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금속노조 하청지회는 지난 6월 2일부터 51일간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불법 파업을 벌였다. 임금을 인상해달라는 것이 이들의 주요 요구사항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노조는 배를 만드는 작업장인 독(dock)을 불법 점거 했다. 불법 파업의 여파로 회사 측은 8000억원이 넘는 손해를 봤고, 협력업체 4곳은 일감이 끊겨 폐업했다. 이에 대우조선해양은 노조 측에 470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하청지회의 손해배상액 지급 여력을 고려해 피해 금액의 약 6%에 불과한 금액만 청구했지만, 이마저도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했다. 재계는 노조의 불법 파업에 면죄부를 줄 경우 불법 점거가 장기화되고 폭력·파괴행위가 빈번해질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나아가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경제 질서를 흐트러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형수 대우조선해양 거제통영고성지회 지회장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뉴스1

19일 재계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야당은 올해 안에 노란봉투법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노란봉투법을 '22대 민생입법과제' 중 하나로 제시하고 주요 입법 과제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정의당은 노란봉투법을 당론으로 발의하며 "정기국회에서 입법에 성공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여당은 다수 의석을 확보한 야당이 일방적으로 법안을 처리할 경우 대통령에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노란봉투법은 2003년 두산중공업 조합원이 손해배상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며 분신한 사건과 2009년 쌍용차 불법파업 이후 금속노조에 손해배상이 청구된 사건 등을 계기로 논의가 시작됐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 대우조선 측이 하청지회에 47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자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현재 국회엔 약 6건의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폭력·파괴행위 이외의 불법쟁의에 대한 손배·가압류 금지 ▲폭력·파괴행위의 경우에도 손해발생이 노동조합에 의해 계획된 경우 임원·조합원 등 개인에 대한 손배·가압류 금지 ▲노조 존립이 불가능할 정도의 손배·가압류 금지 등이다. 현행 노조법 제3조는 정당한 쟁의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엔 노조 또는 근로자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현행법상 불법쟁의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데,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이 역시 어려워진다.

국내 산업현장은 매년 되풀이되는 불법쟁의로 손해가 극심한 상황이다. 민주노총 택배노조는 작년 말부터 올해 3월까지 요금 인상분 배분 등을 위한 총파업을 벌이며 CJ대한통운(000120) 본사를 기습 점거했다. 이로 인해 CJ대한통운은 100억원 이상의 피해를 입었고,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택배기사들까지 배송이 지연된다며 계약을 해지한 고객들로 인해 매출이 크게 줄었다.

지난 6월 있었던 민주노총 화물연대의 총파업은 전국 물류망을 마비시켜 8일간 2조원의 손실을 냈다. 하이트진로(000080) 화물연대 노조는 총파업 해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파업과 시위를 벌여 사측에 200억원의 손해를 입혔다. 이에 본사와 공장 직원 250여명은 직접 강원공장 파업현장에 투입돼 진출입로를 확보하고 출고 작업을 돕기도 했다.

이 외에도 한국노총 레미콘운송노조가 지난 7월 벌인 파업으로 전국 건설현장이 멈춰섰고, 현대제철(004020) 노조는 5월 초부터 현재까지 당진제철소 사장실을 점거하고 있다. 다른 현대차(005380) 계열사만큼 격려금을 달라는 것이 이들의 요구 사항이다. 재계 관계자는 "노조의 공장, 본사 점거 등 불법쟁의가 지금도 만연한데, 노란봉투법은 '법을 지키지 않아도 괜찮다'는 신호로 읽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택배노조가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를 불법 점거하는 과정에서 유리문이 부서지는 모습. /CJ대한통운 제공

기업들이 이처럼 우려하는 것은, 손해배상 청구가 노조 측에 대항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불법쟁의가 발생해도 노사간의 갈등이라며 공권력 투입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파업시 사측이 대체근로자를 투입하는 것 역시 금지돼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우리나라는 노조의 쟁의행위 권리는 충분히 보장하고 있으나 주요 선진국들과 달리 사용자의 방어권은 미흡한 편"이라고 진단하며 ▲쟁의행위 시 대체근로 허용 ▲직장점거 금지 ▲부당노동행위 제도 개선 등을 고용노동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야당은 폭력·파괴행위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를 열어뒀다고 하지만, 이마저도 제한적이어서 결국 폭력·파괴행위가 빈번해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개정안에 따르면 노조에 의해 계획된 행위일 경우엔 손해배상 청구가 불가능한 데다, 노조의 존립이 위태로울 정도로는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 존립이 불가능할 정도'에 대한 명확한 판단 기준도 제시되지 않아 노조 측에 유리하게 해석될 여지가 크다는 지적도 있다.

재계는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생산 차질이 극심해져 결국 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준희 한국경영자총협회 노사관계법제팀장은 "노란봉투법은 노조의 불법 점거 장기화, 폭력·파괴행위를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생산능력 저하로 기업 경쟁력이 하락할 수 있고, 나아가 그 손해는 협력업체와 투자자 등 무한대로 뻗어나가 시장경제질서 전반에서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