감산이 현실화될 경우 배럴당 100달러를 다시 넘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4일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국내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휘발유 가격은 지난달 월평균 ℓ당 1730원으로 집계됐다. 월간 휘발유 가격은 지난 8월 ℓ당 1792.2원으로 지난 2월(1714.6원) 이후 6개월 만에 1700원대를 기록했다. 일일 기준으로 보면 휘발유는 1700원대 아래에서 판매되고 있다. 4일 오전 현재 ℓ당 1675.8원으로, 지난 2월 이후 약 7개월 만의 1600원대다.
국내 기름값은 국제유가 하락에 힘입어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배럴당 130달러 가까이 올랐던 국제유가는 8월 들어 100달러 아래로 내려왔고 지난달 말부터는 76.7달러(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기준)까지 떨어졌다. 경기 침체 우려로 원유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 영향이다. 여기에 중국이 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유럽을 겨냥해 휘발유, 경유, 항공유 등 정제유의 수출 쿼터(할당량)를 늘리면서 공급 과잉 우려도 커졌다.
그러나 이같은 국제유가 흐름이 반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의 협의체인 OPEC+(오펙 플러스)가 하루 원유 생산량을 100만 배럴 이상 줄일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하루 100만 배럴은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1%이며 2020년(1000만배럴) 이후 가장 큰 감산 규모다. 이들 국가는 오는 5일(현지시각) 오스트리아 빈에서 3년 만에 대면회의를 열고 감산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OPEC+의 대대적 감산 방침이 알려지자 11월 인도분 WTI는 3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5.2%(4.14달러) 오른 83.6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된 12월물 브렌트유도 배럴당 4.4%(3.72달러) 오른 88.86달러를 기록했다. 로이터 통신은 "OPEC+를 이끄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배럴당 100달러가 세계 경제가 흡수할 수 있는 적정 가격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OPEC+의 감산이 현실화될 경우 난방 수요가 늘어나는 겨울철과 겹쳐 사우디·러시아의 희망대로 국제유가가 급등할 수 있다. 원유 중개업체 PVM오일어소시에이츠의 스티븐 브레녹 애널리스트는 "원유의 펀더멘탈(시장의 수요공급 등 기초여건) 긴축은 유가를 배럴당 100달러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미 금융 컨설팅 기업 프라이스퓨처스그룹의 필 플린 선임 애널리스트 역시 "하루 100만배럴 이상의 감산은 국제유가 급등으로 이어지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설 경우 국내 휘발유 가격은 또다시 ℓ당 2000원선을 위협할 수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주유소 휘발유 판매가격은 고점에서 하락할 때 그 흐름이 짧게는 2개월, 길게는 3년 가까이 지속됐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월 ℓ당 1142.7원으로 1년 만에 38% 급등했던 휘발유 가격은 2월(1189.7원) 고점 이후 하락했지만, 불과 3개월 뒤인 5월(1040.8원) 반등했고 그 해 9월(1149.1원)에 다시 1100원대를 넘어섰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역시 7월 1922.6원까지 올랐다가 꺾였지만, 그 흐름은 5개월 뒤(1328.5원)에 끝났다. 2012년엔 휘발유 가격이 4월 2058.7원까지 상승했었는데, 2015년 초까지 3년에 걸쳐 1400원대까지 떨어졌다.
OPEC+의 감산으로 국제유가가 반등해도 경기침체 장기화 가능성과 중국발 공급과잉 등을 고려하면 유의미한 기름값 상승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있다. 덴마크 삭소은행의 올레 한센 상품전력 헤드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주 OPEC+가 직접 만나는 것은 (감산 조치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결정이기 때문일 것"이라면서 "시장이 기대하는 것보다는 영향이 덜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유업계 관계자 역시 "유가가 많이 낮아졌다고 하지만 강달러 때문에 원유 수입국에선 가격 하락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고, 공급과잉 우려도 여전하다"며 "OPEC+의 감산으로 일시적으로 국제유가가 오를 순 있지만 흐름 자체가 다운 사이클인 만큼 반등 뒤 다시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