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내 하청업체 직원을 본사 직원으로 직접 고용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잇달아는 가운데, SKC(011790) 계열사인 SK넥실리스도 관련 소송에서 패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로 자동차·철강·조선업 등 제조업에서 발생한 '하청 직원 직고용 리스크'가 SK(034730)그룹에도 번진 것이다. SK넥실리스의 경우 하청 노동자들의 작업장을 분리했고, 원청 직원들이 해당 공정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재판부는 직고용을 해야 한다고 판단해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하청 직원을 직고용하는 데 많게는 조(兆) 단위의 비용이 소요된다며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최근 재판부가 관련 법을 과도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SK넥실리스 정읍공장 전경./SK넥실리스 제공

4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전주지방법원은 최근 근로자 김모 씨 등 SK넥실리스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 57명이 제기한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에서 근로자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SK넥실리스가 협력업체 근로자들에게 작업 요청내역서를 3~4일 단위로 배포한 점 등이 구체적인 생산 계획을 지시한 것이라고 판단된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SK넥실리스는 SK가 2019년에 인수한 동박 제조 자회사다. SK넥실리스(당시 KCFT)는 2006년부터 동박 생산 공정의 일부분을 하청 업체에 맡겨 왔다. 그동안 해당 공정을 담당하는 하청업체가 몇차례 변경됐지만, 공정 담당 직원들의 고용은 그대로 승계했다.

그러다 SKC가 2019년 SK넥실리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하청 직원들이 고용·정년 보장을 요구하며 파업했다. 이후 하청업체는 원청과의 도급계약 해지를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했다. 이에 하청 근로자들은 불법파견을 주장하며 SK넥실리스에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하청 근로자들이 SK넥실리스의 직접 지휘 명령을 받은 근로 관계라고 판단해 직접 고용을 판결한 것이다.

현행 파견법에 따라 하도급 관계를 인정받으려면 하청업체가 원청의 지휘명령을 받지 않고 수주한 일감을 자체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재판부가 하청 업무에 대한 원청의 개입이 있었다고 판단할 경우 '불법 파견' 혹은 '위장 도급'이 적용된다. 파견은 한 업체에서 2년 이상 근무하면 직접고용 관계로 전환된다. 재판에 패소한 기업은 하청 직원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 하청 직원을 직접 고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소송의 핵심은 원청의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다.

이재홍 SK넥실리스 대표./SK넥실리스 제공

하청 근로자들이 완전 분리된 작업장에서 한단계 공정만 수행했고, 원청 근로자가 해당 공정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SK넥실리스가 패소했다는 점에서 재계는 이 판결이 미칠 영향을 주목하고 있다. 재판부는 SK넥실리스가 하청 노동자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과정에서 전산관리시스템(MES)과 스마트폰 메신저 '카카오톡'을 사용했다는 점을 판결 근거로 들었다.

MES는 자재관리, 품질관리, 공정계획에 따른 작업량과 작업순서 편성 등 업무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만든 시스템이다. 원청업체가 구축한 시스템을 통해 전 제조 과정이 관리되기 때문에 협력업체도 MES를 통해 업무를 수행한다. 생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이지만, 법원은 원청 업체가 이 시스템을 이용해 하도급 업체에 업무를 지시한다고 판단했다.

또 동박 생산 공정은 연속적으로 이뤄져 하청 업체가 담당한 공정이 독립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작업의 유기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극단적으로 작업 하나하나에 대해 도급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며 "이런 결론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취지를 몰각시키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의 판단대로라면 기업들은 앞으로 일부 공정을 하청 업체에 맡기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뉴스1

최근 하청 근로자 직고용 소송은 대부분 하청 근로자들이 승소하는 추세다. 포스코도 지난 7월 협력업체 근로자 59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다. 대법원은 포스코의 제품 생산과정과 조업체계가 MES에 의해 관리되는 상황에서 하청 근로자가 해당 시스템을 통해 작업했으며, 이는 사실상 구속력이 있는 업무상 지시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포스코는 현재 대법원과 하급심에서 유사한 소송 일곱 개를 진행 중이다. 지난해 7월에는 현대위아가 관련 소송에서 패소했다. 현대차(005380) 역시 여러 건의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인데 2심 판결에서 대부분 패소했다. 기아(000270), 한국지엠, 현대제철(004020), 삼성전자(005930) 등도 최종심을 기다리고 있다.

재계에서는 현재 직고용 소송이 진행 중인 기업들이 모두 패소할 경우 수천억에서 많게는 조 단위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포스코의 경우 비정규직 직원이 1만8000명인데, 이들을 모두 직고용하면 인건비가 1조원을 넘을 전망이다. 현대제철과 현대차 역시 각각 수천억원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비정규직 설문조사 결과 및 투쟁계획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법원 판결은) 도급계약의 성질과 업무 특성, 산업생태계의 변화, 우리 노동시장의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며 "유사한 판결이 이어질 경우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물론 일자리 창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도 최근 재판부의 하도급 판결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MES나 스마트폰 메신저 등 온라인을 통한 업무 소통이 일반화된 시대에 이를 하청 근로자 직고용의 법적 기준으로 삼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디지털 시대에 도급 목적상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정보제공 수단인 산업 현장의 MES를 파견법상의 지휘·명령으로 판단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며 "여러 공정의 유기적 결합을 전제로 하는 제조업에 대해 사실상 노무도급을 금지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