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전격 결정하며 'M&A(인수·합병) 승부사'다운 면모를 다시 한 번 과시했다. 김 회장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과감한 M&A로 난관을 극복하고 그룹을 재계 서열 7위로 올려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마무리되면 재계 6위인 포스코와의 자산격차가 약 16조원에서 5조원으로 줄어들게 된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을 한화그룹에 '통매각' 하기로 결정하고 마무리 작업을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매각 금액은 약 2조원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은 2008년에 6조3002억원을 주고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려 했지만, 금융위기로 인한 자금 조달 문제와 대우조선해양 내부 구성원의 반발로 포기한 바 있다.
한화그룹이 처음 인수를 시도한지 14년 만에 대우조선해양을 품에 안으면서 김 회장의 M&A 승부사 기질이 깨어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화약에서 출발한 한화그룹은 꾸준한 M&A를 통해 현재 석유화학을 비롯해 금융, 방산, 항공우주, 친환경 분야까지 사세를 확장했다. 선친이 이끌던 1979년 한화의 재계 서열은 9위였지만, 지금은 7위로 두 계단 올라섰다. 당시 한화그룹보다 서열이 높았던 그룹 중 여전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삼성과 현대차(005380), LG(003550) 등 3곳에 불과하다.
김 회장은 1981년 8월 창업주인 고(故) 김종희 회장의 급작스러운 별세로 29세의 젊은 나이에 회장직에 오른 직후부터 승부사적인 기질을 발휘했다. 1982년 화학사업 인수가 대표적이다. 제2차 오일쇼크 여파로 세계적 석화기업인 다우케미칼이 한국에서 철수를 결정하면서 다우케미칼이 한국에 세운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이 매물로 나왔다. 당시 두 회사의 적자는 75억원, 430억원이었다.
김 회장은 주변의 만류에도 인수를 밀어붙였고, 인수 1년 만에 흑자 기업으로 돌아섰다. 이는 한화그룹이 10대 그룹에 진입하는 발판이 됐고, 지금은 한화솔루션(009830) 케미칼 부문으로 그룹의 뼈대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의 또다른 '신의 한 수'로는 2014년 삼성그룹 방산·화학 계열사 인수가 꼽힌다. 김 회장은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석유화학), 삼성테크윈(항공부품), 삼성탈레스(방위산업)를 통째로 인수했다. 당시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 '부실 계열사를 통째로 떠안았다' 등의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한화그룹의 가장 성공적인 M&A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화학 계열사들은 그룹의 캐시카우(수익 창출원)로 자리잡았고, 방산 계열사들은 한화의 미래 먹거리인 우주항공 사업 진출의 초석이 됐다.
태양광 부문 M&A 역시 최근 들어 빛을 발하고 있다. 김 회장은 2010년 중국 솔라펀파워홀딩스를 인수해 한화솔라원을 출범시켰고, 2012년엔 파산한 독일큐셀을 인수해 한화솔라원과 합쳐 태양광 사업 몸집을 키웠다. 중국계 기업의 공세로 국내 태양광 산업이 무너지면서 한화큐셀 역시 적자에 시달렸지만, 김 회장은 태양광 산업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한화큐셀은 2분기에 일곱 분기 만에 흑자로 전환했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가스값이 치솟으면서 세계 각국이 태양광 도입을 서두르고 있어 수혜가 예상된다.
이 외에도 김 회장은 1985년 정아그룹의 명성콘도부터 시작해 1986년 한양유통, 2000년 동양백화점 등을 연이어 인수하며 레저·유통사업에 뛰어들었다. 특히 백화점·유통사업을 맡고 있는 갤러리아 부문은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13.7% 증가한 5147억원, 영업이익이 약 10배 증가한 289억원을 기록했다. 2002년엔 대한생명(현 한화생명(088350))을 인수해 생보·손보·증권·운용·저축은행 등 금융사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재계에서는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품에 안을 경우 방산·에너지 사업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육·해·공 통합 방산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물론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사업에서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